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새해엔 연속극과 복권을 끊자
우리의 일상은 우리의 비판적 의식을 일상적으로 좀먹는다. 나 또한 한국 땅에서 살아가면서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광고들을 점차 덤덤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일상의 반복이 낳는 세뇌효과다. 그리하여, 나의 의식은 물신과 천민적 자본주의에 대해 여전히 비판하겠지만, 나의 일상은 바로 그 천민성과 물신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우리가 일상을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비판의식을 좀먹는 것들
우리의 비판적 의식을 좀먹는 게 어디 광고뿐이겠는가. 가령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 중 가장 많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연속극의 폐해는, 사람의 능력을 소비능력에 따라 평가하도록 만드는 광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연속극은 우리가 갖지 못한 돈, 권력, 주먹에 대한 대리만족에 매몰시킴으로써 우리들의 비판적 의식을 좀먹는다. 돌이켜 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시청하고 있는 연속극 중 단 한 개라도 노동자, 농민의 구체적 삶을 그리고 있는 게 있는지를. 그것이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온통 돈과 권력, 그리고 주먹에 대한 의지의 관철이 담겨 있을 뿐 사회구성원들의 구체적 삶의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대리만족을 위한 세계일 뿐이다.
연속드라마를 보는 것은 마치 골프를 칠 줄 모르면서 매일 골프 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가진자들의 힘의 의지를 송두리째 받아들인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당장 '연속극 안보기 운동'을 펴길 바란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면 연속드라마는 그것보다 몇 십 배 더 해롭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실세계에서 도피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를 밑바탕에서부터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해무익한 연속극 때문에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속절없이 허비하고 있는가.
이미 수많은 복권이 있는 터에 새로 '로또'가 등장했다. 복권은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의 행운을 잡은 사람이 자신이기를 꿈꾸도록 한다. 현실 아닌 꿈의 세계에 갇히도록 함으로써 사회 현실보다는 일확천금의 가능성으로 하루하루 꿈속에서 살게 한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당첨되었을 때를 상상하고 가상의 행복에 젖어 있는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복권과 교육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한국의 교육열은 무척 높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교육을 통해 계층상승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반 서민들에겐 자식이 계층상승을 할 가능성은 복권 당첨률보다 오히려 낮다. 사교육비가 하늘을 찌르는 교육 현실에서 서민은 돈 많은 집안 자식들처럼 자식을 위해 투자할 능력이 없다. 이른바 좋은 '학벌'을 가질 수 있는 집단은 이미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땅의 노동자들은, 의식 있는 노동자들조차 '내 자식들만큼은 노동자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넉넉지 못한 살림에서 큰 부분을 떼어내 사교육비에 쓰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자식의 계층상승할 가능성은 복권에 추첨될 가능성보다도 적다.
따라서 진정 내 자식을 위하고 내 동생을 위한다면 계층, 계급을 단순재생산하는 오늘의 교육 현실을 깨부수기 위한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또한 오늘 자신이 처한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고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시키도록 노력하고 투쟁하는 편이 자식과 동생을 위해 더 중요하고 실효성이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일상 되돌아보며 '실천'해야
우리는 평등세상을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다만 우리의 의식이 말하는 것일 뿐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평등한 세상보다는 불평등한 세상의 상층을 선망하도록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일상에 대한 일상적 되돌아보기를 통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만이 평등세상을 지향하는 우리의 비판적 의식을 담보할 것이다.
새해에는 '일상 되돌아보기'의 구체적 첫걸음으로 연속극으로부터의 해방, 복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실천하자고 제기한다. 실천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만큼 일상의 지배는 벗기 어려운 족쇄와 같은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벗어나야 하는 족쇄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