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의 인터넷 필터링에 반대한다
지난 2000년부터 우리나라 공공도서관들이 디지털자료실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동안 책만을 가지고 있던 도서관, 독서실에 머물러 있던 공공도서관을 21세기에 적합한 첨단 정보서비스 기관으로 변모하기 위해 정부(문화관광부)가 적극 나섬에 따라 올 해가 지나가면 전국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인터넷 사용이라든가 전자책, DVD, 비디오물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 정부는 무려 3년여에 걸쳐 3천여억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사실 이 사업은 추진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고, 특별히 사업이 마무리되어 가는 이 즈음에는 저작권법 개정으로 인해 새로운 변수, 즉 제작된 원문데이터베이스 활용을 위해서는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 향후 정말 원했던 바대로 풍부한 자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인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올 해 말 공공도서관의 디지털자료실 구축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국민들의 디지털 정보접근 가능성은 무척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그 동안 이와 같은 사업 추진에 따라 일부에서 마치 도서관에는 이제 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도서관 자체도 필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해 왔다. 인터넷이나 디지털 문화 등을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모든 것들을 대립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도대체 종이책과 전자책은 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도서관은 점점 더 상업적 영역이 커짐에 따라 더욱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공공의 정보접근점이라는 점을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여러 가지 어려움과 우려를 넘어 새로운 도서관의 시대를 열어가려고 하는 시점에 예기치 않고 앞길을 막아서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물론 이 문제는 우리에게는 그저 남 일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말이다. 6월 23일 미국 대법원은 공공도서관의 컴퓨터에서 유포되는 음란물을 걸러내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미국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그 동안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미국 내 도서관들과 시민단체가 반대해 온 '어린이 인터넷 보호법'이 논란 끝에 이번에 합헌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문제는 이번 판결에 따라 만일 학교와 공공도서관에서 컴퓨터에 음란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연방 보조금이나 할인 등의 지원과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점점 더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음란물이나 인종 편견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해 사회적인 차단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 일을 함에 있어 필터링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이고, 가능한 일이겠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최근에 교육인적자원부나 지방교육청 등에서 학교도서관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학교도서관 설치 등에 2006년까지 3천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에 대해 이 같은 같은 조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크다. 얼마 전에 필자가 일하는 협회에 차단프로그램을 도서관에 설치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필자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도서관이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필터링 기술을 사용해서 성인들의 정보이용 권리나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그 같은 일을 도울 수 없다고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광석 <네트워커> 편집위원의 글에 의하면 그와 같은 판결이 나던 날 온라인 인권단체 ‘전자프런티어재단’과 ‘온라인정책그룹’이 공동으로 필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공립 학교들의 인터넷 정보 접근도를 상세히 살펴 본 결과, 산발적으로 필터링 프로그램의 오류를 거론하던 수준을 넘어서서 교육적으로 볼 만하거나 봐도 되는 정보까지 막는 것은 물론, 정말 막아야 할 것은 아예 방관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소프트웨어 차단 수위를 가장 엄격히 적용해도 음란정보 차단율이 최대 70%를 넘지 못하고, 그도 명확한 차단 범주들에 의거해 필터링이 진행된 결과는 고작 1%대라고 한다. 사실상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근거와 도서관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조치들이 취해질 가능성은 높다. 우리에게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물론 도서관에서의 인터넷 필터링은 있을 수 없다. 도서관 직원들은 이 문제를 깊이 이해해고 대비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념을 가지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이미 도서관계에서는 1997년 제정한 '도서관인윤리선언'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는 민주적 사회발전에 공헌'한다고 천명하였다. 이를 위해 '도서관인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데 기여'하며, '도서관과 이용자의 자유를 지키고 정보접근의 평등권을 확립'하는데 노력한다고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였다. 또한 '도서관인은 지식자원을 선택, 조직, 보존하여 자유롭게 이용케 하는 최종책임자로서 이를 저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거부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천명했다. 따라서 도서관 직원들은 이러한 윤리선언을 상기하고 도서관을 통한 알 권리 보장을 제한하는 일체의 부당한 외부의 간섭을 거부한다는 태도를 확고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도 사서의 93%가 어린이 인터넷 보호법에 반대했었고, 어린이들은 음란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합법적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성인들의 권리는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에도 상당부분 내용 선별 소프트웨어가 설치됐다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관계자가 말했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제라도 우리나라 도서관 사서들도 시민들과 함께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일 도서관이 어쩔 수 없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도서관이 최소한 재정적 압박을 덜 받거나 외부의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일부 도서관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도서관 후원조직('도서관의 친구들/Friend of Library'이라고 하며, 재정지원이나 자원봉사를 통해 도서관을 돕는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주민조직이다.)을 만들어 도서관을 지원해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보면 좋겠다. 그러한 조직과 활동을 통해 지역단위로 스스로 정보검열을 막고, 적극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확보하는데 주체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정보화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그리고 국민들이 도서관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 할 수록 도서관 활동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과 갈등이 벌어질 소지가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도서관이 충실한 중재자 또는 국민들의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활동해야 하겠지만, 그러한 활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국민들의 적극적 지원과 참여 또한 필수적이다. 아직 우리 도서관 현장에서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있지는 않지만, 바로 지금이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준비를 시작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참에 이 같은 위기 국면을 오히려 상생과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도서관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 인권, 지식과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때문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성숙하고 있는 증거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동안 다소 보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반 사회적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책임지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제 도서관 사람들과 시민단체, 이용자들이 자주 만나 대화하는 자리가 자주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노력으로 우리 도서관들이 모두를 위한 자유로운 정보유통의 공간으로 변모시켜야 한다. 좋은 도서관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다. 다만 그 권리는 가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이다. 좋은 도서관을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도서관을 원하는가?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컴퓨터만 있는 도서관인가, 아니면 스스로 자율과 책임성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인정해 필터링에서 자유로운 컴퓨터가 있는 도서관인가?
이용훈 / 도서관문화비평가 blackmt@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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