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법은 아예 없애야 한다

불법파견도 근로자파견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바라보며

노진기(노동자의힘 회원)

지난 3월14일 서울고등법원은 근로자파견법상 파견근로가 허용되지 않는 업무에 파견근로가 이루어지는 불법파견과 정식으로 근로자파견사업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무허가파견에도 파견노동자는 근로자파견법에 의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인사이트코리아 투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SK 재벌의 파견노동자 탄압에 맞서 싸워온 4명의 해고노동자들에게 복직을 명령한 법원의 판결이 드디어 내려진 것이다.

희한한 논리들을 뚫으며 투쟁한 노동자들

SK(주)가 운영하는 전국 13개 물류센터에서 업무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으로 일해 온 파견노동자들에게 회사는 불법파견 시비를 없애는 방법으로 계약직으로의 신규채용이라는 떡고물로 파견노동자들을 회유하였으나, 4명의 파견노동자들은 해고를 감수하면서 기만으로 점철된 SK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완전한 정규직 쟁취를 위한 힘든 투쟁을 해 온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벌써 29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경과하였다. 회사는 파견이 아니라 도급이라는 이유를 들어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이면 백이면 백 거의 대부분이 사용기간 2년이 만료되는 시점에서 단행하는 파견노동자의 교체를 하지 않았다. 뒤늦게 서울지방노동청으로부터 도급이 아니라 파견에 해당한다는 판단과 시정조치를 받게 되자 SK(주)는 2000년 10월 말에 사실상 유령회사에 불과하였던 인사이트코리아를 폐쇄하고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파견노동자들에게 계약직으로 신
규채용 하겠다는 통보를 하였다. 생계유지를 위해 대부분의 파견노동자들은 이러한 회사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단 4명의 노동자들만 굴복하지 않고 해고를 감수하며 완전한 정규직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의 가시밭길로 나섰다.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희망이라는 것은 근로자파견법에 2년 이상 계속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사업주는 그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들이 파견근로자에 해당하는 만큼 근로자파견법상의 직접고용간주 규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면서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은 근로자파견법은 적법한 파견근로에만 적용되고 불법파견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로 SK(주)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복직시킬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안 그래도 근로자파견법 제정 이후 불법파견이 더더욱 만연하게 되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의 정식 명칭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고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 법의 목적이라고 법문에 제일 먼저 명시되어 있으나 이는 철저한 허구일 뿐이며 그 본질은 파견근로자를 '보호'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견근로자를 더욱 용이하게 '착취'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본질이 폭로되는 것을 감수하며 자본과 그 하수인인 사법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면죄부를 내리려고 하였던 것이다. 사법부에 합리적인 이성을 갖춘 법관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므로 그나마 이번 판결이 선고되기는 하였으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아직 남아있는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법 자체의 문제가 은폐될 우려

오히려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한 반응으로, 마치 법은 제대로 되어 있는데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사회 현실이 문제인 것이고 제대로 된 법을 만들기 위해 보완하고 법만 제대로 지켜지면 된다는 환상이 근로자파견법 철폐를 위한 힘든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투쟁 현장에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앞서게 된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현실적으로 가능한 싸움을 해야지 현 상황에서 '불안정노동 완전 철폐'를 운운하는 것은 좌익소아병자들의 발상이라며 정권과 자본에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을 만들도록 양보를 구걸하고 있는 개량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더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서 불안정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투쟁만을 고집함으로써 될 수 있는 것도 안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법파견도 근로자파견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도 나왔으니 법을 제대로 보완하여 제대로 시행만 하면 파견노동자들도 충분히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데, 파견법 철폐를 고집하고 있는 일부 이상론자들의 방해 때문에 법 개정이 더뎌지고 그 결과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파견노동자들의 현실적인 보호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맹공을 펼치고 있다.

착각해선 안될 것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이번 법원의 판결은 지극히 이례적인 것으로서 이러한 법원의 판결이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은 불법파견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내용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 현실적으로 가지는 의미는 SK(주)처럼 파견노동자가 아니라며 만용을 부리다가 당하지 말고 도급으로 위장하여 불법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주는 사용기간 2년이 되면 철저하게 파견노동자들을 교체하라는 법원의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 근로자파견법이 존재하는 한 파견노동자들은 2년이라는 주기적 해고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므로 근로자파견법을 개정해서 파견 업무를 엄격히 제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파견노동자의 사용기간을 1년 더 연장해서 3년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주기적 해고기간의 간격만 조금 늘어나는 것일 뿐이다.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법을 위반하는 사업주를 보다 엄하게 처벌하도록 법에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벌금 몇 푼 더 내는 데 지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할 뿐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견노동자들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길: 근로자 파견법 철폐!

근로자파견법이 존재하는 한 파견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합법적으로 파견노동자의 사용을 인정하는 것이 근로자파견법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법으로 파견노동자의 '보호'를 운운하더라도 파견노동자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한 보호라는 것은 허구와 기만일 따름이다. 근로자파견법의 철폐만이 파견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이고 올바르며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이 자명하게 도출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번 판결도 근로자파견법 철폐를 위한 투쟁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인사이트코리아 노조원 4명이 계약직으로의 신규채용이라는 현실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근로자파견법의 허구와 기만에 대항하여 정규직 쟁취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내걸고 싸워 이루어 낸 투쟁의 성과물이다. 장장 29개월이 걸렸다. 근로자파견법 철폐는 결코 비현실적인 투쟁이 아니다. 제2, 제3의 인사이트코리아 투쟁이 꼬리를 물고 이루어진다면 결국에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개량주의자들에 의해서 비현실적인 투쟁으로 매도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보다 조직적인 투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잘못된 법은 고쳐서 되는 일이 아니라 없애야만 한다. 이번 인사이트코리아 투쟁의 성과를 계기로 보다 근로자파견법 철폐가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강고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이 땅의 파견노동자들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유일한 투쟁임을 망각하지 말고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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