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모인 농민들과 부안주민들은 '반핵세상', '핵은 죽음이다' 등의 글씨나 로고가 적힌 반핵 티셔츠등을 맞춰 입고 나오기도 했으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머리띠를 메고 거리에 나왔다. 주민들의 가슴에는 핵폐기장 반대 뺏지가 달려있었고 택시, 상가등에는 핵폐기장 반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부안은 한마디로 온 군민이 핵폐기장 저지를 위해 똘똘 뭉친 곳이었다.

집회장에는 "매향노 김종규 퇴진", "목숨이 있는 한 끝까지 투쟁한다"는 등의 만장이 펄럭이고 핵의 위험성을 알리는 모형도 전시되었다. 집회 현장에는 환자복 분만 아니라 간호사들의 옷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근처 상가와 조그만 병원들도 문을 닫았다.
부안에는 약 만 여명의 경찰 병력이 배치되었다. 이 숫자는 부안 주민 일곱 명 당 경찰 한 명이 배치된 것이다. 이날 집회는 24일 부지확정이후에도 군민들의 투쟁의지는 사그러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집회였다.
위도가 바뀌고 있다.
이병학 전북 도의원은 "부안군민들은 대통령이 직접 군수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한 것에 대해 상당히 분노하고 있다"면서 "24일 결정에도 주민들의 동요는 없으며 이 투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서대석 위도 대책위원장 이날 집회에서 위도 주민들이 96%가 찬성하게 된 기막힌 이야기를 밝혔다. 지난 6월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위도의 섬에 100년만에 한번 있는 위도 발전 기회가 찾아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시 핵폐기장을 유치하면 위도의 발전을 100년은 앞당길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시 핵 폐기장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위도주민들을 대덕연구단지에 견학까지 시켜주었다.
그러나 당시 서시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살펴보고 다른지역의 성명서를 접했다고 한다. 그 성명서에는 3천억원의 보상금문제가 적혀 있어 함께 버스를 탄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그 전문가라는 사람은 3천억원을 주민들이 맘대로 다 사용해도 된다는 대답을 한 것이다. 이 말은 들은 주민들은 농담조로 90가구 주민들이 3천억원을 나눠 가지면 한 3억에서 5억정도 받을 수 있겠다는 말을 했고 그 전문가가 그래도 된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처럼 소문이 퍼져 위도 주민들은 4일만에 핵폐기장 유치서명을 96% 받아냈던 것이다. 서위원장은 "위도주민 60%이상이 60-70세의 고령의 노인들이며 그분들의 자녀가 전부 서울에 사는데 위도가 오염되어도 자기 대에 끝나는 줄 알고 남은 여생 여생동안 지원금을 받아 부모 노릇을 해 볼려는 마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위도 주민들의 입장은 변했다. 지금 위도 주민들은 3억에서 5억대의 지원금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전부 반대로 돌아서고 잇다. 서 위원장은 "심지어 KBS에서 위도 유치 찬성의견을 찾지 못해 반대 의견을 인터뷰 한 나에게 인터뷰할 사람을 구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밝혔다.
위도에서 고분군투 해왔던 서 위원장은 지난 22일 집회에서 경찰에 맞아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단상에 올랐다.

문정현 신부는 대회사를 통해 "난 22일 죽도록 맞아 지금도 왼쪽 눈에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되게 아프다" 며 "정부는 핵폐기 저장소를 17년간 찾다가 주민들 거부로 못하게 되니까 위도에 점찍어 놓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결코 폐기장을 건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4일 결혼하지 않은 막내를 위해 송아지 2마리를 사다가 키우던 소 한마리를 팔아 200만원을 투쟁기금으로 기탁한 장영순 할머니가 사회자의 요구로 단상에 올랏다. 장영순 할머니는 "제뜻은 다른 것이 없다.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 우리의 죽음을 되찾기 위해 그런 일을 했다. 어느날 갑자기 핵폐기장을 건설한다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잠을 잘수 없을 정도로 분통했다"며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며 말을 마무리했다. 기탁금은 장영순 할머니분만아니었다. 10일전 군청 앞에서 신나를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던 송서석씨도 성모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이 자리에 참석해 꼬깃꼬깃한 돈 50만원을 기탁했다.
20여명의 여성들 삭발 - 삭발로 막을 수만 있다면...
집회가 마무리 되가던 중 2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삭발을 결의하고 나섰다. 단상에 올라온 8명이 먼저 삭발을 진행하자 무대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삭발을 마친 이경미씨(진서면·33·농사)는 편지를 낭독했다 "우리는 더 이상 발전도 원하지 않고 지금처럼 살고 싶었는데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온통 우리 가정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안에 나가지 않으면 폐기장이 들어설 것 같아 두 아이 손을 잡고 부안으로 갑니다. 머리라도 잘라서 막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머리를 깍겠 습니다. 처음에는 부안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왜 우리가 이사를 가야 하는지, 왜 도망을 가야 하는지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어 싸우기로 했습니다" 이날 많은 아주머니들이 머리를 깍겠다고 나섰다. 사회자는 몰려드는 아주머니들에게 "더 이상 우리 아주머니들이 머리 깍는 것을 볼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마음이 아파 사회자로써 아주머니들을 만류했다"며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사회자는 "연단에 흐트러지고 있는 어머니들의 머리카락을 소중히 받아 부안 군민의 마음을 담아 군 의장단과 청와대, 국회에 머리카락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삭발이 끝나고 나서 "김종규가 주관하는 어떤 행사도 방해할 것이며 부안의 행정을 마비시킨다. 의회는 핵폐기물 반입저지를 위한 조례를 제정할 것이다. 주민감사 청구권을 5만여명의 군민들 서명으로 제출할 것이며 군수 퇴진서명도 참여한다. 폭력 경찰에 대한 어떤 편의제공도 거부한다. 각 가정에는 핵폐기장 반대 깃발 게시한다. 산자부 선전물 배포를 금지하고 수거한다"는 군민 행동 지침도 발표되었다.
군청까지 행진. 물리적 충돌은 없어
참가자 들은 3시 40분경 부터 부안 군청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장마가 끝나고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에 쓰러질 듯한 날씨였지만 주민들은 군청까지 핵폐기장 반대를 외치며 행진을 가졌다. 군청은 이미 수 십개의 컨테이너 박스로 전부 둘러싸였고 일부는 경찰버스로 막기도 했다. 군청왼쪽에는 서울시경 1기동대 1003중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정문의 조그만 문에도 경찰병력이 꽉차 있었다.
대책위에서 일찍부터 평화기조를 내세우고 있어 큰 충돌 없이 군청앞에 군민들이 방송차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핵폐기장 반대 자유발언을 진행했다. 군청 앞에는 아이들이 많이 앉아 있었고 중고생들도 자율학습등을 마치고 참가했다.
부안고등학교 학생들은 핵은 죽음이다라는 피켓을 만들어 20여명이 교복을 입은채 참가해 경찰이 막아놓은 컨테이너 맨 앞에 자리를 잡고 군민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한 학생은 부모님들이 집회에 나가면서 "너희는 위험하니까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친구들과 같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날 부안 군민들은 무엇보다 언론에 강한 불신감을 보였다. 한 아주머니는 언론이 왜곡 보도를 하고 있으니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보여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자유발언에서도 언론사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군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확실히 알려달라. 돈있는 사람들은 이사가면 되지만 우리는 이사 갈수도 없다. 우리는 이곳을 지켜야 한다"
이날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치고 다시 부안 터미널 사거리에 모여 22일 투쟁영상물을 보고 촛불을 밝히고 철야농성을 진행했다. 이날 철야 농성은 26일 오전 10시 30분에 행자부, 산자부장관등이 부안 예술회관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핵 폐기물 처리장 안전성 홍보를 위해 온다는 소식에 부안 군민들은 철야 농성을 하고 온몸에 쇠사슬로 묶고 예술회관을 둘러싸기 위한 것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