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남아 이라크 민중과 함께 하겠다"

배상현씨 인간방패로 바그다드 발전소에 배치돼 민주노총, "정부는 파병방침 철회하고 자국민 보호 나서야" 반전평화팀, "3명이 이라크 민중과 함께 전쟁의 증언자가 되기를 자원했다"

*이라크 어린이가 반전평화팀의 현수막에 소원을 쓰고 있다[사진출처: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 지원연대]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 소속 한국인 배상현씨(28세)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막기 위해 인간방패로 북바그다드 발전소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상현씨는 경남 평화연대 소속으로 지난 3월 6일 출국해 이라크에 들어갔으며 배씨 외에도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 소속 평화운동가 한상진씨, 유은하씨 등 한국인이 이라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 "배씨는 명분없는 전쟁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폭격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아 나선 것"이라며 "한국정부는 파병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배씨를 비롯한 이라크에 남아 있는 한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국민 보호조치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난 14일 출국해 요르단 암만에 머무르고 있는 민주노총 전쟁반대 대표단은 한국시각으로 19일 새벽 6시경 이메일을 통해 "인간방패팀들은 발전소 두군데, 정수시설, 식량창고, 정유시설 등 군사시설이 아니기에 폭격을 해서는 안되는 곳에 배치되었다"며 "미국은 이전에도 구호물품지원창고를 폭격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오폭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시설들을 폭격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반대 대표단 김형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나서서 자국민 보호조치를 취하고 이 시설들이 폭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며 "물론 그 다섯군데가 아니라고 해서 폭격을 맞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고, 3000발의 미사일이 떨어지는 속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아이들도 포함된 무고한 인명들이 살상될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김형탁 부위원장은 또한 "이라크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이 많아 암만까지 도착하는데 4-5시간 정도 더 걸리고, 바그다드의 식수 등 생필품이 가게에서 동이 나고 있다고 한다"며 "이라크 내로 들어가지는 못해도 국경까지 가볼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은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 소속 3명이 이 전쟁을 사전에 막지는 못했지만, 이라크에 남아 이라크전쟁의 증언자가 되기를 자원하였고, 끝까지 이라크 민중과 함께하겠다고 결심하였다"며 "한국에서 이라크전쟁에 항의하고 이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또한 한국인이 이라크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이 전쟁에 파병한다면 자국민을 향한 전쟁과 같은 행위라고 보며 파병 방침을 철회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전평화팀은 이에 따라 △미대사관 앞 전쟁중단 촉구 무기한 1인 시위 △이라크전쟁반대 무기한 촛불시위 △개전시 현지의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과 공동 기자회견 등을 진행할 예정이며 "평화의 하늘색 리본 달기, 미대사관앞 경적 시위, 이라크난민구호 지원" 등에 함께 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눈물
[이라크반전평화팀 소속 성혜란씨가 바그다드를 떠나면서 쓴 일기로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12일 밤에 암만에서 출발, 17일 밤에 바그다드를 떠남.

여러가지 일정들을 가졌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난 번에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나를 알아 보는 사람들 때문에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번과는 달랐습니다. 어김없이 우리의 여행 가이드였던 카심이 허리가 안 좋아 절룩이며 우리를 배웅 나왔고, 바그다드에 남는 사람들-은하 언니를 제외한-이 또한 배웅 나왔습니다. 우리의 숙소 앞에서 늘 볼 수 있는, 나를 보면 뺨을 꼬집는 세이프(이름은 잘 모르겠네요..)와 그 친구도 어김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안 되는 영어로, 세이프에게, 나 이제 암만으로 간다고, 거듭 얘기 했습니다.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숙소 앞에 큰 덩치로 자리 잡고 있는 버스와, 우리들의 짐을 보고 알아챘겠지요. 우리를 그동안 안내했던 운전기사 하이달에게도 또 보자고 인사하고, 그동안 차에서 들었던 김광석의 노래를 선물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내가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걸요.

떠나기 얼마 전, 내가 그렇게도 찾았던 하샨이라는 아이가 달려왔습니다. 제가 예전에 여기에 썼을 수도 있어요. 우리 숙소 앞에서 구두를 닦는 아이인데요, 지난 번에 갔을 때 봤던 아이죠. 그 때도 우리가 암만으로 돌아 오기 얼마 전부터 안 보였는데, 이번에 다시 가서 알아보니, 팔레스타인 호텔 근처에서 구두를 닦는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알고 왔는지, 세이프가 연락했는지, 지난 번에 나와 하샨을 찍어주었던 우리 숙소 옆 사진관 아저씨가 연락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왔습니다.

와~ 그 아이를 보는데, 감정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너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한국말로, 그 아이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데, 계속 말했습니다. 잘 있어, 잘 있어. 또 안 되는 영어로 말했습니다. 암만으로 간다고. 걔는 알아 듣는 듯 했어요. 악수를 하고, 내가 껴 안아 주면, 지도 껴안아 주고. 어깨를 쭉 펴며, 아메리카와 싸우겠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녀석을 보고 내 가슴을 치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어떻게 보면 부산한 자리였습니다.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갈 것인지, 암만에 있을 것인지 마음 정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렇지만,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떠난 것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암만으로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미, 호텔 같은 곳에는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 놓았었습니다. 폭탄이 터질 때, 폭탄 파편 보다는 유리창 파편에 큰 일을 당하기 때문에 파편이 튀지 않고 유리가 무너지게 하기 위해서 붙이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휴먼쉴즈로 가겠다고 남아 있는 상현이 오빠에게 쪽지와, 오빠가 내게 준 돈을 돌려주고 버스를 타러 가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창문 밖에서 계속 손을 흔드는 세이프를 보고 울고, 멀리 비스듬히 서있는 카심을 보면서 울고, 어둠 속에 서있는 상현 오빠를 보고 울었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떠나는 사람을 보며 울고 있는 수하드 아줌마를 보고 울었습니다.

사진관 아저씨를 보고 울고, 나보고 울지 말라고 손짓하는 하이달을 보고도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울었습니다. 미리 차가 지나는 길로 뛰어와 손 흔드는 하샨을 보며 울었습니다.

이쯤에서 얘기해야겠네요. 나, 하나도 찍지 못했습니다.
그 장면, 그 사람들, 하나도 찍지 못했습니다.
지난 번과는 다른, 보내는 사람들, 남는 사람들의 모습 하나도 찍지 못했습니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습니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니 온통 머리 속에는 한가지 생각 뿐이었습니다.

'전쟁 나면 안 되는데.', '전쟁 나면 안 되는데...'

전쟁 나면 안 되는데..

차가 달리며, 지나가는 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바그다드 시내를 보며,

눈물을 그치지 못하면서 딱 하나 떠오르는 생각이 그것이었습니다.

'전쟁 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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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 이라크전 , 인간방패 , war , ir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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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한겨레

    전쟁나면 안 되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