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순례기
"나는 희망한다. 무엇을......"
"내가 그 지하철을 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다행으로 여길 만큼 비인간적이어야 하는지,아니면 그것을 다행으로 여겨야만 하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해야 하는지, 너무나 힘든 문제가 나에게 던져진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쓴다는 게 사실은 부끄럽다. "
1.
그날 이후 사람들의 눈초리가 달라졌다.빈자리를 두리번거리던 눈들이 출입구 쪽을
바라본다. 빈자리가 있어도, 출입구 쪽 기둥에 기대어 그냥 서 있다. 자본주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판 옆에 코딱지 만하게 붙은 비상안내문을 냉엄하게 쳐다본다. 졸라 이뿐 화장품을 얼굴에 처바르는 자본의 명령이 죽기 전에 이렇게 하면 산다는 생명 줄 보다 훨씬 위에 붙어 있다. 그래 어차피 자본주의 아닌가. 어떤 아저씨는 아예 궁둥이를 쳐들고 비상밸브가 있는 의자 아래쪽을 직접 살펴본다. 시민들 안전의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아도 좋고, 시발 정부고 지하철 직원이고 다 못미더우니깐 내 몸 내가 챙기자는 가장 자연적인 생존본능이 발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어차피, 3등 칸에 실린 3등 인생들이니깐.
2.
1080호 기관사가 한번 되어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게다.그 기관사가 공채로 들어온 사람인지, 노동조합의 조합원인지, 한 가정의 가장인지, 착한 사람인지, 동창회의 총무 일을 맡아보는 사람인지, 삼풍백화점 붕괴 때 추모성금을 낸 사람인지, 민주노동당을 찍은 사람인지,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다만 그 사람이 1080호 기관차를 운전하던 기관사인 것이 문제일 게다.중소기업 노동자보다 조금 많은 임금에, 1인 승무제에,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에게 주어졌는지 모르지만, 그 일을 하면서 우리는 그에게 '기관사'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고 있길 바래야 한다. 화염을 뚫고, 자기 몸을 던져서라도 승객을 살려야 되는 게 기관사의 임무 아니냐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집에 가라고 또한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아마도 기관사들은 해병대의 극기훈련을 한해에 2회 이상 받아야 하고, UDT대원들
이 하는 지옥훈련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옷을 벗어라. 다리가 아파 죽겠는데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길 우리는 백화점 도우미들에게 강요해야 된다. 쇼핑하러온 내 기분이 나빠지지 않도록 그녀들은 졸라 쭉쭉빵빵 해야
하고, 못생겼다면 아예 나서질 말라고 충고해야 한다. 애프터 서비스 온 직원에게 친절과 정성과 만물박사의 능력이 있기를 우린 요구해야 된다. 돈은 돈대로 처넣어도 여전히 겔겔거리는 차를 보면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의 그 청년에게 시발 삿대질을 해야 된다.그러면서 나는 참으로 난감한 문제에 턱 걸리고 만다.
맥도날드에 가면 사람들이 착해진다. 자기가 먹은 것을 자기가 깨끗이 치운다. 집에서 재떨이 하나 마저도 마누라와 애새끼들에게 시켜먹는 저 아저씨도 맥도날드에선 미국의 깔끔한 젠틀맨이 된다. 시발 손님의 노동력 마저도 공짜로 앗아가는 맥도날드의 짜릿한 상술에 반기를 들면, 시급 천원의 아르바이트들이 더욱 힘들어 진다.
3.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에 대한 공상은 아마도 몇 백년 전부터 아주 우습거나, 아주 즐거운 하나의 꺼리였을 게다.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에선 경쟁이 사라질까? 내 것을 챙기는 욕망이 부재할까?버스가 한 대 온다. 승강장엔 수 백명의 사람이 그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한마디로 아우성이다. 힘 좋고 험상궂은 그 녀석은 냅다 올라서서 푹신한 자리에 앉는다. 쪼글쪼글 할매가 보퉁이를 이고 간신히 발판에 올라선다. 여기에다 대고 무슨 질서며 양보며 시민의식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살아 남으라고, 그게 전부라고.
버스가 한 대 온다. 45인승 버스에 45명이 기다린다. 누가 나서서 줄 좀 서자라고 말한다. 힐끗거리면서 꾸불한 줄이 생긴다. 차창 쪽에 앉고 싶은 욕망이 복도 쪽에 앉아서도 여전히 꿈틀거린다. 시발 걍 참는다.
버스가 한 대 온다. 승객은 고작 댓 명이다. 버스가 떠나기 전에 신문도 하나 사고, 음료수도 한 병 들고 느긋하게, 그야말로 문화시민 폼을 잡는다.나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에 대해 유독 물질적 풍요만을 집착한다. 이와 더불어 문화며 질서며 인간다움이 생겨난다고 믿는다. 그렇다 나는 편협한 유물론자이다.
"객차의 경우 건축법, 소방법 및 전기사업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일견 불연재, 난연재 사용에 대한 제한을 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객차의 설계기술 도입 시, 꼼꼼한 선진외국의 내장재에 대한 요구기준이 동시에 도입되었을 것이고, 그 기준을 지켰을 경우 이러한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방화가 '대형참사'로 연결된 원인, 오마이뉴스에서 무단 전제)
"본래 사령은 7개(운전, 신호, 전력, 통신, 설비, 검수, 여객) 영역으로 운영돼야 한다. 하지만 인력 절감 등으로 검수(차량정비)와 여객이 통합돼 운영됐다. 또 운전사령은 기관사 출신이다 보니 승객의 행동 방식을 이해하는 여객 사령의 능력과 검수 사령이 지니는 전동차 기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결국 이것이 전문적인 사령의 지시가 내려지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당초 1호선 운행시 1510명으로 운영되게 계획됐다. 또 주공장에서 필요한 인원 76명이 추가 배치되게 돼 있었다. 하지만 IMF로 접어들면서 계획된 정원은 변경됐다. 인원이 1396명으로 줄었고, 자연감소를 포함해
모두 1301명으로 줄었다. 가장 큰 문제는 대곡역과 같은 추가 역이 생겼는데도 기관사에 대한 추가는 되지 않아 정차시간을 줄이는 등 편법을 쓴 것이다. 대구지하철의 기관사 운행시간은 다른 지하철 보다 적게는 30분, 많게는 1시간 정도 많은 5시간 30분이다. 또 인원이 적다보니 출근시간도 일정하지 않고 근무일수도 늘어나게 돼 있다." (대구지하철 노조 이원준 위원장 인터뷰, 오마이뉴스에서 무단 전제)
나는 그 난감한 문제에 맞닥뜨리며, 가까스로 뿔을 잡는다. 1080호 기관사에게 연봉 1억을 줘봐라. 2인 승무제에 주40시간의 노동만 시켜봐라. 화재가 나면 스프링클러가 돌고, 배연 펌프가 작동하고, 의자에 불이 붙어도 몇 분만에 사그라들게 방염처리를 해봐라. 그래도 사고 낸다면, 그때 가서 돌을 던져라.
4..
중앙로 역을 순례자의 한 사람으로써 내려가 본다. 계단 몇 십 개를 내려왔을 뿐인데, 거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서 교감을 나누고, 현실의 아픔에 대해 너와 나 구분이 사라지고, 유족과 시민들이 하나가
된다. 그 교감과 아픔과 분노가 몇 십 개의 계단을 다시 거슬러 올라와 시민들의 손에 들린 국화꽃 한 송이가 되고, 수 천 개의 촛불이 된다. 그리고, 그 분노가 '저비용 고효율'을 주창하는 지하철 공사를 뚫고,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수백명의 목숨쯤이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배짱을 지닌 대구 시장의 똥배를 뚫고, 3등 칸에 실린 3등 짜리 인생이 주목받는 그런 세상을 열어제끼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면, 그냥 다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만을 희망한다.
성서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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