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만족을 위해 아동의 신체에 접촉하는 행위. 아동과 성인 사이의 부적절한 성적인 행동'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가 최근 펴낸 `2002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나와 있는 아동성학대의 정의다. 선뜻 와닿지 않는 `아동에 대한 신체접촉'과 `부적절한 성적인 행동'의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아빠는 전화로 엄마가 있냐고 묻는다. (중략) 옷을 안 벗으면 아빠가 나를 막 때린다. 아빠 고추를 잠지에 넣는다. 엄마가 오면 빨리 옷을 입는다. 난 막 울고 있는데 변태는 싱글벙글 웃는다'. 원망, 분노,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이 글은 영숙(가명.9)이가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학대 사실을 A4용지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내용 중 일부다.
가연(가명.4)이는 부모의 이혼소송 때문에 작은아버지 집에 맡겨졌다. 작은아버지는 아이가 혼자 있는 틈을 타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거나 조카딸의 성기를 만졌으며 이 과정에서 가연이의 성기가 찢어졌다.
◇실태=집, 학교, 유치원, 놀이터 등 보호되고 뛰어놀아야 할 공간에서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어른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고 있다. 영숙이와 가연이가 겪은 일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아동성학대가 일부 가정의 정신병리적 현상이란 인식과는 달리 많은 아동성학대는 가해자가 친족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원이 300건의 아동성학대(만13세 이하) 사례를 분석한 '아동성학대의 실태와 특성'에 따르면 아동성학대 가해자 중 친족이 전체의 36.3%에 이른다. 또 동네사람 21.0%, 동급생 및 선배 7.7%, 교사 6.7% 등으로 결국 아동 주위 사람들의 성학대가 전체의 80.7%에 이른다. 친족에 의한 아동성학대는 피해아동이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학대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아 지속적.장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음란물 등의 범람으로 포르노그래피를 보여주거나 '놀이'를 가장해 아이들을 추행하는 성놀이의 비중이 늘어나는 등 아동성학대 유형이 다양해지는 추세에 있다.
◇후유증=아동성학대는 장기적이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20대나 30대가 되어서도 성적인 혼란과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ㄱ씨(34.여)는 13세때 성폭행을 당한 뒤부터 남자들에게 과도한 성적 호기심을 보이고, 남자들을 볼 때마다 성기부분을 쳐다보게 된다. ㄴ씨(26.여)는 9세때 유괴돼 강간을 당했다. ㄴ씨는 남자 친구와 6년째 사귀고 있지만 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성관계를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가 애정표현을 하면 과거 악몽이 떠올라 심한 복통과 성기 통증에 시달린다.
강연구원은 "아동학대는 악몽.우울.공포 등의 '심리적 후유증', 성병.각종 통증.질손상 등의 '신체적 후유증', 자위행위.성적문란.성공포.성혐오 등의 '성적 후유증', 학습거부.대인기피.매춘.마약 등의 '사회적 후유증' 등을 낳는다"고 밝혔다.
연세의대 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아동성폭력이 발달에 미치는 영향 및 정신과적 대처방안' 보고서에서 "아동성폭력은 다른 폭력에 비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면서 "특히 성적인 본능 조절, 긍정적인 성정체감 형성, 바람직한 성역할, 성인이 되어 건전한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 등에 크나큰 손상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대책=아동성학대 문제가 최근 공론화하고 있지만 아동성학대 예방과 피학대 아동 보호와 관련한 시설 및 전문인력, 법적.제도적 장치는 미비하다. 아동성학대와 관련한 전문병원은 전국에 6곳, 피학대 아동을 위한 격리시설도 6곳에 불과하다. 또 전문 수사관이나 정신과 의사 등도 그 수가 극히 미미하다.
아동성폭력 피해자가족모임 송영옥 대표는 "아동성폭행사건을 전담할 수 있는 전담수사팀, 성폭행 피해자.가족 전문치료 교육센터, 성폭행 치료 전문병원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이호균 소장은 "기본 법률관계, 소아정신병 등과 관련한 아동성폭행 전문인력을 양성.교육해야 하며 경찰.의사.변호사들과 협조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장은 또 "아동성학대도 다른 아동학대와 마찬가지로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며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및 성학대 예방교육이 필수"라고 말했다.
김종목.신현기 기자
jomo@kyunghyang.com
아동성폭력 피해자 가족모임 송영옥대표 - "가해자에 대한 엄한 처벌, 법.제도적 장치 마련돼야"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동성폭력피해자가족모임 사무실. 가족모임 송영옥 대표는 무척 지쳐 있었다. 이날도 가족모임으로 접수된 아동성학대 피해와 관련한 현장 조사를 여러 군데 다녀왔다.
"5월4일 이후에만 20여건의 아동성학대 피해가 접수됐습니다. 하루에 2번꼴입니다. 추행에서 강간까지 유형도 다양합니다"
자신의 딸이 성폭력을 당해 오랜기간 법정투쟁을 벌여오기도 한 송대표는 "아동성학대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제도적 문제는 이를 못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대표는 아동성학대와 관련한 검찰.경찰의 수사과정과 태도의 개선을 문제삼았다. 송대표는 또 "경찰관이나 검사나 운좋게 괜찮은 사람을 만나면 한두번으로 조사가 끝나지만 보통 네다섯번인 데다 심지어 열두번을 불려나간 아이도 있다"면서 "피해아동이 또 한번의 상처와 고통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법무부가 피해아동 조사를 1회로 끝내도록 하겠다고 밝히는 등 아동성학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송대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송대표는 "1회 조사를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육하원칙을 가지고 진술을 강요해선 안된다"며 "아이 입장에서 어떻게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를 연구해야 하고 또 진술을 받는 조사실도 상처받은 아이를 고려,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대표는 "무엇보다 경찰이나 검찰, 재판부에서 아이들의 진술 녹화 테이프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아동성폭력피해자의 친권자 증거보전 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동성학대는 고소.고발되더라도 실제로 기소되거나 처벌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송대표는 "심지어는 정액과 음모가 검출돼도 증거부족이나 가해자의 정신이상, 아동 진술의 부정확성 등을 들어 기각되기도 한다"면서 "엄격한 처벌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목 기자
미국 전문보호기관 운영제도, 법조.보건 통합현장조사 원칙 - 피해아동 보호 법적시스템 완비
성학대를 당한 뒤에도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성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시스템이 완비돼 있다.
성학대를 포함해 학대받은 아동들은 미국 연방정부가 1974년 제정한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과 각 주정부가 이에 근거해 1976년 만든 '아동학대신고법' 등에 따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해 보호된다.
주정부 산하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사례가 신고되면 현장조사를 거친 뒤 가족에 대한 교정서비스 및 아동에 대한 격리보호 등을 실시한다.
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보건담당자, 법조인과 함께 현장조사팀을 구성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통합적인 현장조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피해아동이 사실조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조사를 받아 이중, 삼중의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만약 학대행위자인 부모가 아동의 격리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교정서비스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할 경우 법원의 개입없이 모든 절차가 진행된다. 그러나 부모의 자발적인 동의가 없을 때는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길어도 18개월 이내에 친권박탈, 입양 등의 후속조치가 결정되도록 하고 있다.
특히 1980년 제정된 '입양지원 및 아동복지에 관한 법률'은 소년.가정법원이 성학대를 포함한 아동학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은 성학대 아동을 발견한 즉시 아동을 격리할 수 있으며, 늦어도 72시간 이내에 법원으로부터 격리심사를 받아야 한다. 격리후 5일 안에 예비공판을 열고, 곧이어 기소공판(예비공판 후 30일 이내), 평결공판(예비공판 후 75일 이내)을 한다. 여기에선 아동을 어느 기관에 배치하며, 격리가 과연 적절한가 등에 대해 심리한다. 마지막으로 평결공판 이후 11개월 안에 최종 공판을 열어 친권박탈, 입양 등을 결정한다.
또 이 과정은 피해아동의 장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소송절차 연기를 최소화하고, 한 가정의 문제를 일관되고 책임감있게 다루기 위해 한명의 판사가 한 가정의 문제를 전담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신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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