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두루, 나누리’ vs 달러

‘전쟁 이후의 전쟁’ (1)


*사진출처:Georeport

이라크는 석유대금을 달러에서 유로로 바꾼 첫손 꼽히는 나라

1.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이 ‘사실상’ 종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마찬가지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종전 선언’을 하지 않을 거라는 보도도 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을 ‘재선’ 때까지 계속 진행형인 상태로 놓아둘 거라는 관측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며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글이나 이 전쟁이 한반도를 포함하여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분석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글에서 공유되는 인식이 있다면, 그것은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듯, “전쟁이란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또한 “정치란 경제의 연속”이라는 인식이다.

이라크 전쟁은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다. 석유라는 요인의 중요성은 ‘석유을 위한 전쟁 반대’라는 전쟁 반대 구호에서 보듯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점점 고갈되어가는 화석연료, 여기에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석유 매장량 2위라는 사실, 특히 ‘에너지안보’를 그 어떤 정책과제보다도 앞세울 수밖에 없는 부시 정권의 속성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단지 석유‘만’을 위한 전쟁은 아니었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셀리그 해리슨이 ‘제국주의, 이스라엘, 석유’라는 글에서 지적했듯이, “이라크 침공은 국방부에 주로 몰려 있는 친이스라엘 매파 그룹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새롭게 중동질서를 재편하고자 하는 것도 이번 전쟁의 중요한 요인이다.

다른 한편, 이라크 전쟁을 ‘낡은 유럽’과 ‘앵글로-아메리카 군사추축국’ 사이의 충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를테면, 미셀 초스도프스키는 ‘앵글로-아메리카 군사추축국(The Anglo-American Military Axis)’ 이라는 글에서 “미국은 발칸반도에서 프랑스와 독일과 이권을 나누어 가졌지만, 이라크에서는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자국의 지배를 확립하고자 한다”고 지적하면서, ‘낡은 유럽’과 ‘앵글로-아메리카 군사 추축국’ 사이의 충돌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바 있다.

첫 번째, 군산복합체의 경쟁.
군사동맹의 구조가 기본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특히 1999년부터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와 군사작전을 공동으로 실시할 것을 동의했고, NATO가 분할되고 있다는 것. 또한 미국과 영국의 군사추축국의 방위산업체에 프랑스와 독일의 ‘유럽항공우주방위회사(EADS)라는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사실.

두 번째,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지배.
이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다. 이라크 전쟁이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석유를 둘러싼 이권에서 유럽과 러시아, 중국을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 (더불어 ‘석유’를 자원무기로 활용하여 석유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일본, 중국 등을 겨냥할 뿐만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무력화함으로써 아랍국가들을 ‘통제’하려 한다는 견해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세 번째, 화폐와 통화 시스템 즉 유로와 달러의 대립.
미국의 월가와 프랑스, 독일의 금융이해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 유럽연합이 통화를 유로로 통합함으로써 달러의 ‘화폐패권’이 침해를 당했다. 경제 지배의 도구인 달러가 유로로 말미암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것. 영국이 유로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미국과 영국의 군사추축국’의 일면이다. 금융과 통화를 지배하고자 하는 유로와 달러의 대결은 구소련지역, 중앙아시아,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약, 석유, 전쟁>의 저자인 버클리대학교의 스콧 교수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 가운데 이라크는 석유대금을 달러에서 유로로 바꾼 나라 가운데 첫 번째로 손꼽히는 나라였다(2000년). 미국이 이라크를 눈엣가시로 여길 만한 대목인 것이다.

세계의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위협할 만한 사례를 스콧 교수는 이라크 외에도 여럿 거론하고 있다. 이란의 포렉스 펀드 자산의 절반이 달러에서 유로로 바뀌었으며, 2002년에는 중국이 외화 준비금을 유로로 바꾸었으며, 러시아중앙은행도 480억달러에 달하는 외화준비금 가운데 20%를 유로로 바꾸었다. 또한 캐나다은행, 중국인민은행, 대만중앙은행도 유로 통화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북한도 2002년 12월 1일부터 북한 내 달러 사용은 전면 금지하고 대외 유통 및 결제 수단도 유로화로 바꾸었다.)

초스도프스키의 이런 지적은 ‘속도’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적, 철학적 고찰을 계속해온 사상가인 폴 비릴리오(Paul Virilio)가 이 전쟁을 ‘제1차 세계내전’라고 말한 것이나, 다른 측면이겠지만, 전 CIA국장이었던 제임스 울시가 제3차세계대전인 냉전에 이어서 “미국은 지금 제4차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 그 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 국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달러 보이콧 운동’

2.
‘낡은 유럽’과 ‘앵글로-아메리카 군사추축국’의 대립 가운데 이라크 침략 전쟁을 화폐와 통화 시스템 즉 ‘달러 vs 유로의 대결’로 보는 점에 대해서는 좀더 설명을 구해야 할 듯싶다.

이 점에 대해서 설명을 구하려면, 간략하게나마 1876년 금본위제가 확립된 이후의 국제금융시스템에 대한 반추가 필요하다.

금본위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크게 흔들리면서 혼란에 빠져들었다. 1944년, 달러를 기준으로 각국 화폐의 가치를 고정시키게 된다.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고정환율제)의 확립이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의 경제성장, 베트남전쟁, 68혁명의 영향으로 자본주의 세계 내에서 미국 경제의 위상은 크게 흔들렸고, 1970년말부터 1971년 중반까지 각국의 금태환요구가 거세지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사실상 포기하기에 이른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포기가 의미하는 것은 화폐가 금과 태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경제는 물질생산부문에서 비물질생산부문으로 이동이 가속화된다. 국제화폐교역은 늘어나지만 그 가운데 실질적인 물질생산과 유통과 관련된 부분은 점점 더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화폐의 증가율이 물질생산의 증가율을 몇 배나 웃돌게 되었다.

즉 오늘날 자본주의 내의 지배적인 자본형태는 화폐자본-상품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화폐자본의 과정을 거치는 ‘산업자본’이나 화폐자본-상품자본-화폐자본의 과정을 거치는 ‘상업자본’이 아니라, 화폐자본-화폐자본의 과정을 거칠 뿐인 ‘이자산출자본’이다.

실질적인 부의 생산이 없이도, 다시 말해 물질생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이자산출자본의 유동의 결과로 부의 증가를 보장할 수 있다!(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딜러들은 자본이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 지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달러패권이 유지되고 달러강세 정책이 유지되는 한, 국제자본은 미국으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 (금융패권을 통한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을 피터 고완은 ‘세계 없는 세계화’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에 모인(투자된) 달러는 결국 미국의 주식, 채권, 부동산의 가격을 상승시킨다. 이렇게 해서 생긴 잉여자산으로 미국은 전세계의 공장들(한국을 비롯해서, 일본, 중국 등)에서 생산된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만약 달러패권이 붕괴한다면, 미국의 주식, 채권, 부동산의 ‘거품’은 꺼질 것이고 미국의 경제번영은 ‘끝장’이 날 것이다.

그런데, 1999년 1월 1일 11개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결성한 유럽통화동맹(EMU)이 출범하고 2002년 1월 1일부터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함으로써 달러패권은 위협받게 된다. (유럽연합 15개국 가운데 유럽통화동맹에 참가하지 않았던 국가는 영국, 덴마크, 스웨덴이다. 이 가운데 영국은 추축국 가운데 하나며, 덴마크도 이번 전쟁에 페르시아만에 잠수함과 호위함대를 파견했다.)

앞서 스콧 교수가 예를 든 것처럼 세계 각국이 기축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는 사태가 계속 진행되어 국제자본이 뉴욕의 월가가 아니라 유럽은행으로 몰린다면, 미국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제국의 잉여소득’(imperial premium)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코소보전쟁을 일으킨 것이나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런 자본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슬람 국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달러보이콧 운동’을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리비아는 정부 차원에서 자국 기업들에 대해 미국 및 영국 기업과 거래를 중단할 것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거래 통화를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레바논에서는 시민단체 성격의 ‘보이콧위원회’가 구성돼 달러는 물론 미국 은행도 이용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슬람 성직자들은 “달러화 보이콧은 경제 지하드(성전)”라고 주장하고 있다.(한국경제, 2003년 4월 17일자, "유로화 Yes, 달러 No" … 이슬람국가 '달러 보이콧' 확산)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달러팔기 혹은 경화를 유로로 사용하기 제시

3.
이런 가운데 최근 박노자 교수는 ‘평화를 사랑한다면 달러를 팔자’(한겨레21 2003년 4월 10일자, 454호)라는 글에서 “이 침략의 목적이 미국 헤게모니의 주춧돌인 ‘달러에 의한 세계 장악’ 상황을 지속시키는 것이라면 침략자인 미국을 약화시키는 묘법은 무엇일까”라고 묻고는 미국상품 불매운동, 달러 팔기운동을 소개하면서, 유학이나 여행으로 경화가 필요하다면 달러 아닌 유로를 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라크 아이들의 피가 묻은 제국의 돈을 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달러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박노자 교수는 말한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주로 달러인데다가 대미수출 비율이 20%나 되어 ‘달러 제국주의’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국가나 사회 전반 차원에서 미제상품이나 달러에 대한 대규모 불매운동이 우리의 경우에는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달러팔기 혹은 경화를 유로로 사용하기 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의문이 생긴다. 팔아넘길 달러가 아주 없는 사람들이나 해외유학이나 여행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달러제국주의 약화 방식'이란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박노자 교수가 제시한 '달러 제국주의'의 약화 방식에 좀더 근본적인 의문은, 이라크 전쟁이 ‘유로 vs 달러의 대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결국 이 대결의 다른 축인 유로를 강화시켜 줌으로써 결국 ‘유로 vs 달러의 대결’을 부추기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전쟁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통념처럼 퍼졌던 ‘제3의 길’ 논의가 블레어 정권이 보여주듯 하나의 환상에 불과할 뿐이며 결국‘군사 케인즈주의’라는 야만의 방식으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것인다. 또한 '강화된' 유로가 달러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군사 케인즈주의'라는 야만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시라크는 프랑스의 패권을 꿈꾸는 드골주의자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달러 제국주의를 허약하게 만들기 위해서 유로 제국주의를 강화하자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달러를 약화시키고 유로를 강화한다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내재해 있는 모순의 필연적인 폭발을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의 야만적 파괴 행위(전쟁)을 피할 수는 있을까. 아닐 것이다.

지역화폐운동으로 ‘달러 제국주의’ , ‘유로 제국주의’ 극복을

4.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길’이 있는 것일까. ‘길 아닌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예로서 지역화폐운동을 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역화폐운동이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소개된 것은 투기적 금융자본의 약탈적 공격으로 외환위기가 일어났던 때이다. 지역화폐운동에는 화폐 자체가 특정 상품이 되어 투기의 대상이 되고만 ‘화폐’가 아니라 가치 측정 수단으로서의 ‘돈’이라는 그 본질적 필요성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또한 ‘공동체화폐’에는 교환체계나 경제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삶의 관계망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지역교환거래체제인 레츠(LETS, Local Exchage Trading System)는 공동체나 지역을 근거로 한 현대판 품앗이이다. 참가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품과 각종 서비스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 그것을 지역통화로 환산한 뒤, 다시 이것을 이용하여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좀더 체계적인 그물망(네트워크)을 말한다.

1980년대초 미이클 린턴이라는 이에 의해 창안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1996년 <녹색평론>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이후,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끊임없이 시도되고 실험되고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가 교육통화도 시도하고 있다

광주 나누리센터 대표인 김인철 씨는 ‘새로운 돈의 얼굴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물질과 돈에 얽매여 인간적 가치가 무너지는 사회 현실, 노동의욕과 능력이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거리로 내몰리는 현실, 익명화된 화폐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돈에 의해 종속되어지는 현실, 외부에서 끌어오는 물건과 상품에 의한 에너지 낭비와 환경오염의 심각성, 고실업시대 속에서 나타나는 미래의 불안감 등의 극복을 동반하며 하나의 대안으로 제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 두루, 나누리. 이 이름씨들은 모두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지역화폐의 이름이다. 사랑은 올 3월에 문을 연 녹색대학이 만든 녹색화폐의 이름이고, 두루는 대전 지역에서 지역통화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한밭레츠의 화폐 단위, 그리고 나누리는 광주나누리센터를 중심으로 한 지역화폐의 이름이다.

이 이름들은 그냥 지어진 이름들이 아니다. 녹색대학이 지역화폐를 만들 때 품앗이의 ‘품’으로 할지, 아니면 ‘사랑’으로 할지 숱한 사람들의 논의를 거쳤다. 한밭레츠의 두루는 ‘두루두루’ 널리 쓰도록 하자는 뜻을 담았고, 나누리란 말엔 거듭 말할 필요도 없이 ‘나눔’의 뜻이 담겨 있다.

‘달러 제국주의’를 비껴가면서 ‘달러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길은 유로를 사들임으로써 유로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화폐들이 품고 있는 ‘사랑’과 ‘두루’와 ‘나누리’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는 것이 아닐까.

Georeport 안찬수 transpoe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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