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지난 7월 2일, 3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참여정부 문화정책의 개혁과제 및 대안정책 제시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문화연대와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문화정책 각 분야별로 정책제안이 이루어지고, 문화부 및 민간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문화사회>는 이번 토론회의 발제문 중 ‘문화정책 일반, 지역문화, 문화유산, 체육정책’에 대한 4개의 발제문의 요약문을 싣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1. 경제적 이성 비판과 사회발전 : 문화적 권리, 공공성,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 강내희
2. 지역불평등 해소 및 문화민주주의 확대 전략으로서의 지역문화정책 활성화 - 임정희
3. 참여정부 문화유산정책의 개혁과제 및 개선방안 - 황평우
4. 참여정부 체육정책의 방향 - 정희준
자료집 전문을 다운받으시려면 여기를 클릭! ---> http://culture.jinbo.net/maynews/read.php?table=organ&item=&no=737
====================================================
경제적 이성 비판
‘위험사회’를 경고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재귀성’(reflexivity)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를 한다. 이들의 입장은 근대성 자체를 포기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대성에 자기성찰의 능력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다. 이성으로 하여금 자기비판의 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한 비판이론의 전통과 부합하는 이론적 입장인 셈이다. ‘경제적 이성’을 비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필요한 것은 ‘경제적 이성’의 폐기가 아니라 그것의 비판이다. 이 비판은 경제적 이성이 저지르는 폭력과 야만, 반인간적 태도를 통제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구축, 경제체제에 의해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사회를 복원하려는 기획이다.
오늘 경제적 이성은 신자유주의 축적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끝없는 성장과 이윤추구를 지향하는 이 전략의 결과 경제만이 사회의 유일한 얼굴인양 강조되고, 경제의 일방적 사회지배가 진행 중이다. 경제의 사회지배는 자본의 사회지배이고, 세계지배이다. 사회는 자본과 그것을 지지하는 엘리트에 의해 장악, 독점됨으로써 더 이상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구를 위한 터전이 되지 못한다. 국영 혹은 공공 기업들이 민영화, 사유화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기관들은 책임경영을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로써 경제적 효율성은 늘어날지 모르나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빈부격차는 심화하고, 사회적 공공성은 너무나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경제적 이성의 비판은 이런 흐름을 바꾸어 경제의 발전만이 아니라 균형이 잡힌 사회 발전을 위한 기획과 노력의 일환이다.
문화와 경제
근래에 들어와서 문화와 경제는 갈수록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지난 98년 OECD 국가들이 체결하려던 다자간투자협정(MAI)을 무산시킨 것이 ‘문화적 예외’ 문제였고, 현재 한미투자협정 체결의 주요 쟁점으로 한국의 스크린쿼터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한편으로 보면 이것은 문화와 경제의 갈등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문화산업의 발전의 경우처럼 문화와 경제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진 결과로 보인다. 문화의 경제적 중요성은 1990년대에 이르러 서비스교역이 세계 상품교역의 25%를 상회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서비스교역이 증가한 것은 정보와 통신기술의 발전, 그리고 금융분야의 합리화 결과로서 95년에 출범한 WTO가 <무역 서비스에 관한 일반협정>(GATS)을 두는 이유가 되었다. 문화와 경제의 긴밀한 관계는 문화산업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 필요노동의 축소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인간 역능의 다면적 발전을 가능케 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따라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문화적 가치와 권리는 그 자체로 삶의 목적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경제발전은 이렇게 볼 때 문화발전의 목적이 아니며 오히려 문화발전이 경제발전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문화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무수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경제적 이성 비판을 위해 문화적 관점을 세우고, 문화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문화를 보존하고 진흥하는 일이 필요하다. 최근 유네스코가 벌이고 있는 문화다양성 확대 운동이나 각 국의 문화적 주권을 지키는 일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다만 한국사회의 발전을 구상하기 위한 문화적 관점을 강조한 만큼 그와 연관되는 세 가지 점만 강조하고 싶다. 문화적 권리의 신장, 문화적 공공성의 강화, 그리고 문화민주주의의 발전이 그것이다.
문화적 권리
먼저 문화적 권리 신장을 문화정책의 중요한 목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문화적 권리는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27조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3조와 15조에서 인권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 5조는 문화적 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따라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언어, 특히 모국어로 자신들의 작품을 창조하고 유포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양질의 교육과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충분히 존중하는 훈련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문화적 삶에 참여하고, 인권들과 근본적인 자유들을 존중하는 자신들의 문화적 실천들을 수행할 권리를 가진다.
문화적 권리는,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명확하게 개념이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권리와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의 관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까? 이 권리의 법적 지위는 무엇이고 그것을 신장하려면 어떤 공적인 자원과 수단이 필요한가? 문화적 권리 향상을 위한 국가의 문화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실로 궁금한 점이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이들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나 접근법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체계적으로 제출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문화적 권리의 목록 작성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문화적 권리에 대해 자기교육을 거치는 과정이 되고, 이 결과 문화적 권리가 진작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산하에 소위원회나 분과를 두든지 해서 문화적 권리 목록을 작성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한다.
문화적 권리의 목록 작성과 함께 문화적 권리장전 채택도 제안한다. 문화가 지금 새로운 인권 분야로 떠오르고 있고,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문화적 획일성 증대 추세에 맞서서 하위문화, 소수문화, 민족문화 수준의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는 만큼 문화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강화할 필요가 커졌다. 문화권리장전은 현 단계 사회의 바람직한 문화를 꾸미고,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옹호하며, 개인들이 다른 개인들과 함께, 그리고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지킬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드는 공적인 약속 혹은 지침이다. 이 과정을 책임질 주체로는 국가인권위원회, 문화부, 유네스코, 문화운동단체 등이 있다.
다음으로 ‘문화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지금 한국은 개발공화국이다. 국토 전체가 오직 개발과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로 인해 자연환경이 절단되고 있다. 문화유산, 자연경관을 경제적 수단으로만 여기는 이런 관행에서 나오는 것은 문화파괴밖에는 없으며, 결국 문화적 권리의 침해로 이어질 것이다. 문화적 권리는 자율적 삶과 그 기반이 보장되고 보존될 때 비로소 신장될 수 있다. 지금처럼 경제논리 때문에 문화의 기반이 파괴되면 문화적 권리를 향상시킬 기회는 자꾸 줄어든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면 ‘문화영향평가’는 꼭 제도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문화영향평가를 담당하는 주체는 문화부 또는 문화부가 위탁하는 기관, 시민단체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문화적 공공성
언어, 전통문화, 교육, 과학 등 문화를 구성하는 것들은 어느 것이라도 사람들의 공유 대상이지 독점 대상이 아니다. 그 누구도 언어, 교육, 과학, 전통문화를 독점할 수 없으며, 문화는, 한국어가 사용자가 많을수록 윤택해지듯이,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풍요로워지고 가치가 커지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는 공공재이다.
문화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소수가 아닌 다수가, 엘리트가 아닌 대중이, 부자만이 아닌 가난한 사람도, 전문가만이 아닌 일반인도 문화를 접촉하고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야 한다. 문화기반시설의 확충, 문화적 활동 기회의 확산,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권의 확산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돈 들지 않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문화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문화적 공공성을 확보하려면 단순히 공공문화기반시설을 늘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설들을 확충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시설들의 기능을 강화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프로그램과 내용을 개발하고 또 그것을 운영할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기반시설 영역에서 전문인력 일자리 창출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일자리 창출은 이들 시설운영의 내실화를 위해서나 지금 부족현상을 빚고 있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문화 영역의 일자리 창출은 위기에 처한 대학교육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초학문 붕괴 등 지금 대학교육의 위기는 대학교육이 학생들에게 전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졸업 뒤 갈 곳이 일반 기업체뿐인데, 철학, 문학, 역사학 등 기초학문 전공자들이 전공과목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공공문화기반시설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은 문화적 공공성을 확대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대학을 살리는 일이다. 공공문화 영역에서 필요한 지식, 태도, 능력은 기초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제공하는 지식, 기술, 능력과 가장 가깝다. 공공문화 영역의 일자리 창출로 문화적 공공성을 강화하고, 나아가서 기초학문과 예술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을 열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이 영역이 의외로 매우 광범위하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문화 영역은 초등학교, 중고등 학교, 대학교, 연구소 등 교육과 학문을 위한 사회적 기관들, 각종 학교도서관, 대학도서관, 공공 또는 전문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미디어센터, 영상아카이브, 문화의 집, 문예회관 등을 포괄한다. 지금 교사와 교수, 강사를 합하면 50만 명이 넘으며, 각종 도서관, 박물관, 문화의 집, 미디어센터 등의 내실화를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면 많은 수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예컨대 전국의 1만1천 학교에 있는 도서관에 두 명 이상의 사서를 배치해도 2만여 일자리가 생기며, 전국의 6,000여 공공문화기반시설에 학예직이나 연구관 등 전문직을 4명 이상 배치하더라도 2만 4천여 일자리가 생긴다. 공공문화기반시설을 더 확충하고 또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일자리를 늘일 경우 문학, 철학, 역사학, 인류학, 예술 등 기초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진출할 길이 넓어지고, 대학에서 기초학문이 살아날 조건이 만들어지며, 나아가서 우리의 문화적 역량도 향상될 것이다. 이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되면서 동시에 문화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콘텐츠분야의 전문인력을 확보함으로써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는 문화의 질적 향상에도 기여하는 길이다.
문화민주주의
사회발전은 삶의 질 향상을 요구하며, 삶의 질은 개인이나 집단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자기계발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으며, 자신들의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서 호혜와 연대의 삶을 살 때 향상된다. 이런 점에서 문화정책은 문화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문화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위에서 말한 공공성 구축에 따른 문화적 불평등의 해소라는 소극적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도 포함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국민대중이 삶의 형태를 스스로 개선하고, 창조적인 능력을 기르는 자율성의 원칙을 포함한다. 문화적 시설들을 늘이는 등 국민의 문화 향수권을 보장하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 대중이 정체성, 환경, 취향에 따라서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형성하는 것이 만족감, 성취감을 높이고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이미 완성된 문화―이 경우는 문화는 대체로 문예가 되기 쉽다―를 베푸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대중은 자신의 욕구, 욕망을 사회적 요구로 당당히 제출하고 있다. 문화생산과 소비를 구분하던 경계들도 허물어지고, 이에 따라 비전문가인 소비자가 과거 전문적 문화생산자가 보유한 기능들을 떠맡기도 한다.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융합된 ‘프로슈머’(prosumer)의 출현이 그 증거로서 여기서 대중의 역능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은 지금 정책과 계몽과 시혜의 일방적인 대상에서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참여자로 바뀌는 중이다. 따라서 당연히 문화적으로도 주체로 서고자 한다. 자신을 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 즉 문화의 생산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정책도 이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문화정책 입안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변화는 대중을 정책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주체로 인정할 것을 요청한다. 시민, 주민, 국민 등 대중은 더 이상 문화정책의 객체가 아니라 자신의 자율적 선택에 따라서 문화적 실천을 하는 주체이다. 문화적 대중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자율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유와 꿈을 실현하며, 연대와 호혜를 실천하고자 한다.
글을 맺으며
최근 다시 미국과의 양자간투자협정(BIT) 체결을 재촉하며 그 동안 국민적 투쟁과 합의를 통해 지키기로 한 스크린쿼터제도를 축소하여 사실상 무력화하자는 제안이 경제관료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IMF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경고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런 때일수록 설치는 것이 있다. 경제적 이성의 목소리와 논리가 그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발전을 위한 문화적 관점을 포기하고, 경제중심주의에 굴복할 것인가? 경제위기는 사실일 것이다. 경기가 좋지 않다. 카드연체로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는 경제적 이성이 판단한 위기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적 이성에게 위기는 축적의 위기, 더 많은 이윤을 만들어낼 수 없는 위기로서 사회적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사회의 위기는 사회적 안전망의 해체, 자유시간의 소멸, 호혜와 연대의 인간관계 실종, 사랑과 꿈의 사라짐, 친절과 봉사와 헌신의 자발성 축소, 예술을 즐기거나 창작할 자원과 시간과 능력의 부족, 사회적 의료체계나 공교육의 축소, 빈부격차와 정보격차의 증대, 무식과 이데올로기와 편견과 차별의 확산, 착취와 억압의 심화 등으로 구성된다. 이 위기는 경제위기와 일면 관련이 있지만 경제위기만으로 초래되지는 않는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사회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경제중심주의에 굴복해서는 안될 이유이다.
문화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적 관점, 경제와 상생의 관계를 찾으려는 문화적 관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문화는 특수하며, 공적인 성격을 띠고 창조적 힘을 지닌다. 문화적 권리를 신장하고, 문화적 공공성을 강화하고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문화정책은 문화의 사회적 중요성에 걸맞게 사회정책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강내희 /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중앙대 교수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