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노조, ‘다시 일어서는 여름’

올 임금협상 4개월 째 난항, 노조 “총력투쟁 불사” 법원이 부당해고 인정한 조합원 다시 계약직 복직


임단협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 (2003.7.3. 신촌사옥 앞) ⓒ워킹보이스 김경란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265일 동안 장기파업을 치렀던 이랜드그룹 노사, 올 여름 이곳 분위기가 다시 심상찮다.

이랜드노조(위원장 이남신)는 지난 4월부터 올 임금 및 단협 갱신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으나 이견조율은 고사하고 교섭형식조차 합의되지 않아 6월부터 교섭권을 화학섬유연맹에 위임했지만 9일 현재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또한 회사 측은 지난달 8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노조 유상헌 조직실장을 다시 9개월 계약직으로 복직하겠다고 밝혀 노조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 올 임단협 만큼은 양보 없어

이랜드노조의 265일 파업은 이랜드가 불법파견을 사용하는 것을 막고 기존의 위장도급 형태의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하는데 성공하는가 하면 계약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정규직화를 약속 받았다. 그러나 8개월이 넘는 긴 파업기간동안 조합원들은 임금을 받지 못했으며 노조 지도부 30여명은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당했고 무엇보다도 파업 초기 205명에 달했던 조합원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노조는 이 여파로 지난해 임금인상을 위한 협상 테이블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말았다. 조합원들의 징계문제와 장기파업으로 인한 생계문제, 연이어 발생되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계약해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강력한 임금협상을 하기에는 노조의 기력이 쇄진해 있었다. 결국 생계비 대출 등의 조합원 현안 문제들을 합의하고 임금을 3-5%선에서 소폭 인상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을 뿐이다.

올해 임단협 교섭 역시 사정은 나빴다. 회사는 처음부터 노조 요구안에 대한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구조를 문제 삼았다. 그 동안 이랜드노조는 10년 가까이 노조를 인정해 오지 않던 회사를 상대로 그룹 법인을 총괄하는 유일한 노조로서 인정을 받아 내는데 성공했으며 교섭구조 역시 단일한 전체교섭을 중심으로 각 법인별 실무교섭을 병행하는 구조로 합의했다. 이 사항은 단체협약에도 명문화 되어 있다.

그러나 회사는 그룹 차원의 교섭에 나서지 않는 한편 각 법인별 실무교섭만을 인정하고 단협 교섭까지 법인별로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노조는 ‘이는 10년 동안 소산별 체계인 그룹사 노조로 인정 받기 위해 ‘고투’했던 그간의 과정을 무시한 행위‘라며 그룹차원의 교섭을 진행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같이 교섭구조 자체를 두고 노사간 이견을 보이며 교섭 자체가 중단되자 노조는 6월9일 연맹에 교섭권을 위임했고, 연맹이 나선 뒤에야 조금이나마 진전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회사 측은 여전히 교섭을 형식적으로나마 진행하면서도 지난 2000년 파업에 노조가 제기했던 회사 측의 성희롱 관련 혐의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노조 간부를 징계하는가 하면 노조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주5일 근무제’ 실시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등 노조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행보를 취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3일 서울 신촌 이랜드 본사 앞에서 ‘노사합의 파기 및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과 원직복직 완전쟁취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갖고 회사에 성실교섭을 촉구했다. 노조 이남신 위원장은 “이번 임단협 투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생활임금과 고용안정이 보장되도록 하고 유상헌 조직실장의 정규직 복직을 쟁취할 것"이라며 "불가피하다면 총력투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겨우 9개월 계약직 다시 하려고 2년을 싸웠나
지난 6월5일 서울행정법원은 부곡물류센터에서 용역직으로 일하다가 계약기간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된 유상헌씨에 대해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이랜드노조는 265일간 파업을 통해 회사 측으로부터 부곡물류센터에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 단계적인 정규직화와 고용안정을 약속받았다. 당시 노조와 회사는 △직접 고용한 계약직이 만 2년 이상 근무한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도급업체 소속으로 있던 비정규직은 회사가 채용시점을 입사일로 해서 직접 고용한 뒤,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하지 않으며 △부곡물류센터에서 1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이 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노조의 파업이 마무리된 지 불과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20일, 유상헌씨를 포함한 부곡분회 계약직 조합원 4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하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02년 5월 17일 노조와 유씨가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시켰고,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11월8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유씨와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근로계약기간 동안만 고용을 보장하는 너무나 당연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260여 일이나 되는 파업을 해 왔다고는 볼 수 없다”며 “(단협 상의) ‘도급해지자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계약만료를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판결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유씨가 노동조합 활동을 한 것을 이유로 회사가 재계약 채용 면접에서 탈락시킨 점, 이는 노동조합 활동을 혐오하여 계약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고 노조 조직운영을 회사 의도대로 조정한 점이란 것을 들어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점’등을 들어 부당노동행위까지 인정했다.

그런데 회사 측은 지난 6월26일 노조 측에 7월1일부로 유씨를 복직시키겠다고 통보하면서 “행정법원 판결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별다른 구속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상헌 전 직원의 생계문제와 2003년 노사간 입단협 교섭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깊이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또한 회사는 “향후 전향적인 노사관계와 노사분쟁의 소지를 막기 위하여 항소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이후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미 파업 때부터 비정규직 분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파업이후 노조의 조직실장으로 활동해 왔던 유씨는 “차라리 대법원 판결까지 복직을 안 시키면 그만인데 단협상 당연히 정규직 전환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 지났는데 겨우 9개월 계약직으로 복직하라는 것은 비정규직의 고용을 두고 두 번 우롱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또한 “회사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우리도 해고 기간동안의 급여와 경력, 정규직 전환 등을 모두 인정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회사측은 유 실장에게 9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만 근무를 인정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유 실장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지난 1일부터 부곡물류센터로 ‘출근투쟁’을 하고 있는 상태다.

노조가 지난 265일 동안을 ‘당연한 계약기간 중 고용안정’을 위해 파업하지 않았듯이 유 실장 또한 지난 2년을 겨우 9개월 계약직으로 복직하기 위해 지리한 법적 공방을 벌여왔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번 임단투와 해고자 복직을 위해 다시 일어서는 이랜드노조. 지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 보니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조롱하는 거대 자본의 위용은 무더위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워킹보이스 김경란 기자 eggs95@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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