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언론이라는 창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비쳐진다. 이미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처럼, 언론은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기보다는 그것을 일그러뜨려서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내고 있다.
미군 병사가 이라크 어린이를 껴안고 있는 장면, 이런 것이 미국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 장면을 통해 미국은 국경을 뛰어넘은 인도주의를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얼마나 가슴 따뜻한 장면인가.
* 미·영 연합군이 아이들과 어울리거나(사진 위), 피난길에 오른 이라크인들을 안내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 서방 주류 언론들이 담고 싶어하는 장면일 것이다.[출처 http://newsimg.bbc.co.uk]
하지만, 이런 장면은 ‘진실’이 아니다. 적어도 그런 장면은 미군이 쏟아붓고 있는 가공할 만한 폭탄이 빗어내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숨기고 있다.
또한 폭탄에 맞아 다리가 찢겨져 나가고 얼굴 가득 피범벅이 된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의 눈물,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전세계 사람들의 깊은 슬픔을 외면하고 있다.
같은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보도하는데, 언론에 따라 보고 있는 면은 무척 다르다. 한쪽에서는 미군의 '자유를 위한 사명'과‘인도주의’를 애써 부각시키려 한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미군의 ‘야만행위’를 보고 있다.
이 대척점에 CNN과 알자지라가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CNN이 앞면을 보고 있다면, 알자지라는 뒷면을 보고 있다.
CNN은 이른바 ‘이라크 자유 작전’을, 미군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혹은 카타르 도하의 연합군 사령부에서, 미 국방부의 브리핑실에서 포착하고 있다.
각종 첨단무기들의 놀라운 면모, 폭격을 당하기 전의 바그다드와 폭격 이후의 바그다드를 찍은, 그 경이로운 항공사진들, 장갑차의 무한궤도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의 ‘망중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포연이 피어오르는 전장의 모습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세상인가!
그런데 CNN으로 상징되는 서방언론의 뉴스를 따라가노라면, 한마디로 말해서 어처구니가 없다. ‘스마트(똑똑한)’ 폭탄들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기본이다. 수많은 인명이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오폭들에 대해서는 ‘부수적 피해’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후세인이 사망했을 거라고 미 국방부와 CNN 등 서방언론이 한입으로 떠들어대자 이튿날 후세인이 텔레비전에 나와 연설을 하고,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 등 서방언론들이 “미국은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늄 5백톤을 수입했다”는 증거문서를 확보했다고 밝히고 나면, 이내 이 문서가 위조된 것임이 밝혀진다는 식이다.
또한, 이라크에서 위장된 화학무기 공장을 ‘발견했다’고 보도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인데, 사람들의 기억력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이틀이 지나지 않아 또다른 언론에 의해 이 뉴스는 조작된 것이라고 폭로된다.
*CNN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고 있는, CNN의 이라크 특파원 현황.
이어서 화생방 장비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하지만 이내 곧 한스 블릭스 유엔사찰단 단장이 등장해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사용 증거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미 국방부와 서방언론이 죽었다고 주장하면 살아 있는 것이고, 증거라고 우기는 것은 거지반 거짓으로 밝혀진다.
이렇듯 하루이틀이면 뒤집어질 ‘사실’을 눈 하나 끔쩍하지 않은 채, 미군과 영국군은 그리고 그들을 종군하고 있는 기자들은 ‘뱉어내고’ 있다. 역사상 이런 예가 있었는가.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이나 통킹만 사건의 진실을 밝혀지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지 않았던가.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바그다드에 남아 전쟁발발이라는 세계적인 특종을 전한 전 CNN 기자인 피터 아넷. 그는 이 전쟁이 시작될 때 NBC 방송사 소속이었다. 그런 그가 이라크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미국의 전쟁은 ‘실패’했다고 말하자, NBC는 즉각 아넷을 해고해버렸다.
어느 미국 하원의원은 아넷 기자가 이라크 방송과 인터뷰한 내용에 대해 ‘적군에게 이런 식으로 아부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메스껍다’는 말을 했다 한다. “하라는 선전활동은 하지 않고, 적에게 아부나 하다니” 하는 심사다.
일전에 로버트 피스크은 [인디펜던트] 인터넷판 2월 25일자에서 이렇게 물은 바 있다.
“이 전쟁에서 뉴스는 어떻게 검열될 것인가?” 그는 CNN의 ‘기사승인 정책 메모(Reminder of Script Approval Policy)’를 언급하면서, 미군을 따라 종군하고 있는 기자들의 기사가 어떤 식으로 애틀란타에 있는 CNN 본부의 ‘기사승인' 시스템을 통과하게 될 것인지를 지적했던 것이다.
CNN의 ‘기사 승인 시스템’은 CNN이 이번 전쟁을 어떤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일 뿐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준비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보도 방식 즉 ‘종군 기자 프로그램’을 준비해왔고 그것을 실행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총체적’이라 할 만큼 계산된 대대적인 홍보작전이다.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미군은 자국의 극소수 언론인에 한해 부분적인 종군 취재만을 허용했다. 당시 조지 부시 1세 행정부는 엄격한 언론통제를 실시했었다.
1991년 3월 16일, 이른바 ‘정보자유의 날’을 앞두고 워싱턴에 있는 '언론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부시 행정부가 정부에 대한 공공감시자인 언론매체의 역할과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드라콘(가혹한 법을 제정한 아테네의 입법자)적인' 조치를 취해왔으며 아울러 보도내용을 통제하기 위해 허위정보와 비밀을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미군 당국이 '풀' 기자의 취재에 동행하거나 모든 기사의 '보안검열',그리고 군사작전에 대한 정보의 억제 등 언론에 대한 '유례없는' 통제를 가했음을 성토했던 것이다.
9.11 사건 이후 미국은 이른바 '대테러전쟁'을 전개하면서, 언론통제는 더욱 ‘엄혹’해졌다. 2002년 2월 21일 국제언론인협회(IPI)는 “미국정부가 러시아처럼 행동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손상했다”고 비난했다.
이 협회가 빈의 본부에서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에 언론매체의 업무에 반응한 방식, 민간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한 시도는 2001년에 일어난 일 중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비판에 직면해서일까. 미국 국방부는 전략영향사무소(OSI)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 국방부는 이번 전쟁에서 대규모 ‘종군기자’를 '동원'하기로 하고 지난 1,2월에는 이들 ‘종군기자’에 대한 훈련을 실시했다. 한국의 몇몇 기자들도 ‘종군기자 프로그램’을 통해 미군의 보도제한과 언론통제 아래서 지금‘혁혁한’ 언론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활동 가운데 하나는 전황을 보고하면서, 항시 함락이 임박했다는 식의 보도가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네티즌은 이것을 이렇게 야유했다.
"바스라를 두고 곧 함락, 거의 함락, 함락 임박, 거의 장악, 사실상 장악했다고, 표현을 점차로 높이고도 아직 함락을 못 시켰는데 다음엔 뭐라고 씨부릴까 아마 바그다드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나불거리지 않을까……"
"거짓말은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쭈욱 "충격과 공포" 받은 미군.
후세인 또 방송 출연--> 미리 녹화된 것이다.
바그다드 추락 전투기 탈출병사 수색장면--> 연출된 것이다.
투항했다고 알려진 바스라 사단장--> 인터뷰에 나와 "끝까지 싸울 것"
영국기 격추--> 우리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의한 것 같다.
헬기 격추--> 우리끼리 충돌한 거다……"
문제는 이런 '거짓말'을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받아쓰고 있는 우리 언론의 현실이 더 큰 문제인지 모른다.
다른 네티즌은 또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KBS 미친 놈들, 방금 7시뉴스에서 첫뉴스로 미국주장과 달리 라마단 부통령이 생존해서 기자회견 했다는 사실 보도해놓고 다음 뉴스에서 양국 피해상황 보도하면서 첫날 폭격으로 라마단 부통령등 3명의 지휘부가 죽었다고 보도.... 웃기는 놈들일세."(특정 방송국을 폄하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 아니다.)
미군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상황 아래서 기사를 쓰고 있는 ‘종군기자’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미군 캠프의 한쪽 귀퉁이 앉아 펜을 놀리고, 미군 탱크 뒤편에 서서 마이크를 든 ‘종군기자’들, 그들은 비유하자면 ‘펜과 마이크를 든 용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세일즈해온 국가라고 알려져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미국과 영국은 이제 독선과 아집, 그리고 불법을 강요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과 영국은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나라라고 알려져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미국과 영국은 이제 전세계에 왜곡과 불신을 키우고 있는 나라다.
이번 전쟁이 사람들 사이에, 그것도 종교와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더욱 더 깊어져가는 불신의 씨앗을 뿌린 것은 집단살육의 전쟁범죄만큼이나 씻을 수 없는 죄악일 것이다.
미군의 통제과 관리 아래서 기사를 쓰고 있는 '종군기자들', 그들은 지금 또 하나의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 전쟁의 ‘진실’을 외면한 채 다 깨어져 버린 언론이라는 창문을 통해 불신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불신의 늪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는 죄.
미군의 앵무새 혹은 치어리더가 되어버린 '종군기자들'에게 그나마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당장이라도 펜과 마이크를 내려놓는 일이 아닐까. 적어도 '내 눈으로' '내 언어로' 사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기사를 써주기를 바란다. 이번 전쟁으로 희생된 '진실'을 살려내야 한다.
Georeport 안찬수 transpoe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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