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고집말고 다양성 수용을

최근 ‘언어문화교육’이라는 관점이 ‘국어교육’을 새롭게 꾸미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국어교육에 대한 반성이 작용한다. 지금 ‘국어’라는 말을 사용하는 곳은 한국, 대만, 일본 등 일제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나라 뿐이다. 그 때문인지 국어에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적잖이 풍기는데, 이제는 표준어 교육에 집중되고 있는 국어교육이 우리 사회의 언어적 다양성을 오히려 억압하는 획일주의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시점이 된 듯하다.

물론 언어 표준화를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 언어사용의 과학화와 체계화를 위해서는 사전 제정이 꼭 필요한데, 여기에 등재할 어휘를 선정하기 위해서라도 표준화는 필수적이고, 또 사회적 소통이 빈번해짐에 따라서 표준말 사용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어라는 이념을 고집할 경우 대중 언어문화의 다양성을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의 말과 글을 국어로 보느냐, ‘한국어’로 보느냐, 언어를 글말 중심으로 보느냐, 입말 중심으로 보느냐, 글을 미문(美文)이나 문학의 관점에서 파악하느냐, 아니면 일상 용도의 관점에서 파악하느냐에 따라서 언어문화와 그 교육은 크게 달라진다. 그 동안 국어교육은 국어학, 국문학, 교육학 등에 의해 분리된 채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대중의 언어적 자율성을 키우기보다는 올바른 언어사용을 위로부터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이제 언어문화교육은 정답찾기식 언어교육에만 머물지 말고 대중의 언어표현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표준말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지을 수 있게 하고, 문학적 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은 물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언어사용에서 부당한 권력이 작용하지 않도록 하고 계급, 성, 민족, 세대, 지역 등에 따라서 생기는 언어적 차이들을 차별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잖아도 지금 외국인노동자, 탈북자, 중국동포, 해외동포 등 다양한 언어 주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정확한 표준어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 못지 않게 서로 다른 한국어들간에 민주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흑인영어를 표준영어의 타락한 형태가 아닌 ‘제2의 언어’라고 여기는 시각이 있듯이 우리도 표준어만을 중시할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지방마다 다른 사투리, 직업에 따라 용도가 다른 전문어, 인간관계에 따라서 바뀌는 표현 등 언어적 다양성이 있다. 이런 변이들을 타락한 한국어로만 보지 말고 되레 한국어를 풍부하게 해주는 자원으로 봐야한다.

바람직한 언어문화교육은 한국어가 세계의 다른 언어들과 공존하고 독자적 표현영역을 넓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언어주체들이 자율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본다. 최근 인터넷 사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아해ㅎ해ㅎ’과 같은 현상에 말이 많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런 현상도 한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키우는 하위문화적 시도로 이해함직하다. 유사한 현상이 등장하면 무조건 언어가 파괴된다고 배격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대중의 어떤 표현 욕구가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욕구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내희 / 중앙대교수·문화연대 집행위원장 transics@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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