“미선아, 효순아, 얼마나 아팠니, 청소년들이여 일어나라, 소파(SOFA) 전면 개정”. 반미운동 단체의 시위 차량에나 붙어 있을 법한 이 구호들이, 대중 가수 이정현의 벤승용차에 각인될 줄이야. 영화 ‘꽃잎’에서 5·18 광주의 아픈 혼령으로 등장했던 17살 어린 소녀는 이제 성인이 되어 미군의 여중생 압사사건과 미군 무죄 평결에 항의하는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스테이지의 화려한 쇼걸로 안주할 것 같았던 그녀가 광화문에 다시 나타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단식 농성에 동참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들불처럼 타오르는 반미의 물결에 동참한 대중예술인들의 힘은 분명 그들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1980년 광주항쟁, 87년 민주화운동, 그리고 지난 여름의 붉은 전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의식에 힘입은 것이리라. 연예인들의 자신있는 발언과 현장의 참여 속에는 스스로 고립되지 않을 거라는 대중에 대한 강한 신뢰감이 배어 있다. 케이블TV 연말 생방송 시상식장에서 미군 장갑차 모형을 부수는 싸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미국의 몰상식한 판결에 분개하는 신해철, 연예인이기에 앞서 이 땅의 어머니로서 꽃다운 여중생의 사망 사건 앞에 눈물을 흘렸다는 개그맨 김미화. 이들의 행동은 대중의 동참을 호소하는 상징적 퍼포먼스이면서, 민주사회 일원으로서의 적극적인 자기 표현이었다. 우리는 지금 스튜디오와 촬영장을 박차고 나온 이들의 항의와 분노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성숙한 민주의식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대중연예인들의 반미 행동을 특별하게 보지 말자. 그들의 행동을 특별하고 기이한 사건으로 받아들일수록 그들의 순수한 행동은 좌표를 잃을 것이다. 미디어가 그들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보도하는 특권적 태도야말로 반미를 상품화하는 것이고, 여중생들을 세 번 죽이는 꼴이다. 다만 그들의 순수한 행동이 상징적 힘을 발휘할 곳은 바로 시민과 함께하는 현장이고, SOFA라는 불평등한 법이다.
대중연예인들이 왜 광화문에 나와야 하는가? 그리고 미군 무죄 평결의 부당함을 알리고 SOFA 개정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 질문에 필연적인 자기 부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 소명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강제된 강박관념이야말로 본디 구현해야 할 인간의 자유와 사회의 평화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땅에 살고 있는 대중연예인들은 누군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책임감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한국 영화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기억한다. 그리고 올해로 14번째 치러지고 있는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에 동참하는 대중연예인들의 따뜻한 마음도 잊지 않는다. 대중연예인들의 사회 참여에 대한 요구는 그들을 정치선동가로 이용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자국의 주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민으로서 살아가자는 당부의 뜻이겠다. 대중연예인들은 상식과 정의가 공유되는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지금 중요한 실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도 광화문에 가면 어떤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동연/문화평론가·문화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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