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사진출처:워킹보이스 이정희]
지난 3월 31일 오후 1시, 회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화물연대’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운송하역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하나둘 과천 정부청사 앞마당으로 모이고 있었다. 부산에서, 포항에서 지난 밤을 뜬 눈으로 내리 달려온 화물노동자들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저마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붉은 띠를 들고 집회 대열에 앉는다. 집회장 입구에는 ‘경유가 인하’ ‘지입제 철폐’ ‘생존권 쟁취’ 등의 요구가 적힌 모형 화물차가 서 있어 이들의 분노와 요구를 대신 말해주는 듯 하다.
포항에서 올라왔다는 이상대씨(51)는 “지난 10년 동안 운송료는 한 푼도 오르지 않았는데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 요즘은 일을 할수록 손해가 난다”며 “불합리한 화물운송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판”이라고 얘기한다.
72년부터 화물차 운전대를 잡았다는 이씨는 “정규직으로 있다가 91년도에 1억2천만원을 주고 차를 불하받았는데 운송료는 늘지 않은 채 경유값만 오르고 다단계 알선으로 떼이는 돈도 많아 도저히 이 짓을 해 먹을 수가 없다”며 한숨이다.
91년 리터당 161원하던 경유가는 올들어 840원까지 올랐다. 화물차 1대당 한달 평균 운송비 543만원 가운데 경유가로 지출되는 비용이 265만원으로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정부는 2006년 6월까지 단계적으로 경유가를 휘발유가의 75%까지 인상할 방침이어서 화물노동자들을 더욱 울상짓게 한다.
정규직에서 지입차주로 전락한 이씨에게는 또 각종 보험료나 교통범칙금, 과적단속시 벌금, 차량 감가상각비 등도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할 몫이기 때문에 생활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자신도 모르게 중량을 초과한 물량이 실려 과적단속에라도 걸리는 날이면 고스란히 벌금도 물어야 한다.
부인과 다섯 살 배기 딸 명서를 데리고 집회에 참석한 권대인씨(34.사진)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러다가 우리 가족 다 죽는다. 지금 나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기름값이나 도로비 등이 제때 결재될 수 있도록 은행에 돈을 밀어넣고 있는 식이다. 당연히 집에 가져가는 돈은 거의 없다.”
하소연조로 얘기하던 권씨는 “사치성 소비재도 아닌 사업용화물차 경유에 대해 특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이나 5대 이상을 보유해야 운수사업등록이 가능하게 돼 있는 법을 악용한 번호판 장사와 지입료 수입 챙기기는 이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20여년 동안 운전대를 잡았다는 여성조합원 김명희씨(48.사진) 역시 불만은 비슷하다. “1억원이나 넘는 돈을 주고 차를 샀지만 운수사업자로 등록을 하지 못해 차에 대한 소유권도 행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경유가나 도로비는 비싼 반면 운송료는 10년 넘게 인상되지 않아 화물운송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란다.
화물노동자들은 생존권의 위협을 느낄만큼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로 전근대적인 지입제와 다단계 알선을 꼽고 있다.
회사 소속으로 화물운송업을 하는 노동자는 전체 20만 화물운송노동자 가운데 3%에 불과하다. 97%는 차량을 불하받아 대한통운이나 한진 같은 대형운송업체의 지시를 받아(위수탁) 물량을 운반(20%)하거나, 소규모 알선업체 등을 통해 직접 물량을 확보해서 운반(77%)하고 있다.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보험료, 통행료, 경유가는 물론 각종 범칙금까지 고스란히 개인의 부담으로 떠넘겨지고, 3~4차례를 거친 다단계 알선으로 많게는 운송료의 30%까지를 알선료로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다 장거리 운행이 많은데다 통행료 할인시간대인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야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기 때문에 야간운행은 기본이고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에 불과하며 한 달의 절반은 차 안에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근로조건이 열악하다.
누적된 피로와 졸음으로 인해 지난 한해 화물노동자의 연간 평균 중대사고 건수는 0.6건으로 3명 중 2명은 1년에 1번 이상의 중대사고를 당한 것으로 노조는 집계하고 있다. 그런데다 수입은 적기 때문에 가구당 평균 3,500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고, 형식상 ‘개인사업자’, ‘수탁관리자’라는 이유로 산재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 혜택에서 배제돼 있다.
이 같은 불만을 ‘개인’적으로만 풀어왔던 화물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 부산대에서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물연대를 결성했고, 불과 5개월만에 조합원은 1만여명을 넘어설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다. 화물연대는 지난 3월22일 포항에서 2,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미 집회를 가졌고, 이날 과천에 이어 4월13일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집회를 갖고, 노동절을 즈음한 4월30일에는 전 조합원이 서울로 모여 제도개선을 촉구할 계획이다.
화물연대 - 4개 정부부처 '한자리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연맹도 산별연맹도 아닌 단위 노조 문제 해결을 위해 4개 부처 과장급 관계자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화물연대 소속 화물운송노동자 2천여명이 지입제 및 다단계 알선 근절, 경유가 인하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갖고 있던 3월 31일 오후 2시, 과천 정부청사 5동 노동부 회의실에는 화물연대 관계자 5명과 노동부 노동조합과장, 재경부 소비세제과장, 건설교통부 화물운송과장, 산업자원부 자원정책과장이 대책 마련을 위해 간담회를 가졌다. 화물연대는 자신들의 10대 요구안을 각각 관련 부처별로 나눠,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세한 요구사항을 제시한 뒤 4월 12일까지 답변을 줄 것을 요청했다. 4개 부처 모두 간담회에 참석한 것은 화물연대의 쟁점 요구사항이 각 부서별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급속한 조직증가 추세인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파업을 할 경우 엄청난 물류대란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화물운송노동자들의 파업은 여타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과 달리 집단적으로 운전대를 놓아버리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조용하지만 거대한 파장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화물운송비는 우리나라 전체 수송비의 94%를 차지할만큼 그 규모가 크다. 운송하역노조 정호희 사무처장은 “지난 2월 대산석유화학 단지에서 화물노동자 500명이 집단적으로 3일간 운송을 거부했더니 1천억원의 손실이 났다”며 “생존권 위협에 시달리는 화물노동자들이 엄청난 파장을 갖고 올 집단 행동에까지 나서지 않도록 각 부처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
워킹보이스 이정희 기자 goforit@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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