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자노조 03 임단협포스터
지난 달 27일,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현대자동차 산별노조 전환 투표결과가 나왔다. 총 재적 조합원 3만9,100명 중 3만4,846명(89.09%)이 투표했고, 이 가운데 2만1,625명이 조직전환에 찬성, 62.05%의 찬성율을 기록하며 부결됐다.
노조 규약상 재적인원의 2/3 이상이 찬성해야 조직형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겨우 1,610표 부족으로 산별전환이 물 건너가는 바람에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깝고 아쉬운, 그러나 예견된 투표결과
불과 사흘 전인 24일에 발표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의 결과가 겨우 54.8%로 사상 최저의 찬성률을 보이자 현대자동차 공장 안은 매우 술렁거렸다. 산별전환 투표결과 마저 이 수준으로 나온다면 노조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조 집행부와 활동가들은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데 힘을 쏟아 부었고 조합원들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파업찬반 투표와는 달리 너도나도 투표에 참여했다. 그 결과 90%에 가까운 조합원이 투표를 했고 과반수를 훌쩍 넘은 62%가 넘은 인원이 찬성했다.
이는 누가 뭐래도 노조운동의 대표주자인 현대자동차노조의 조합원들이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시급히 벗어나는 것을 원하고 있고 그 대안으로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에 역시 절반 이상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지금껏 대공장노조는 기업별노조 체제에 안주하면서 자신들의 임금인상과 복지향상에만 주력해 왔다며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런데 현대자동차에서는 조합원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임금수준이 왔다갔다할 임단협에는 냉소를 보내면서도 산별전환에 대해서는 이러한 염려를 불식시키고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나타냈다. 비록 근소한 차이로 산별 전환은 부결되었지만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합원 10명 중 9명이 산별전환 투표에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음에도 부결됐다는 점에서 또다른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이해관계가 다른 요구안이 섞여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누구도 산별전환을 ‘거부’한다고는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이상 투표율만 높인다면 찬성율은 당연히 높아질 것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이면 거의 다 투표에 참여했는데도 부결됐다. 이것은 대다수 조합원들이 산별노조 전환을 민감하게 여기면서도 ‘의식적으로’ 반대하는 쪽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 이현우 대외협력실장은 “집행부에서는 산별전환으로 분위기 몰이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조직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이미 이 문제가 교육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될 일이 아닌 민감한 사안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이 실장은 “산별노조 전환이 되면 지금 공장 안팎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내하청 문제가 자신들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정규직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부담이 부결의 큰 요인 중 하나로 든다.

*쟁의행위 출정식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사내하청 조직형태, 정규직과 다른 행보 가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위원회(비투위) 손형상 선전위원장은 “하청노동자들은 산별노조 전환에 대한 관심 자체도 별로 없었다”며 "산별노조 부결이 직접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손 위원장은 “정규직 산별전환 투표가 나온 27일에 비투위도 ‘조직발전전망’에 대한 투표를 했다”며 “결과는 산별노조가 부결된 만큼 ‘현자노조 직가입을 추진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정규직노조와의 통합을 전제로 한 한시적인 독자노조 건설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현대자동차는 갤로퍼 생산을 중단하면서 울산 5공장의 4개 업체를 계약해지한 상태이고 여기에 소속된 535명의 하청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아주 큰 변수다. 비투위와 하청노동자들은 “계약 만료 시점인 7월10일까지 별다른 대책이 없고 하청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면, 해고를 눈앞에 둔 채 정규직노조의 규약변경 여부를 기다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정규직-비정규직이 같은 지붕 안에 모이는 통합노조 건설은 또 한번 뒤로 미루어지고 독자노조 형태로 일단 출발할 수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동안 독자적인 단체행동을 보이지 않던 비투위는 지난달 30일 오후 4시경 계약해지 예정인 535명에 대한 직고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천막농성을 시도했다. 회사 측이 천막을 철거하고 집회를 막기 위해 경비력을 투입, 물리적 마찰을 빚어 부상자까지 발생했다. 비투위는 이어 야간조 작업을 거부하고 5공장 도장부 앞에서 약 150여 명의 하청노동자들과 항의 집회를 계속했다.
비투위의 이번 행보는 더 이상 하청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문제를 정규직의 교섭력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계기로 비투위는 해당 하청노동자들 뿐 아니라 갤로퍼 단종(7월 11일)을 앞두고 고용을 위협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요구하면서 조직화를 서두르게 될 공산이 크다.
금속노조, 그래도 산별노조는 대세다
현재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로서 첫 중앙교섭을 하고 있지만 5월6일에 시작되어 두 달이 지나가는데도 합의점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처음부터 사용자들이 확실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한계가 있기는 했다. 지역 지부별 집단교섭을 진행하던 것을 노조의 단일 요구안을 중앙교섭으로 확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과도기적이기는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금속노조 자체로서 충분한 산별노조로의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금속산업연맹의 조합원이 16만2천명이지만 금속노조로 산별 조직변경을 한 조합원의 수는 겨우 3만5천 명에 불과하다. 이번에 현대자동차와 함께 25일~27일에 걸쳐 산별전환 총회를 가진 노조들의 규모가 5만 명에 달하지만 현대차를 비롯한 대우조선, 로템 등 대공장 노조가 부결되는 바람에 전환이 가결된 규모는 5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금속노조의 이우봉 부위원장은 “3만9천명 규모의 현자노조가 산별전환을 결의해 줬더라면 산별 전환은 그대로 대세가 되는 것인데 아깝지 않을 수 없다”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산별교섭도 현자노조에서 조직변환에 성공했다면 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 부위원장은 “금속연맹에서는 하반기에도 또 한번 대규모 산별전환 총회를 계획하고 있고 현자노조의 이번 투표결과도 비록 부결됐지만 62% 찬성율이면 대다수의 조합원들이 동의 하고 있다는 것이고 산별노조의 대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워킹보이스 김경란 기자 eggs95@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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