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방과 문화다양성, 쟁점과 노력들


사진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실 문화시장 개방을 둘러싼 논란은 스크린쿼터의 유지를 둘러싸고 지겹게 논의되었다. 그리고 주요한 논점들은 대개 확인되었다(물론 충분히 논의된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한 말은 많았으되 그 말들은 언제나 겉돌았으며, 진도를 나가지는 못했었다). 그것을 다시 원점부터 시작하는 것은 조금은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논쟁을 해 가면서 언제나 문제는 서로의 원칙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따라서 원칙을 재확인하고 논쟁의 상대방이 우리에게 덧씌운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들로부터 벗어나는 작업은 언제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글은 이러한 취지에서 씌어진 것이다. 다만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피하고 초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Q&A의 형식을 빌었다.

Q1. 문화시장 개방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문화시장에 대한 개방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86년부터 시작한 가트(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에서부터이다. 가트는 이전까지 공산품의 관세철폐를 주요한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서비스(문화산업은 서비스 부문으로 포함되어 있다)나 농산물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서비스 등의 비중이 점차로 커져감에 따라 이러한 부문들을 다자간 무역 협상의 의제로 포함되었다. 이후 우루과이 라운드 과정에서 서비스 부문에 대한 협상이 개시되었으며, 이는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으로 반영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가트가 1994년으로 끝나고, 1995년 WTO가 출범함에 따라, GATS는 WTO 협정의 부속 협정으로 채택되었다.

Q2. 문화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문화의 공공적 성격은 문화산물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해내는 공동체(그것이 반드시 국가단위일 필요는 없다)의 뿌리깊은 전통과 관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나온다. 문화산물은 그것을 생산해내는 공동체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며, 공동체 성원들의 정체성 형성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문화산물은 생산자(집단)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표현의 정화라는 점에서 다른 상품과 차별성을 가진다.

Q3. 문화시장 개방의 논점은 무엇이었나?

문화시장 개방의 논점은 거칠게 말해, 문화적 예외(Cultural Exception)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졌다. 문화적 예외란 문화가 가지는 공공적 성격을 인정하여 특수하게 고려하는 국제 협약상의 관습을 말한다. 문화적 예외가 인정되면 자국 문화산업에 대한 개방 유보, 정책적 지원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차별대우가 용인된다. 문화적 예외가 본격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루과이라운드 기간 동안의 GATS 협상 과정에서이다. 이 때 미국, 일본 등 몇몇 국가들은 문화산물 역시 일반 상품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며 문화분야의 무역자유화를 지지했다. 하지만 EU, 캐나다, 인도, 한국 등 대다수의 국가들은 문화가 각국에서 지니는 공공적인 중요성을 주장하며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였고, 이러한 취지가 GATS의 본문이나 부속서에 명문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문화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된 것은 1997-8년의 다자간 투자협정(MAI)의 협상과정에서였다. 다자간 투자협정은 급격하게 증가하는 투자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제기된 것으로 OECD에 상정되어 논의되었다. 하지만 다자간 투자협정은 협상 과정에서 기술변화, 국제 무역 및 자유화, 국가의 역할, 공공 서비스, 공적이익과 시장의 힘 사이의 균형 등 다양한 이슈들에 있어서 MAI 협상국들 스스로도 미처 예기치 못했던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다. MAI의 협상국들은 공적이익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고, 문화, 공중보건, 환경, 사회적 권리를 보호하는 ‘예외’나 ‘유보’를 받아내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많은 예외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가 ‘문화산업에 대한 특수조항’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프랑스의 제안이었다. 프랑스는 ‘이 협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회원국이 문화적 다양성과 언어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장려하기 위해 외국 사업체의 투자와 이들 사업체의 활동조건을 규제하는 경우, 이를 방지하는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외조항을 협정에 포함시키기를 원했다. 결국 이러한 논쟁 끝에 다자간 투자협정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물론 전적으로 문화적 이슈로 인해 다자간 투자협정이 무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적어도 상당수의 국가들이 문화에 대한 자국의 정책적 자율권, 문화의 공공성, 문화의 다양성과 같은 이슈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Q4. 문화시장 전면 개방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문화 국수주의자들인가?

당연히 아니다. 문화시장 전면 개방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보다 폭넓고 공정한 문화의 교류, 보다 진일보한 문화 다양성의 보장을 원한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그들은 할리우드 메이저들의 독과점 체제로 운영되는(이는 자국 시장 규모에 의해 개별 문화산물의 투입 자본 규모가 결정되는 지적 상품의 근본적인 특성에 의해 뒷받침 된다) 현재의 문화산업 판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의 압도적인 지배력에 대해 최소한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방어적인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한 예를 들면 미국은 전 세계 영화시장의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고, 자국의 영화 점유율이 30% 이상인 국가는 수입제한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를 제외하면 일본, 프랑스, 한국 정도밖에 없다.

Q5. 그렇다 하더라도 개방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138개 WTO 회원국 중 문화의 핵심적 분야인 시청각 산업 6개 분야(영화 제작 및 배급, 영화상영, 라디오 및 TV 서비스, 라디오 및 TV 전송 서비스, 사운드 녹음, 기타) 중 단 1개 분야라도 개방 약속을 한 국가는 모두 합쳐봐야 29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EU 및 캐나다와 같은 국가들은 적어도 시청각 서비스 분야에 있어서 어떤 개방 약속도 하지 않으며, 타국에 개방 요구도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다.
나아가 EU와 캐나다가 중심이 된 47개국 문화부 장관들의 모임인 INCP는 문화분야의 교류를 WTO 체제 바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제 문화협약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문화협약은 현재 초안이 나온 상태이며, 유네스코를 통해 규정을 다듬고 회원국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조준형 / 영화인회의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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