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라크 평화팀 이라크 현지보고 1

성혜란 / 대학생신문 객원기자 지난 27일(목, 한국시각), 김력균(피디), 박기범(동화작가), 성혜란(대학생신문 객원기자), 오김숙이(여성해방연대 회원), 은국(예비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윤벽(부산 외국인 노동자센터 회원), 임종진(한겨레 기자), 전승로(대학생), 최혁

지난 달 11명의 한국 평화 운동가들이 이라크로 떠났다. 한국 이라크 평화팀(IPT)에 합류해있는 대학생신문 성혜란 객원기자에게 요르단과 이라크의 현지 분위기를 전해듣는다. 여기에 실린 첫 번째 소식은 27일(목) 이라크로 출발하기 직전 보내온 것이다. 한국 이라크 평화팀은 이라크 비자 발급을 기다리며 요르단에 2주간 체류했다.

해발 팔백 미터. 요르단의 날씨는 시시각각 변한다. 눈을 따갑게 할 정도로 내리쬐던 햇살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고원지대인 탓에 인접한 지역 사이에도 기상의 차이가 뚜렷하다. 낮은 산등성이, 넓은 들판, 새파란 하늘, 하얀 건물들. 입국한 다음 날, 하루 동안 눈으로 훑어 본 요르단은 해발 팔 백 미터의 고지대 요르단을 모두 설명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중동에 대한 조금씩의 편견을 지니고 온 평화팀은 그것들을 깨 나가는 과정들을 겪어야 했다. 평화팀에게 요르단은, IPT비자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곳 이상의 성격을 가진다. 요르단을 통해 중동을 배워나간다.
요르단에는 '아랍'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이 꽤 많다. 아랍 은행, 아랍 호텔, 아랍 병원 등. 자로 잰 듯한 국경선을 가지고 있지만, 그 국경선이 막을 수 없는 것은 아랍인이라는 동질감이었다.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국경선'의 의미는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평화를 원하는 마음 또한 국경선에 관계없다.

요르단의 눈
24일(월)부터 삼일동안 폭설이 쏟아졌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눈의 높이가 달라지고, 이틀 째에는 이미 도로에서 자동차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하루 새에 더욱 쏟아져 내린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가로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리가 푹푹 빠질 정도로 쌓인 눈 때문에 암만 전체가 멈춰 버렸다.
'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안 되는 것도 하나도 없다'라는 것이 요르단, 이라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다. 이라크에 들어갈 수 있는 비자를 알아보기 위해 두 번씩이나 요르단 주재 이라크 대사관에 가서 대기해도 돌아오는 말은 똑같다. '소개장을 갖고 왔느냐', '우리는 비자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는 말은 3진이 들어 올 때까지 이러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주에 관광비자로 바그다드에 들어갔던 한상진, 허혜경 씨가 암만으로 돌아왔다. 폭설 때문에 일정보다 하루 늦게 숙소에 도착한 두 사람에게서 바그다드의 상황을 전해들었다. 관광비자로 들어가는 이상, 생활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에 남아 있던 평화팀은 긴장했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길게는 열흘, 짧게는 닷새. 더 이상 요르단에서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동안 요르단에서 머물렀던 평화팀의 중론이다.
다섯 명 이상이 되어야 발급가능한 비자는 이라크에서 세 명의 현지인과의 동행을 전제로 한다. 여행 가이드, 비밀 경찰, 택시 운전기사가 그들이다. 정해진 관광 코스로 움직이며, 관광객은 시시각각 이라크 정부에 행동을 감시당한다. 바그다드에서 머무르고 있는 IPT처럼 현지인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관광객이 집에 드나들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그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 앞에서는 다만 기도할 뿐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3월 중순이면 개전될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있다.
요르단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고, 전쟁 시기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면서 평화팀 내부에서는 매일 밤 토론이 이루어졌다. △생화학 무기, 핵무기 등에 대한 어떠한 대피책도 마련하지 않는다 △그 동안 가정 방문으로 가까워진 바그다드 가정의 집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IPT의 전쟁시기 계획이다. 여기에 따른 한국 반전평화팀의 이후 행보는 어떤 것이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난민들의 행렬에 함께 하겠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에 대한 선택은 반전 운동을 결심한 이들이 갖는 공통적인 고민이다.
평화운동가들이 모여 있는 알 몬즈 호텔에서 만난 사진 작가 데이비드 린은 '방탄 조끼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단지 그 모든 과정을 무사히 지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공포는 구체적이다. 위험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전쟁 시기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공포. 3진으로 합류한 박기범 씨는 "이라크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지금도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난 겁이 많다. 전쟁이 일어나면, 혼자서 도망치고 싶을지도 모른다"며 솔직한 심정을 내보였다.

개전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는 바그다드 현지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한 평화팀은 반전시위, 고아원 등 방문, 외국 반전 단체와의 간담회, NGO와 함께 벌이는 난민지원계획 등, 바그다드와 이후 요르단에서의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잡아 나갔다. 전쟁을 막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실천을 벌이는 와중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들이 존재했다. 이제 그것을 뒤로 하고 바그다드로 들어가게 된다. 800킬로미터 떨어진 암만에서, 머리 속에서 만들어내는 공포로 어떤 결론도 내릴 수는 없다. 남은 것은 바그다드 내에서 한국 반전평화운동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전쟁의 비극을 막아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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