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학생의 급작스런 체포 그리고 구속
지난 7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반 경, 몸이 아파 병원을 다녀오던 김용찬(28)은 "홍제동 사람들"이라고 밝히는 몇 명의 수사관에 의하여 길거리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불과 수 분 후 김용찬의 집에는 형사들이 들이닥쳐 그가 소장하고 있던 책과 컴퓨터 하드를 압수해갔다.
그로부터 2시간 후 후배들과 MT를 갔다 오던 김종곤(27)은 강남의 대로상에서 6명의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 연행되었다.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김종곤이 기거하고 있던 고시원에 형사들이 들어와 그의 물품 일부를 압수해갔다.
이들은 모두 '홍제동'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의 소속을 밝혔으며, 체포된 두 사람은 모두 홍제동의 보안4과로 이송되어 수사를 받았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 수사를 받던 두 사람은 저녁나절에 변호사접견을 하였으며, 가족의 접견이 1일 1회 허용되었다.
김용찬은 건국대학교에서 생활도서관 운동을 하는 한편, 빈민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다가 8월 졸업을 앞두고 모든 활동을 접은 채 몇 달간 노무사 시험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무리한 공부를 강행하던 김용찬씨는 며칠 전부터 위가 아프다고 말해왔으며, 결국 아픈 몸을 다스리기 위해 병원을 다녀오던 중이었다.
병원에 다녀온다던 자식 대신 몰려든 형사들을 보면서 부모님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느냐 고 항의하자 수색영장을 보여주던 형사들은 "당신 자식은 골수요"라는 폭언을 서슴치 않았다. "골수" 자식을 둔 부모님들은 자식이 소중하게 여기던 책이며, 컴퓨터가 들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넋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김종곤은 건국대학교 법과대학의 학생회장이면서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으나 학생회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집에 알려지면서 경제적인 원조가 끊겨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위염과 관절염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학교 건물에 페인트칠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실한 청년이었다.
이들에게 부여된 죄목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1, 3, 5항 위반 혐의. 고무 찬양, 반국가단체결성, 이적표현물 제작 소지 유포라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더불어 김종곤씨에게는 화염병사용등처벌에관한법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특별법,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등 3가지 법률의 위반했다는 죄목이 추가되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사안들은 모두 1년이 지난 사건들이었으며,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제재나 수사를 받은 바 없고 체포되는 그 순간까지 이 두 사람에게 대해 어떠한 공안기관의 접근이 없었다. 따라서 도대체 왜 하필이면 지금 과거의 사건이 문제가 되어 두 사람에게 국가보안법이라는 죄목의 혐의가 걸리게 되었는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석연치 않은 혐의, 반국가단체의 결성?
1년 전 건국대학교의 좌파학생운동계열은 4월 30일 메이데이 전야제와 5월 1일 메이데이 행사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참가자들을 묶어 "건국대학교 학생투쟁위원회(건학투위)"라는 단체를 결성하였다. 그런데 이 건학투위라는 단체는 1회성 집단으로 메이데이 행사가 끝나면 자동 해소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2001년에도 건학투위가 결성된 바 있고, 2003년에도 건학투위가 결성되었지만 각 년도별 건학투위는 그 구성원이 다를 뿐만 아니라 운동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도 아니었다.
그런데 2002년 건학투위의 경우 참가단 중 일부가 인터넷에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참가후기와 자신의 일상생활, 자료, 외부 사회상황 등을 게시하였으며, 이 커뮤니티는 이후 2002년 건학투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직 자체는 메이데이가 끝난 후 해소되었지만 이후 다른 활동을 하면서 건학투위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학교 안에서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질 않았고, 따라서 학생회 간부나 집행부 몇 명을 제외하고 다른 학생들의 결합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안에 따른 운동조직을 결성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 없이 건학투위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학투위의 명칭을 사용한 외부활동은 안암동 철거촌 투쟁이 거의 유일한 정도이다. 그 이외에는 건학투위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조직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으며, 사실 그럴만한 역량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건학투위를 조직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공안기관은 김용찬을 이 조직의 배후 및 이론제공의 역할을 한 자로, 김종곤은 인자조직과 선전 선동 및 직접활동을 한 자로 상정한 것이다.
간단히 살펴본 것만으로도 이 단체가 국가전복을 획책할 정도의 조직구성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 해봐야 활동가 몇 명으로 이루어진 일시적 참가단 정도의 성격밖에는 되지 않는다. 메이데이를 참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집합적 명칭을 사용한 것이 반 국가단체라면 도대체 어떤 단체가 반 국가단체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적표현물 제작, 소지, 유포
이 두 사람에게서 압수해간 물품은 주로 책과 문건이다. 이 책과 문건을 근거로 적용된 혐의가 이적표현물 제작, 소지, 유포인데 과연 이들에게서 압수한 책과 문건이 '이적표현물'로 인정될 수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먼저 책의 종류인데, 이들에게서 압수한 책들은 '맑스를 위하여', '자본의 이해', '신좌파의 상상력' 등 일반 서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들로서 사회과학을 전공하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읽어보았을 책들이 전부이다.
문건의 경우 메이데이 참가단 교양자료집과 빈활 자료집, 그리고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자료집이 전부였다. 메이데이참가단 교양자료집의 내용은 메이데이의 연원, 역사, 한국에서 메이데이의 역사, 한국 노동운동사, 현재의 상황 및 메이데이 참가의 의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빈활자료집은 빈민들의 현황, 안암동 상황, 그리고 연대활동 계획이 내용의 전부였다. 간부대상자료 역시 각종 서적들을 발췌요약하고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여 묶은 것으로서 그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었고, 이 두 사람의 완전한 창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만일 이들에게서 압수한 책과 문건이 이적 표현물 이라면 현재 사회과학서적을 출판하고 판매하는 모든 출판사와 서점은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에 의하여 모두 처벌받아야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또한 인터넷 게시판이나 자료실 등에 사회과학적 논문과 자료를 올린 전국의 수백에 달하는 사화과학자들 역시 모두 처벌받아야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도대체 국가에 의하여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된 서적과 논문들을 보고 읽은 것이 어떤 적을 이롭게 했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화염병사용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김종곤에게 걸린 이 죄명들은 이 땅의 법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 죄명들이 왜 김종곤에게 적용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2002년 7월 9일 안암동 재개발지역 폭력침탈사건을 확인해야한다. 바로 그날 김종곤의 이 모든 범법행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건학투위'의 일원인 김종곤은 그 악몽의 7월 9일날 현장에서 철거깡패와 싸우다가 부상당한 철대위 사람을 등에 업고 빠져나와 병원에 입원시킨 일이 있다. 7월 9일 새벽에 철거용역들은 경찰호송버스와 경찰봉고차를 타고 왔다. 경찰호송버스와 경찰봉고차에 낫, 쇠파이프, 야구방망이, 각목, 화염병을 싣고 왔으며, 어디서 구했는지 물대포까지 준비해서 나타났다.
이 깡패들만 400명이었다. 게다가 성북 경찰서에서 동원된 1000명의 경찰이 안암동 재개발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봉쇄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였다. 반면에 이들과 맞선 철대위 주민들은 9명에 불과하였고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어렵게 결합한 학생들은 겨우 대여섯명이 고작이었다. 열 댓명밖에 되지 않는 주민과 학생들을 향해 400명의 용역들은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휘둘렀으며 물대포를 쏘아댔다.
이 과정에서 주민 한 명은 화염병을 직격으로 맞아 온 몸에 화상을 입었으며, 용역이 휘두른 낫에 찍힌 주민의 발등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학생들은 개처럼 두들겨 맞고 끌려갔으며, 함께 있었던 할머니도 머리채가 잡혀 패대기쳐졌다.
이 과정에서 김종곤은 자구를 위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용역들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고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물량을 동원하여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끔찍한 폭행을 가하는 용역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이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인하여 주민 8명과 다른 학생들이 성북경찰서에 전원 연행되었으며, 김종곤은 발등이 낫에 찍힌 주민을 업고 반파된 폐가에 숨어있다가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누가 국가전복세력인가?
깡패들을 경찰호송차와 경찰봉고차로 모시고 다니면서 빈민들에게 화염병을 던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 주민들이 피떡이 되도록 폭행을 당하고 있는 동안 외부와의 이동을 완전 차단해 준 경찰들은 지금 아무도 처벌받거나 파면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화염병을 던지고 낫과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깡패들 중 단 한명도 그 사건과 관련하여 처벌받은 바가 없다. 도대체 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는가?
도서출판윤리위원회의 심의기준에 의거하여 합법적으로 출판된 도서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불온도서 소지 유포에 해당한다는 것이 공안기관의 논리다.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들을 가지고 만든 문건이 불온문서 제작에 해당한는 것이 공안기관의 논리다. 모든 국민들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살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사상과 양심은 머리속에다만 넣어두고 절대 꺼내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깡패들이 폭력을 행사해도 힘 없으면 그냥 맞아 죽으라고 한다. 도대체 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는가?
기본적으로 이 두 사람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헌법의 원칙과 법률이론은 물론 일반인의 법감정에 의할지라도 도저히 인정될 수 없는 혐의들이다. 애당초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 자체가 헌법의 존립기반을 부정하는 법률이고보면 이런 비이성적인 공안기관의 관행적 수사행태는 그 자체로 위법적인 국가공권력의 행사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헌법 제1조에서 천명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이념을 국가기관이 송두리채 부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시 국가보안법철폐운동으로!!
이 사건은 단지 두 사람이 반인권적인 국가공권력에 의하여 범법자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국민의 입에 재갈을 채우고 국민의 손발을 묶어놓는 국가보안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이 앞으로도 계속 그 위세를 떨칠 것이냐 아니면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냐는 갈림길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가기관에서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한 논의가 일정부분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의 혜택을 누리면 살아왔던 구시대의 세력들은 위기감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이후 처분이 어떻게 되는가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제 다시 기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때이다.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이제 이 악법을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심연으로 수장시킬 것이냐. 이 갈림길에서 두 사람의 사건은 두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라 이 땅의 민주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사건으로 전화되는 것이다.
[윤현식 님은 건국대 졸업생입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