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명이 훨씬 넘는 목숨을 앗아간, 1984년의 보팔 유독가스 폭발 사고 역시 어처구니없는 인재였다. 생명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기업이 ‘만든’ 참사였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보팔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자유기고가 루크 데이비드(Luke David)가 보팔 참사 이후의 실상을 추적했다. 시사잡지 New Internationalist magazine에 게재된 루크 데이비드의 기사 ‘Night of the gas’를 소개한다. [Georeport]
집에서 뛰쳐 나왔지만,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가스였다
사람들이 대부분 잠들어있던 한밤중에 지하 저장탱크가 터지면서 유독가스가 흘러나왔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가스가 집 안으로 새어 들어갔고, 숨이 막혀서 깨어난 사람들의 눈과 입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잠시 뒤에 “가스다!”, “도망쳐!”라는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뛰쳐 나왔지만,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가스였다.
좁은 길목은 이미 자욱한 연기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연기 구름의 폭이 1미터가 넘는 곳도 있었다. 짙은 갈색 불빛을 뿜어내는 가로등 주위에는 벌레 한 마리 맴돌지 않았다. 벌레들은 이미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아이를 안고서 도망치려 했지만, 골목은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꽉 막혀 있었다. 고양이와 개들도 주인과 함께 달렸다. 사람들은 넘어져서 밟히고, 어머니 팔에서 떨어져 나간 아이들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날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가스 27톤이 인도 중부에 위치한 보팔 빈민촌으로 흘러들어갔던 1984년 12월 2일이었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바로 자기 회사 전문가들의 충고를 무시하면서 인구 밀집지역의 한 복판에 공장을 설립했으며, 미국의 안전기준을 위반하면서까지 대량의 메틸이소시안산염을 공장 부지에 저장했다.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살충제 공장 밖 사체들. 출처 www.bhopal.org
인체에 치명적인 메틸이소시안산염의 저장 탱크를 섭씨 0도로 유지해야 한다는 안전 요구사항도 지켜지지 않았다. 공장의 안전장치는 해체되어 작동되지도 않았고, 저장탱크에 스며들어간 물 때문에 엄청난 화학반응이 일어났다.
정확한 사망자 숫자는 아무도 모르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3일 동안 수의 7천개가 팔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짐작은 가능하다. 이 숫자는 행방불명된 사람들과, 가족이 모두 사망하여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사람들은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장기적 건강문제로 사망한 사람들까지 합하면 사망자의 숫자는 지금까지 모두 2만 5천명이며, 유독 화학물질이 남아 있는 공장 주변의 빈민촌에는 아직도 2만5천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 지역의 여성들은 서른이면 갱년기를 맞이한다. 아이들은 기형으로 태어나고, 여자 아이들은 18세가 되어서야 생리를 시작한다. 비둘기 가슴, 물갈퀴 발, 성장지체는 보팔의 끔찍한 현실이다.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부지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독성 폐기물은 지하수로 흘러들어가서 천천히 사람들을 독살하고 있다. 더 이상 새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아이들은 위험한 독극물 속에서 오늘도 뛰어놀고 있고, 지난 26년 동안 폐기물에 오염된 목초지에서 젖소와 염소들은 풀을 뜯고 있다.
공장 부지에서 예상치보다 2만배에서 6백만배 높은 수은이 검출
보팔 여기저기에는 적갈색의 바위들이 쌓여 있고, 이중에는 암반 크기의 돌도 있다. 이것은 발화점이 낮은 Sevin(유니언 카바이드에서 생산한 카바메이트제 - 옮긴이) 덩어리이다. 여기에 불이 붙으면 1984년의 참사를 가져왔던 것과 똑같은 가스가 누출된다.
지난 2년동안 공장 부지내에서는 대규모 화재가 몇 차례 발생했으며, Sevin 덩어리 중 일부에도 불이 붙었다. 작년에 발생했던 화재로 주변 빈민촌에 있는 가구 22채가 불에 타버린 일도 있었다.
1984년 참사때처럼 주민들은 '매캐한 연기(burning chillies)'를 맡았으며 눈과 코가 얼얼하고 폐가 타올랐다. 숨이 막히고 기침을 하느라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빈민들은 독성 폐기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해마다 우기가 되면 방치된 화학물질- 이중에서도 유기인산연(organophosphates)과 중금속 -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보고서에 의하면, 공장 부지 전체에서 예상치보다 2만배에서 6백만배 높은 수은이 검출되었다.
참사가 벌어지고 나서 수년 뒤에 인근 빈민촌으로 주거지를 옮긴 사람들도 1984년 참사의 생존자들과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증상은 복부통증, 피부장애, 어지러움증, 구토, 변비, 소화불량, 가슴과 위의 작열감이다.

*병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 출처 www.bhopal.org/ Pablo Bartholomew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친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대다수는 심각한 저체중에 허약하며 피부가 변색되어 있다. 산모들은 적절히 젖을 분비하지 못하며, 어떤 여성들의 경우에는 출산한지 한 달이 지나면 젖의 분비가 완전히 멈추어 버린다. 보팔 사람들이 마시는 물에는 12가지 유독물질이 들어 있으며, 미국 환경보호국이 정한 안전기준치보다 6백배나 높은 함량이다.
레슈마 비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팠다. 심한 기형으로 태어난 레슈마는 척추가 휘었기 때문에 걸을 수가 없다. 레슈마의 등은 심하게 구부러져서 누가 보아도 레슈마가 보팔 참사 때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인 캄룬니사는 레슈마를 낳고 난 뒤 아이를 하나 더 낳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토사물에 질식하여 생명을 잃었다. 참사가 벌어졌던 그날 밤, 캄룬니사는 자식 셋을 잃었고, 아이들 모두는 너무나 끔찍하게 죽었다.
맘타 바이는 공장 부지 옆에 있는 빈민촌에 살고 있다. 집밖에는 물탱크가 있지만 유독물질로 오염되어 있어서, 맘타는 매일 두시간 동안 걸어서 물을 구해와야 한다. 맘타는 해마다 가족 중 한명이 병에 걸린다고 말한다. “내 자매는 가슴이 심하게 아프고, 어머니는 온몸이 심하게 아파서 최근에 입원했습니다. 여름이면 공장에서는 악취가 납니다.”
모하메드는 숨이 차서 5분 이상 걷지도 일하지도 못한다.
사회복지사인 가잘라 아프탑 아메드 박사는 참사가 벌어진 지 며칠 뒤에 유산했다. 그녀의 몸에 남아 있던 유독물질은 그대로 다음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1990년에 태어난 쿠슈누르(행복의 빛이라는 뜻)는 두 살때 신장 질환을 앓았다. 가잘라 박사와 남편은 1993년에 쿠슈누르 수술을 위해 3천달러를 빌려야 했다. 보상금으로는 봄베이로 가는 비행기 표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팔 피해자 55만명은 유니언 카바이드로부터 미화 500달러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받았다. 이 금액은 지난 18년동안 매일 7.5센트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 금액이다. 가스가 누출되었던 그날 밤 사망한 사람의 경우에는 18년동안 매일 19센트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인 1천250달러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인도 정부는 카니자 비의 남편이 사망한 것에 대해 보상금 지급을 거절했다. 카니자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다. 그 날 밤에 남편이 자신을 깨웠다고 카니자는 회상했다.
"우리는 공원을 향해서 달려갔는데, 북새통에 두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이틀 뒤에 아이들은 찾았지만, 남편은 의식을 잃고 길에 쓰러져 있었어요. 남편은 배가 풍선처럼 불어 올랐고, 눈은 빨갛게 변했고 뜰 수도 없었어요. 남편은 가스 참사 이후에 심각한 호흡곤란을 겪다가 작년에 호흡곤란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어요."

*어린 아이의 주검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 출처 www.bhopal.org/ Pablo Bartholomew
카니자는 자신의 건강 문제로 4년동안 매달 4달러의 보상금을 받았을 뿐이다. 남편이 죽은 뒤로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고 카니자는 호소했다.
모하메드 이드리스는 삶이 완전히 망가졌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모하메드는 숨이 차서 5분 이상 걷지도 일하지도 못한다. 최근 그는 한달간 병원에 입원해서 밤낮으로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다.
모하메드의 아내인 아니사 비도 흉부통증, 두통, 현기증, 위팽만으로 입원해 있다. 모하메드는 34kg밖에는 되지 않는다. 질병 때문에, 그리고 돈이 별로 없어서 많이 먹을 수 없다. 그는 공장부지 근처에 있는 빈민촌에 있는 방 두개짜리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아내와 여섯명의 자식과 함께 살고 있다.
자히드 하핑도 보상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 중 하나다. 그날 밤이후로는 사물을 똑똑히 볼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한달에 한번씩 손과 발이 뻣뻣해집니다. 고열이 나고, 토하고, 눈이 아픕니다. 어떨 때는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이대로 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정부는 처음에는 제게 4년동안 7천 루피(미화 140달러)를 주기로 했지만, 참사가 발생했을 때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취소했어요.” 자히드는 참사 당시 여덟살이었다.
유니언 카바이드 회장이었던 워런 앤더슨은 법정에 선 적이 없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4억7천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인도 정부와 타협했다. 지금까지 보팔 시민에게 지급된 돈은 1억6천6백만 달러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돈은 델리에 있는 은행에 예치되어 있다.
수많은 보고서와 연구조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빈민촌 주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쓰여진 돈은 8천300달러에 불과하다. 물탱크는 주민 2천명에게 제공되고 있지만, 탱크의 물은 반만 차있고 그 안에 든 물도 전혀 청결하지 않다.
마드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주 수석장관은 왜 공장부지를 청소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거절했으며, 2만5천명의 빈민촌 주민에게 언제 깨끗한 물을 공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유니언 카바이드의 회장이었던 워런 앤더슨은 한번도 법정에 선 적이 없다. 보팔 법정은 미국 정부에게 앤더슨의 송환을 요청했지만, 앤더슨은 여전히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뉴욕주에 있는 수백만 달러짜리 저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현재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중이며,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20년형에 처해지게 된다.
작년 7월에는 인도 정부가 앤더슨의 혐의를 과실치사에서 단순과실로 경감해 달라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인도 법정에 대한 앤더슨과 유니언 카바이드의 경멸을 생각하면 이상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다음 사실이 중요하다.
유니언 카바이드의 새로운 소유주인 다우 케미컬은 인도의 최대 외자유치 기업 중 하나이다. 혐의를 낮추게 되면 워런 앤더슨은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되며 다우 캐미컬은 공장을 청소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다우 캐미컬의 투자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니언 카바이드사 공장 담벼락. "살인자 카바이드는 돌아가라"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출처 www.bhopal.org / Pablo Bartholomew

*유독가스를 마신 소들도 떼죽음 당했다. 출처 www.bhopal.org / Pablo Bartholomew

*흙더미 속에 묻혀 있는 어린이의 사체. 출처 www.bhopal.org / Pablo Bartholomew

*그린피스 캠페인 - 다우 케미컬은 보팔을 청소하라!
지오리포트 georeport@georeport.net (Luke David / 번역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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