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용광로 건설 일꾼들 ‘연장’ 놓다

포항지역건설노조, 임금인상.퇴직공제 가입 요구 파업



포항지역건설노조의 파업투쟁 ⓒ 포항지역건설노조

해마다 여름이면 어린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또는 으레 때가 되면 신문에 실리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뜨거운 여름에도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입고 섭씨 1,300도나 되는 용광로 쇳물 앞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 흔히 ‘더위야, 물렀거라’ 류의 캡션과 함께 실리는 이 사진을 보며 우린 국가기간산업의 표상으로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기억해야 했고, 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생각하기 보다는 ‘열심히 일해서 부국을 만들자’라는 구호에 응답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포스코가 90년대 초반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말 잘 듣는 착한 ‘병아리’들(작업복 색깔이 짙은 노란색이라 회사에 순종적인 포철 직원들을 하대해서 부르는 말)을 육성하는 데 몰두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포스코는 지난 3일 ‘포항제철 1기 설비 준공 30주년’을 맞아 철강대국의 신화를 다시 한번 뽐냈지만, 정작 그 신화창출의 주역들은 철강대국 ‘청사진’ 어디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세상을 움직인다는 철, 노동자 없으면...

‘철로 세상을 움직인다’던 포스코는 지난 5월 철을 운반하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물류차질을 겪은 데 이어 7월에는 철 생산이 가능하도록 공장설비를 만들고 유지.보수하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생산차질까지 빚을 것으로 보인다.

주로 포스코에서 플랜트설비 일을 하는 건설노동자로 조직된 포항지역건설노조(위원장 김영주)는 지난 4월부터 진행된 15차례 교섭에도 불구하고 회사(전문건설업체)쪽이 여전히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있는 데 반발, 4일부터 공단 초입 형산강 둔치에서 간부 농성에 들어가는 한편 9일 총파업 총회를 열어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노조는 “IMF 외환위기 당시 상대적 임금하락을 감수하며 동결했던 임금수준이 회복되지 않았고, 민주노총의 표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난해 임금에서 19.4%(기계설치, 일당 1만3,500원) ~ 23.4%(전기, 1만5천원)의 인상요구안을 내놨다. 이 요구안이 받아들여진다면 기계설치 쪽은 일당 8만3천원, 전기 쪽은 7만9천원 이하로 임금계약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회사쪽 교섭대표업체쪽은 현재 포항지역 경기가 좋지 않고 건설업계 덤핑 관행 때문에 (설계)예정가의 50%, 심지어 35% 수준으로 낙찰이 되기 때문에 공사를 할수록 적자가 난다며 ‘임금동결’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노조 마성희 사무국장은 “IMF 당시 고통분담 차원에서 동결했던 임금이 인상되지 않아 생활고를 겪고 있는 데다 발주처인 포스코의 설비투자감소로 공사물량이 급격히 감소해 피부로 느끼는 생활고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임금인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또한 마 국장은 “원청인 포스코가 연간 2조원이 넘는 순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포스코의 물량을 받는 전문건설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과다 덤핑 강요 등 포스코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이처럼 노사간 교섭에서 타결점이 보이지 않자 노조는 지난달 16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했고 30일부터는 현장내 잔업, 연장작업금지 등 정상근무에 들어갔다. 또한 투쟁 지침을 보내 일자리가 없어 포항 이외 지역에 나가 있는 조합원들에게 총회를 기점으로 포항으로 돌아와 투쟁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노조는 또한 포항과 비슷한 플랜트설비쪽 건설노동자로 조직된 여수, 전남동부(광양)건설노조와도 연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들 세 노조는 지난달 26일 임원회의를 열어 포항노조의 올 임금인상투쟁에 적극 결합하며, 파업에 들어갈 경우 전 역량을 동원해 연대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4월 마련된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의 단체협약에서 임금은 ‘포항건설노조’ 수준에 맞추기로 했기 때문에 포항의 결과가 전남동부노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연대투쟁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포스코는 건설노동자의 노후생활 보장하라”

이와 함께 포스코가 민영화된 이후 포스코가 발주하는 공사가 건설근로자퇴직공제제도 의무가입대상인 50억 이상 관급공사 등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설노동자들이 퇴직공제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퇴직공제제도는 짧은 근속기간과 잦은 이직으로 법정 퇴직금 지급 요건에 해당되기 어려운 건설노동자들의 퇴직후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의무가입대상이 지나치게 좁아 민영공사는 임의가입대상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노조는 가입대상 확대와 수급액 인상 등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포스코의 성장에 기여한 건설노동자들의 최소한의 퇴직금을 보장하기 위해 포스코가 퇴직공제제도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노조는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포스코 앞에서 상경집회를 갖고 퇴직공제제도 가입을 촉구했고 시민 선전전과 포항시의회 차원의 결의안 채택을 촉구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포스코의 입장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노조는 임금인상과 함께 올 핵심적으로 관철해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이처럼 임금인상과 퇴직공제제도 문제 등에 원청 발주처인 포스코가 나서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려운 만큼 노조는 포스코와 포스코건설(원도급자), 전문건설업체(하도급업체)들이 참석하는 4자 회의를 제안했고, 이달 10일 경에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그래, 철이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철을 만드는 노동자와 철을 만들 수 있도록 공장을 설립하고 유지보수하는 노동자, 그리고 그 철을 운반하는 노동자가 없으면 포스코는 살아남을 수 없다.

워킹보이스 이정희 기자 goforit@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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