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아동문학―손창섭의 소년소설들] 아이들 마음에 남은 전쟁의 상처

[다시 읽는 아동문학―손창섭의 소년소설들] 아이들 마음에 남은 전쟁의 상처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다친 아이들 모습이 날마다 텔레비전에 비쳐 가슴이 아프다. 요행히 몸을 다치지 않은 아이가 있더라도 오랜 전쟁에 그 마음이 멀쩡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일반 문학과 아동문학 양쪽에 끼어 자주 간과되곤 하는데,전후 문제작 ‘비 오는 날’ ‘잉여인간’의 소설가 손창섭은 아동문학의 자리에서도 문제 작가로 다뤄야할 인물이다. 우선 작품 편수가 상당해서 최근에는 단행본 두 권이 실하게 묶였을 정도다. 평범한 이야기인 듯 하면서도 구성이 탄탄하고 초반부터 눈길을 확 잡아채는 것을 보면 그는 역시 일류 소설가다. 문장이 쉬우면서도 명확하고,사변에 휘둘리지 않은 채 분명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서 보듯 아동문학에 대한 이해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작품을 읽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동란에 허물어진 집과 마을보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믿음 한 구석이 무너진 아이들 마음의 풍경이 안쓰러운 까닭이다.

‘장님 강아지’(1958)의 종수는 옆집 개가 앞 못 보는 자기 강아지에게 덤벼들자 몽둥이로 쳐서 개를 죽인다. ‘꼬마와 현주’(1955)의 현주는 골골대는 닭 한 마리를 시장에서 구하려고 거짓말까지 하지만 결국 실패하자 애써 구한 돈을 내던지며 엉엉 운다. ‘돌아온 세리’(1958)에서는 개 한 마리를 잃고는 집안 사람들이 생업을 전폐한 채 목놓아 부르며 개를 찾아다닌다. 언뜻 보면 ‘동물에 대한 사랑’이 소재이고 주제이지만,그렇다면 맞아 죽은 개는 무엇이며,시장에 있던 다른 닭들은 또 무엇인가. 개를 잃은 슬픔은 이해하지만 여기서는 거의 절망에 가깝다. 이쯤 되면 생명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집착으로 바뀐다.
반면 사람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앞선다. ‘심부름’(1957)은 떡보자기를 들고 심부름을 가는 두 아이의 심리가 재미있지만 옆 동네 아이들에게 맞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아이의 심리도 한 축을 이룬다. 거지 행색으로 집안을 기웃거리던 아이가 친동생이었다는 ‘너 누구냐’(1958)도 작품의 반 정도가 의심과 두려움에 할애되고,이사온 뒤 동네 아이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오기로 싸워 이기는 ‘싸움동무’(1959)도 몰염치한 아이들한테 질려서 마지막의 짠한 감동은 따로 노는 감도 없지 않다.
사실 모든 윤리와 가치관이 곤두박질치고 깨지는 전쟁이 몇 년이나 지속되었는데 당시의 아이들에게,그리고 작가에게 무슨 균형과 여유를 요구할 수 있을까 싶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이 편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운 것이고,아동문학이 놓치기 쉬운 일면들인 것이다. 우리 아동문학사 전체로 보면 손창섭은 불쑥 튀어나온 옹이 같은 존재이고, 당대나 후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 전쟁 후유증,특히 마음 기댈 곳을 찾지 못하던 아이들에 대해 특별한 보고서를 남겼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50년대 우리 아동문학사에서 한 장을 차지할 자격은 충분하다.
박숙경(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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