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로서의 그 첫 번째 여정: 언니들, 나비처럼 날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자립, 창업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 '언니에게 희망을'

98년 겨울, 나는 세찬 바람을 거슬러 동아리 방에 올라섰다. 두 손에는 조그만 공예품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나는 어두워진 저녁 빛을 찾아 동아리 방 모퉁이에 그것을 살짝 걸어 놓았다. 어슷어슷, 미숙한 바느질 솜씨가 인상적인 그 작은 공을 왠지 오래 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한 간절함으로 추운 겨울, 나는 아무도 없는 동아리 방에 앉아 친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공 하나를 선물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놓여져 있었다.



여성들에 대한 온전한 희망을 이야기하기

지난 7월 19일,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는 '성매매 피해여성의 실질적 자립을 위한' 콘서트가 열렸다. 새움터(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센터)와 지현 앤 컴패니, 그리고 대학 내 여러 여성주의 단체들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콘서트는 '언니에게 희망을'이라는 모토로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는 자립과 생존에 대한 희망을, 콘서트 관객들에게는 그녀들에 대한 자매애를 확인하는 의미로서 기획되었다.

어슴푸레한 저녁 빛이 감돌 무렵 백주년 기념관을 찾은 나는 콘서트 장 입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 곳에는 작은 문구 하나가 적혀있었다.

"돌아가신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분향소입니다. 언니들을 기억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쪽에서는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의 음반과 세움터 언니들이 만든 비드 공예작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내가 발걸음을 멈춘 이곳에서는 고 윤금이, 이기윤, 허주연,......, 이정숙씨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돼 있었다.

한 두 명의 사람들이 나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나즈막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놓여있는 국화꽃 서너 송이는 그녀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98년 겨울, 세움터로 기활(기지촌 현장 활동)을 떠나기 전, 나는 처음으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는 몇 번의 강의가 있었고 마지막 프로그램으로는 함께 현장 활동을 수행할 친구들과의 공동토론이 진행되었다. 처음으로 듣게 되었던 성매매 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현실들.. 감금, 폭력, 심각한 인권침해,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처음 인식하게 된 폭력적인 상황들을 감당할 수 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한참동안 조용하던 강의실안에 누군가가 갑자기 '자발적 선택'이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긴 말을 꺼냈다. 토론은 그때부터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거친 음성과 탄식이 흘렀다.

" 그것은 사회적 구조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으로 봐야하지 않나요?"

군산 대명동 화재 사건, 화재발생시 20분만에 진화, 쇠창살로 막은 2층 창문, 비상구와 환기구 없음, 잠금장치가 설치되 있는 계단 철문, 그리고 그곳에 있던 다섯 명의 그녀들, 그녀들은 20분만에 쇠창살을 빠져나오지 못해서 모두 죽었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에 대한 가장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은 몇 년전 기활교양학교에서 내 입을 떠듬거리며 열게 했던 '자발적 선택'이라는 잘못된 인식이다. 그때 나는 말했다. "...남성들이..쉽게 여성의 몸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수많은 성구매자들, 경제적/ 육체적 착취를 일삼는 포주, 그리고 여성을 성매매 구조로 유인하는 가부장제 시스템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 대한 담론은 쉽게 그녀들의 자발적 선택으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쉽게 돈벌러 갔는데 왜 피해자 운운 하는거야?

그러나 실제 성매매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30%는 사기광로로 23% 인신매매업자에게 의해서이다.( 월간 언니네 기획특집 '생존의 문제, 희망의 이야기'/수수님의 글 중에서)

공연시작 전 무대위에는 하얀색 나비모양의 조형물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희망의 상징이라고 속삭였다. 이자람씨의 오프닝 공연을 시작으로 장필순, 오서영씨의 여성가수들이 잔잔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축하공연을 진행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세움터 언니들의 활기찬 무대 공연이었다.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아~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세움터 언니들은 멋드러진 목소리로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기 시작했고 관객들은 그녀들의 열정적인 무대공연에 사로잡혔다. 수많은 환호와 박수갈채, 언니들의 노래 소리가 한껏 어우러진 그 공간에서 모두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났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녀들의 노래가사처럼 이번 콘서트는 단순히 창업기금마련을 위해서도 혹은 폭력적인 인권유린을 겪은 언니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자매애의 이름으로 만난 우리에게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단호히 거부하고 그녀들과 우리들의 자존감을 되찾는 여성들의 필연적인 연대의 축제였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자립하는 것은 단지 물리적으로 그 공간을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탈성매매화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녀들을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생존을 위해서, 포주와 알선업체의 경제적/ 육체적 착취, 그로인한 극심한 빈곤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언니들은 희망의 발걸음을 옮기지만 가부장적 사회는 그녀들에게 타락한 윤리의식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놓는다. 그로인해 희망의 날개짓은 쉽게 꺽 일 수 있다.

공연은 약 두 시간 진행된 뒤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의 열정적인 공연을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공연장을 나섰지만, 나는 발걸음을 채 옮기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나는 마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98년도-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참혹한 현실을 처음으로 인식한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경제적 자립의 문제는 성매매 피해여성에게 현실적인 삶의 대안에 관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 월간 언니네 기획특집 '생존의 문제, 희망의 이야기'/수수님의 글 중에서)

생존자는 살아가기 위한 근거들이 필요하다. 그녀들은, 혹은 우리들은 '언니에게 희망을' 이라는 타이틀로 치러진 콘서트장 안에서 살아감의 근거들을, 생존의 희망을 찾았을까?

성매매 피해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인 외상들은 쉽게 희망이라는 언명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생존을 시작하는 그 순간 견고하게 붙잡고 있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힘든 경제적 자립의 힘겨움 속에서도 되살아 날지 모른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그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외쳤던 우리들은 그 콘서트가 단지 일회적인 선언의 공간이 아니라 언니들이 끊임없는 생존의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긴 여행의 첫 출발임을 마음속으로 새겨놓았다. 우리는 언니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들에게 희망을 받는 존재임을,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언니들을 사랑하는 자매들의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이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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