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심의 죽음…13살에 스러진 시인의 꿈

열세 살 나이의 자심에게 백혈병이 찾아온 건 우연일까.


*98년 병실에 누워 있던, 이라크의 어린 시인 자심.[사진출처: Karen Robinson ]

'의문문'의 주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미국의 의지는 집요하다.
전쟁 명분 찾기에 밤낮이 없다. 자의적인 잣대로 ‘불량국가’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라크가 알 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며 공격의 구실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알 카에다와의 연계돼 있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이제는 해묵은 ‘무기사찰 거부’를 내보였다. 이라크가 무기사찰을 허용하겠다고 하자, “못 믿겠다”며 공격 계획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천명했다.

정작 인접 국가들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미국은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긴박한 위협 요소라고 단정한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대부분 파괴, 해체됐다는 전직 유엔무기사찰단 조사관의 반론을 워싱턴은 애써 못들은 척한다.

이런 구실도 내세운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겠노라고…그런데 중남미의 수 많은 독재정권을 키워왔던 건 미국이 아니던가. 사담 후세인 역시, 한때 미국이 지원했던 독재자가 아니던가.

국제사회가 유례없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미국은 이제 전쟁이라는 ‘정해진’ 수순으로 인도할 강경한 유엔결의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다른 한편 조지 부시는 최근 “유엔 결의가 없으면 독자적으로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해, 최소한의 절차마저도 성가시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미국의 행보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사실 하나는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든 이라크를 공격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런 미국을 보며 어쩔 수 없이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대체 이라크는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이제껏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벌어졌던 사실들을 찾다 보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난다.

의문문에서 ‘주어’가 바뀌는 것이다.

“대체 미국은 이라크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자심(Jassim)’이란 이름의 이라크 소년이, 주어가 바뀐 의문문, 그 뒤엉킨 실 타래의 한 올이나마 풀어줄 지 모른다.

자심에 관한 짧은 사연은 영국 저널리스트 Felicity Arbuthnot이 진보적 시사잡지 ‘뉴 인터내셔널리스트(New Internationalist)’ 1998년 11월 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알려졌다.

열세 살 시인 '자심' -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실상을 집중 취재해 온 Felicity Arbuthnot이 쓴 ‘어린 시인(The little poet)’이란 제목의 글은 자심에 대한 회상을 이렇게 시작한다.

“2월 바그다드의 한 병원에서 자심이라는 13세 어린이를 만났다. 악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자심은 침대에 누워 크고 짙은 눈으로 힘없이 자신의 작은 세계, 병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심의 짙은 눈은, 아름답고 창백하며 투명할 만큼 깨끗한 피부와 대조되어 더욱 크게 보였다. ”

백혈병에 걸리기 전까지 자심은 이라크 남부의 바스라 거리에서 담배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걸프전 이전까지 이라크에서는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는 벌금을 물어야 했고,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나라였지만, 어느덧 아동 노동이 풍토병 같은 비극이 됐다고 Arbuthnot은 안타까워했다.

열세 살 나이의 자심에게 백혈병이 찾아온 건 우연일까.

자심이 자라난 도시 바스라는 이라크의 두 번째 도시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이 무자비한 폭격을 퍼부은 곳이다.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으로 알려진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세에서 미국 및 영국은 바스라를 비롯한 이라크 남부 지역에 70만 여 발의 열화 우라늄탄(320t)을 발사했다.

열화 우라늄을 재가공한 무기인 열화우라늄탄 세례를 받은 이라크 전역은 방사능에 오염됐으며, 특히 바스라 등 남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10배 많은 오염 수치를 드러냈다. 죽음의 땅으로 변한 것이다.

그 1991년 이후 이라크 어린이의 암 발병은 6배로 급증했다. 백혈병, 기형아, 사산도 크게 늘어났다. 기형아의 경우 걸프전 이후 10년 동안 연간 350%씩 증가했다. 신생아의 70%가 암이나 백혈병을 안고 태어나서 죽어간다.

하지만 병원에는 약이 떨어진 지 오래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은 의약품 공급마저 차단한 것이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지만, 이라크에 대해 미국은 병 주고 약마저 빼앗은 격이다.

미군이 남기고 간 핵 먼지는 크고 짙은 눈을 가진 아이, 바스라에서 담배를 팔며 생계를 이은 열세 살 어린이 자심에게도 죽음의 손길을 뻗쳤다.

걸프전으로 인한 어린이들의 피해 실태를 취재하던 중 자심을 만난 Arbuthnot은 그 아이의 병상 베개 밑에 있던 공책을 보곤 애틋한 관심과 안타까움에 젖는다.

자심의 '신분증'
Arbuthnot이 회상한 대목이다.

“자심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자심에게,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자심은 일어나 앉았다. 아이의 얼굴은 생기와 흥분으로 빛났다. 자심은 베개 밑에 있던,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공책을 내보였다. 공책에는 자심이 매일 써 온 아름다운 아랍어 시들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라서 시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심의 시들은 그 아이의 또래를 뛰어 넘는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

Arbuthnot의 눈에 자심의 시 한 편이 들어왔다.

‘신분증(Identity Card)’라는 제목이 붙은 짧은 시였다.

The name is love,
The class is mindless,
The school is suffering,
The governorate is sadness,
The city is sighing,
The street is misery,
The home number is one thousand sighs.

우리 식으로 옮기면 이렇게 될 듯하다.

성명: 사랑
학교: ‘고통’학교 ‘주의산만’ 학년
주소: ‘슬픔’지구 ‘비탄’시 ‘참담’거리 ‘한숨 1000’번지

이라크의 암울한 현실과 열세 살 자심의 여린 감성은 ‘신분증’을 그렇게 묘사하게 했다.

자심은 시를 쓰기 위해, 자신에게 각별하게 느껴지는 글귀들도 공책에 틈틈이 적어두었다고 Arbuthnot은 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인생은 우리의 열망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내가 죽음에게 물어보았다. ‘당신보다 더 큰 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이 대답했다. ‘나보다 더 큰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다. …”

자심은 공책에 쓴 자신의 시, 그리고 메모해 둔 글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Arbuthnot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할 말을 잃은 Arbuthnot은 서늘한 가슴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자심, 꼭 병을 이겨내야 한다. 왜냐하면 너는 이미 놀라운 재능을 갖춘 시인이기 때문이란다. 네가 열세 살의 나이에 이처럼 훌륭한 시들을 썼다면, 스무 살이 됐을 땐 어떤 경지에 이를지 상상하기도 힘들구나. 너는 이라크의 위대한, 그리고 오랜 문학적 전통의 큰 부분으로 남게 될 거란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자심에게 Arbuthnot은 많은 시인들과 그들의 생애,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시 구절들을 들려줬다고 한다.

그리고 Arbuthnot은 영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자심의 생명은 유럽의 구호기관에 달려 있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약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rbuthnot은 영국에서 자심에 관한 글들을 소개했다. 자심의 시들은 출판됐다. 98년 가을, Arbuthnot은 이라크에 가는 친구의 손에 자심의 시집과, 기사 스크랩을 쥐어줬다. 그 친구에게 Arbuthnot은 자심이 처음으로 인쇄된 그의 시를 볼 수 있도록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자심의 얼굴이 빛날 것을 기대하면서….

3주가 지난 후 돌아온 친구는 Arbuthnot에게 전화를 했다. Arbuthnot은 자심이 잘 지내는지 물어봤다. 친구는 자심이 생명의 끈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싸움에서 졌다고 말했다. 친구가 이라크에 도착하기 전에 숨진 것이다. 자심은 인쇄된 자신의 시를 보지 못했다. 자신의 시가 출판된 사실도 모른 채 떠났다.

Arbuthnot은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자심에게 시 한 구절을 띄워 보냈다.

“너의 얼굴을 볼 수 없기에,
너의 손을 잡아 줄 수 없기에,
나는 너를 맞이하기 위해
내 영혼을 시간과 공간 너머로 보낸다
넌, 이해할 거야”

2002년 10월, 지금도 이라크에서는 자심처럼 시인을 꿈 꾸는 어린이들이 있을 지 모른다.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신분증(Identity Card)’은 지금쯤 어떻게 쓰여져 있을까.

Georeport 유만찬 geo@georepo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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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 이라크전 , 인간방패 , war , ir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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