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익명성은 ‘축복’이자 ‘권리’
-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사무국장
국정원 직원을 사칭해 '전자개표 조작설'을 유포한 혐의로 평범한 30대가 구속되었고, 이 사건을 두고 인터넷의 익명성이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인터넷의 익명성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인터넷 상의 음란, 언어 폭력, 사기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화살이 돌려졌고,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성급하게 인터넷 실명제를 주장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몇가지 점이 있다.
첫째, 인터넷의 익명성은 하나의 축복이며, 권리로서 인식돼야 한다. 사실 사람은 하나의 몸 속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여성성이 많은 남자도 있으며, 어린이의 품성을 가진 노인도 있다. 논쟁적이지만 수줍어하거나 말주변이 없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강하기도, 때로는 약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다면성은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 관계에 맞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며, 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자신에 대해서 의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오프 세계에서의 나의 행동 범위는 어느 정도 제약되어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익명성을 통해 나는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게 된다. 40대 아줌마가 20대의 소녀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인터넷 공간이다. 사람들의 편견을 벗어나기 위해 여자가 남자인 것처럼 발언할 수도 있다. 평소에는 내성적인 사람이 인터넷에서는 논객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교수니, 변호사니 아무런 감투가 없어도 자신의 능력으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가져온 이러한 가능성은 하나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타인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이와 같은 다면성을 표출하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오히려 이는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가 아닐까?
둘째, 인터넷 실명제가 필요하다는 측의 주장은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서 나쁜 짓, 예를 들어 유언비어를 유포한다거나 타인을 비방하는 등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근거로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해야한다는 논리는 '모든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이니, 범죄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혹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적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어떤 사람이 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여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죄가 없음을 항상 입증할 수 있는 상태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가?
셋째,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서 '익명성'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옹호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회사에서 인트라넷을 도입하면서 익명 게시판을 신설하였다. 그러자, 이 게시판을 통하여 회사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당황한 회사는 익명 게시판을 폐쇄하고, 실명 게시판으로 전환하였다. 그 이후, 인트라넷은 업무용으로만 사용될 뿐, 게시판은 썰렁해지고 말았다.
혹자는 회사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실명으로 당당하게 하라고 얘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밥줄이 달려있는 문제에 대해 그렇게 용기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이를 그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회사 내의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익명성은 약자가 권력에 항의하거나, 불의를 폭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온 경우가 많다.
넷째, 실명제는 문제가 없는가? 실명제가 실시되면, 인터넷 안에서의 나의 정체성은 오프 공간에서와 별 차별성이 없어진다. 하지만, 내게 주어질 수 있는 '통제'는 오프 공간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거의 모든 네트워크에서 나의 삶은 기록(로그)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내가 몇 시에 커뮤니티에 접속을 했는지, 어떤 게시판을 방문했고, 누구와 대화를 했는지, 어떠한 파일을 올렸는지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나의 행적이 누군가에게 노출될 수 있는, 혹은 통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오프 공간에서는 실제 대면하는 눈들에 의해서 내가 규정받지만, 온라인에서는 보이지 않는 많은 눈들에 의해서 내가 규정받을 수 있다.
익명성이 실명제보다 좋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실명일 경우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감이 좀 더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명으로 쓰여진 글을 보았을 때, 그 글에 대해 더 신뢰하게 된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실명 게시판, 혹은 실명 커뮤니티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사람들 사이의 신뢰성이 익명인가, 실명인가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익명인 관계 속에서도 사람들은 충분히 의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떠한 글에 대한 판단은 전체적인 느낌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의 익명성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 상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으며, 그 중의 어떤 부분은 익명성이 야기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그것이 단지 실명제를 통해서 해결가능한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결론은 내리지 말자. 실명인가, 익명인가는 각각의 커뮤니티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이는 국가가 나서서 실명제를 강제할 문제가 아니다. 각 커뮤니티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익명 혹은 실명의 정책을 (혹은 병행해서) 운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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