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를 생명의 숲으로


- 사진 : 2001년 4월 '지구의 날' 캠페인 "용산미군기지를 시민의 숲으로"


어느새 2003년 3월이 왔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개혁의 기대를 크게 받고 있는 새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한가지 반가운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주한 미군이 용산 미군기지를 돌려주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용산 미군기지는 참으로 불행한 땅이다. 멀리 700년 전에 몽고군의 주둔지로 사용된 이래 지금까지 외국군의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용산 미군기지는 직접적으로는 일제군의 주둔지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방 뒤에 이 땅은 새롭게 태어났어야 옳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벌어졌고, 이 땅은 미군의 주둔지가 되고 말았다.


용산 미군기지는 본래 서울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의 강남개발을 계기로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의 배꼽에 자리잡고 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의 대부대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용산 미군기지는 이 나라의 군사적 식민상태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용산 미군기지를 돌려주겠다는 주한 미군의 결정은 평등한 한미관계를 열어 가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용산 미군기지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2000년 봄에는 '불법 호텔건축' 사건이 일어났고, 2001년에는 아파트 신축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용산 미군기지의 주한 미군은 포름알데히드라는 발암물질을 한강으로 불법방류하고, 기름으로 땅을 오염시켜 놓기도 했다. 돌려주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지금 이 시간에도 용산 미군기지에서는 아파트 신축공사와 고가도로 신축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 공사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름오염사건에서 잘 드러났듯이 이 땅의 생태적 상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바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미군 기지의 오염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땅을 돌려 받기 전에 이 땅의 오염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책임을 따지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가 참여한 '용산 미군기지 생태조사단'을 꾸려서 용산 미군기지의 상태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정확하게 책임을 가려야 한다.


용산 미군기지를 돌려주겠다는 계획은 처음 발표된 것이 아니다. 이미 1989년에 주한 미군은 같은 계획을 밝히고 협정서까지 체결했으나 결국 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주한 미군이 요구하는 이전적지와 이전비용의 타당성이 큰 문제가 되었다. 주한 미군은 지금보다 더 넓은 땅을 요구했고, 우리의 계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같은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고, 미군 기지는 '혐오시설' 취급을 받고 있다. 이 점에서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은 기존의 주한 미군 기지들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땅을 이전적지로 결정하고 밀어붙이기 방식으로 이전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전비용도 주한 미군 측이 일방적으로 책정하고 우리에게 무조건 받아들일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한 미군은 우리만을 위해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전 및 주둔비용은 합리적으로 책정되고 분담되어야 옳다.


용산 미군기지를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돌려주겠다는 주한 미군의 계획은 분명히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1989년의 계획이 어떻게 무산되었는가를 잊지 않고 있다. 주한 미군이 같은 무리수를 다시 두지 않기를 바라며, 나아가 국방부를 비롯한 관련 부서들도 주한 미군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협상에 임하기를 바란다. 정부의 담당자들은 이 변화의 역사적 무게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2003년 1월 26일 정두언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용산 미군기지를 되돌려 받으면 이곳에 서울시 신청사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이곳을 모두 숲으로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곳을 '자연 숲'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곳을 가장 공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며, 극심한 생태적 파괴에 시달리는 서울의 생태적 재생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문화연대는 지난 2000년 봄부터 용산 미군기지를 돌려 받아 이곳을 '문화생태공간'으로 만들자는 운동을 펼쳐왔다. 이 구상의 핵심은 용산 미군기지를 '자연의 숲'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넓은 땅이 늠름하게 자란 나무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숲으로 바뀌게 된다면, 서울은 생태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이곳은 서울의 생태적 회생을 상징하는 '생명의 숲'이 될 것이다.


2002년 봄에 세계 215개 도시를 대상으로 '삶의 질'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전체 순위는 93위로 서울이 얼마나 척박한 도시인가를 보여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서울의 수준을 잘 알 수 있지만, 환경의 질을 고려한 순위는 더욱 더 끔찍했다. 환경의 질을 고려한 서울의 순위는 무려 157위였다. 서울은 격렬한 생존투쟁의 도시일 뿐, 아름답고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는 아닌 것이다.

용산 미군기지를 돌려 받아 이곳을 '자연의 숲'으로 바꾸게 된다면, 서울의 이러한 척박성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 숲은 우리가 지나온 파괴적 개발의 시대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시민들은 자연을 호흡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가슴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서울은 격렬한 생존투쟁의 도시에서 자연을 느끼고 살아가는 진정한 삶의 도시로 바뀌게 될 것이다.

진정한 세계적 도시가 되기 위해서 서울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자연이다. 지금 서울은 회색 시멘트 도시이다. 숲을 늘려가겠다는 서울시의 정책은 아주 올바른 것이다. 뚝섬을 숲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이어 용산 미군기지를 모두 숲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 발표된 것은 서울시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이러한 변화는 사실 이미 많은 늦은 것이다. 서울시는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문화연대를 포함한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반미는 파괴된 문화와 자연을 되살리는 생명의 요청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용산 미군기지의 생태문화적 재생은 잘 보여줄 것이다.


홍성태 /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 rayhop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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