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은 ‘성가신’ 세계의 눈에서 잠시 벗어난 틈을 타, 거침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난민촌 가옥들을 불도저로 파괴했으며, 사람 사는 집을 왜 부수냐며 항의하던 미국인 여대생마저 깔아 죽였다. 흙장난을 하던 아이들 머리위로 총질을 해댔으며, 그 아이들을 구하던 영국인 평화운동가를 ‘조준’ 사살하기까지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 구금, 고문, 가옥파괴, 통행금지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들판에 핀 야생화 이름보다도 무기 이름에 더 익숙하다는 팔레스타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부당한 현실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그저 돌멩이를 던지는 것 뿐이었을 듯하다. 아이들이 손에 움켜쥔 돌멩이에는,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절망과 분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인터넷 매거진 <지네트(Znet)> 4월 15일자에 게재된 아미라 하스(Amira Hass)의 글 ‘A Stone's Throw From Here’를 소개한다. [Georeport 편집자]

*이스라엘군 탱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 [출처 electronicintifada.net]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돌멩이를 든 아이들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라말라 입구에 경찰 지프 한대가 나타나면 어른들은 하던 일을 그대로 계속하지만 길 모퉁이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 몇 명이 난데없이 튀어나와 손에 들고 있던 증오의 상징을 던진다.
경찰 지프 한두대가 라말라 서부 베투냐 시내에 있는 남학교 바로 맞은 편에 차를 세울 때도 간혹 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아이들이 몰려드는 아침이나, 몰려나가는 오후에 오는 것 같다.
그럴 때면 항상 손에 돌멩이를 든 아이들 몇 명이 나타난다. 그러면 지프에서는 이 아이들보다 별로 나이가 많지도 않은 젊은 군인들이 (어쩌면 그래서 그들이 학교 앞에 차를 세웠는지도 모른다) 손에 그들만의 무기인 공포탄과 최루탄을 들고 내린다.
어떤 때는 지프 한대가 아니라 두 대가 장갑차와 군용 구급차의 지원을 받으며 나타나기도 한다. 누군가를 체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무시무시한 수송차량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길을 따라 시내로 들어오면 아이들과, 간혹 어른들까지 돌격한다.
군인들은 차의 속력을 더 낼 뿐 아무 대응도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돌을 던지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몇 발 쏘아댄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실탄이냐 고무탄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둘 다 위험하긴 마찬가지니까.
무기와 차량을 소지한 군인들이 항시 배치되어 있는 검문소에서는 아이들이 흙더미나 언덕같은 높은 곳에서 돌을 던진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돌이 닿지도 않는 곳에 있는 헬멧 쓴 군인들은 그저 상징일 뿐 진짜 목표물은 아니다.
지평선이나 태양을 배경으로 돌을 던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경이로운 몸 동작을 보여주는 유연한 운동선수와도 같다. 군인들은 아이들을 무시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공포탄과 최루탄으로 그 지역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 넣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 군인들이 아이들에게 총격을 가하기도 한다. 돌을 던지는 아이들은 군인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못되기 때문에, 그들이 정말로 아이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할 의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죽거나 다친다.
그러나 나블루스, 툴 카름, 예닌, 라파, 베이트 하노운에서 돌멩이와 불공정한 싸움을 벌이는 건 지프가 아니라 탱크와 무장 차량들이다.
철제 살상무기에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은 상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이 싸움이 절망적이라 해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이 곳은 세살짜리 아이들에게, 들판에 핀 야생화 이름보다도 무기 이름이 더 익숙한 곳이니까.
부모들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네가 점령을 막을 수 있다면 모르지만, 넌 그냥 네 목숨만 잃을 뿐”이라고 타이른다.
부모들은 얼마 안되는 저금까지 털어서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거나 아이들을 PC방에 보낸다. (칼란디야 난민촌같은 곳에도 PC방은 어김없이 있다) 다른 곳에서처럼 자기 아이들이 그냥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정신이 팔리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차가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 등·하교시에 같이 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가 없는데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감시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아이들이 돌을 던지다가 죽거나 다치는 이 현상에는 강한 동족의식같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난민촌 인접지역에는 항상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상주해 있다는 사실이다.
적은 하층계급 거주지역인 이 곳을 다른 곳보다 더 자주 기습 방문한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좁은 길가는 적의 대응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마을은 주변이 녹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은 항상 고립되어 있다.
근처에 있는 검문소 때문에 노동자, 공무원, 학생, 아픈 사람들처럼 꼭 가야하는 사람들 빼고는 마을 사람들이 시내에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마을에서 시내까지는 7분밖에 안 걸리지만 실제로는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데다, 시간이 걸릴수록 돈도 더 많이 들고 더 위험하다. 결국 이 아이들에겐 유도, 전통무용, 농구, 영어, 아동극, 수영처럼 도시에서 제공하는 놀잇거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검문소를 벗어나서 이스라엘인들만이 차를 타고 지나다닐 수 있는 넓은 거리는 아이들에게는 그냥 지나치고 마는 상징 이상의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의 눈에는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검은색 아스팔트 길이 이스라엘 권력과 차별적인 정권의 체현이며,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차들은 차별을 의미하는 증오의 상징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체포당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한밤중에 아버지가 깨워서 막 눈을 뜬 아이가 무장 군인들에게 잡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돌을 던진 것에 대해서 심문당한 뒤, 읽을 수도 없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이 아이들을 구타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난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는 불과 몇 살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그런 상황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그런 일을 당할 때는 피지배자는 지배자 앞에서 너무나 초라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일주일에서 석달까지 잡혀 있다 돌아오는, 북적대고 악취가 나는 유치장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팔레스타인 아이들이라면 모두 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곳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여전히 손에 돌멩이를 들고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들이 겁쟁이라고 생각할까봐? 폭력에 길들여져서? 친구를 따라하고 싶어서? 자랑하고 싶어서? 지루해서? 놀이거리가 없어서?
이 모든 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아이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적인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것들은 통속적인 심리학일 뿐이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아홉 살짜리와 열 살짜리 한 남매에게 들어볼 수 있다. 이 남매의 부모는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은, 보통 아이들이 하는 그런 놀이를 하며 자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복무하길 거부해서 감옥에 간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있다는 말을 이 남매가 들었을 때, 아홉 살짜리 동생은 놀란 나머지 “여기 와서 군인이 되는 대신에 감옥에 가는 걸 더 좋아하는 유대인들도 있어?”하고 물었다.
누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우리를 해치기 싫어서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걸 택했을 거야.”(Amira Hass / 번역 Georeport 김지연)
지오리포트 georeport@georepo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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