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 정보인권 함께 가자‥①다가오는 빅브러더 시대

초등학교 IQ부터 현재 앓고 있는 병까지 정부앞에 발가벗는 국민들

몰래카메라와 폐쇄회로, 도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기록된다. 백화점이나 은행에는 내가 어떤 물건을 좋아하고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자료가 자신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언론엔 카드정보가 무더기로 유출돼 범죄에 이용됐다는 소식이 연일 오르내린다.

불심검문에 사용하는 경찰의 휴대폰은 순식간에 수배자를 골라내고, 사람들은 이제 주민등록증 뿐 아니라 목소리나 지문, 안구 등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휴대전화에 위치추적이 가능한 반도체 설치를 의무화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대형참사 때마다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의 유전자정보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든다. 살인·강도·강간으로 형이 확정된 범죄자들의 유전자정보는 반드시 수집해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진다.


조지 오웰이 예언했던 ‘빅브라더’의 등장은 첨단 정보기술의 발달로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개인정보를 간절히 원하는 건 기업과 범죄자들이지만, 이들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야 할 정부마저 ‘효율’이라는 유혹에 빠져 스스로 ‘빅브라더’를 자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온 전자정부 11대 중점과제(표1참조)의 목표는 행정의 속도와 편리성의 극대화였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 주민등록·부동산·자동차·세금·보험 등 국가가 갖고 있는 주요한 자료들을 통합하고, 필요에 따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보화 시대의 효율적인 통치수단을 발빠르게 구축하고 나선 셈이다. 2002년 말 발행된 정부 관보에 따르면, 정부와 산하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국민의 개인파일은 300종류가 넘는다.(표2참조) 현재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자료는 외교통상부, 경찰청, 병무청, 국세청, 국민연금공단 등이 수시로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법무부의 출입국자료는 국가정보원과 감사원, 국민연금관리공단, 의료보험공단, 국세청 등이 디스켓 등을 통해 받아 본다. 경찰청의 조직폭력배, 신원조회, 범죄경력 등의 자료도 국가정보원, 청와대경호실, 국방부, 법무부, 외교통상부 등에서 접근할 수 있다. 국세청이 갖고 있는 종합소득세 등의 자료도 보건복지부 등 5개 기관에 제공된다.

각부처 개인파일 300종 보유 온라인 공유
뚜렷한 법적근거 없고 인권침해 위험 커



각 정부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합친다면, 초등학교 시절 지능지수(IQ)에서부터 현재 앓고 있는 병의 종류까지 개인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알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정부가 한해 금융기관에 요청하는 개인 금융거래정보가 연간 300만건을 넘어섰을 정도로 외부에 요구하는 정보량도 늘었다.

하지만 수집된 개인정보가 행정편의를 위해 공유되는 것은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어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 이은우 변호사는 “행정정보의 공동이용은 국가권력의 우월적인 정보축적으로 인한 국민감시와 인권침해의 위험이 클 뿐 아니라 수집된 정보가 애초 목적이 아닌 다른 곳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나 기관에서 수집한 정보가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는 찾기란 어렵지 않다. 최근엔 병원에서 정신질환 환자 500여명의 개인정보를 빼낸 이들에게 행정망을 이용해 주소지를 검색준 동사무소 직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이 정보로 신용카드 660여장을 발급받아 100억여원을 가로챘다. 또 차량 20여만대의 보험정보를 보험개발원에서 빼내 재가입 영업에 활용한 보험회사 직원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은 붙잡히기 전 90여억원 상당의 실적을 올렸다.

사정이 이렇지만 아직 국내에 정보인권 개념이 자리잡지 못한 것을 두고 인권단체들은 “과거 국민의 정보를 관리하는 데 익숙했던 권위주의적 행정과 이를 스스로 익숙하게 여겨온 국민정서가 결합돼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국가에 안전하게 등록돼 있어야 했던 경험 때문에 정부의 ‘빅브라더’ 역할에 이렇다 할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국장은 이와 함께 “정부의 정보화 정책은 마치 늦은 근대화를 만회하기 위해 속도경쟁에 치중했던 개발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며 “관료들도 전자정부 추진을 새로운 근대화나 절대선쯤으로 여기고 있어, 정보인권 문제에 부딪혀도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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