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되지 못한 어떤 죽음 그리고 My Summer Vacation

-퀴어 아카이브, 제 2회 스쿨퀴어 영화제 개최하다.

*Lost and Delirious 상실의 시대 Lea Pool, 2001, 100min

죽어서도 인정받지 못한 어떤 권리

자살시대가 몰려오고 있다. 카드 빚과 만성적인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여,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탈출구를 선택한다. 얼마 전에는 재벌가의 황태자로 불리었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투신자살을 감행해 이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던져지고 있는 수많은 자살의 문제에 대해여 이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개인의 비극으로 오인된 사회적 타살이라며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단적으로 한 개인이 카드 빚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질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신용카드 회사들의 무분별한 회원유치전략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충격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에 그대로 흡수된다. 실시간에 가까운 리얼타임속보로 자살에 대한 원인과 한국경제, 대북경협사업에 미치는 영향들을 분석하여 언론은 사회의 구성원에게 재벌 총수의 비극적 결말을 각인시킨다. 이와같이 어떤 죽음에 대한 사회적인 충격지수가 높을수록 한 개인이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문제의식은 사후적으로 승인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기회에서조차 배제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죽음 이후에도 불평등은 지속되고 있는것이다.

지난 4월 26일, 19살의 한 청소년이 자신이 활동하고 있던 동성애자인권단체의 사무실에서 문고리에 끈을 매고 죽음을 선택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다 결국 자살을 선택한 고인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 "죽은 뒤에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000은 동성애자라구요. 더 이상 숨길필요도 없고 그로인해 고통 받지도 않아요" 라는 짧은 글귀를 남겼다. 그 몇마디 말 속에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폭력의 흔적들이 고통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기억되지 못한 채 영원히 사라져갔다. 동성애자인 한 청소년의 실존에 대한 고민- 죽은 뒤에야 당당할 수 있다는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후적으로 승인되지 못한 것이다. 재벌총수가 가졌던 기회조차 박탈당한 그 현실이야 말로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죽어서도 또한 번 죽을 수 밖에 없는 슬픈 역설이 그대로 현실에서 드러나는것이다.

제 2회 스쿨 퀴어가 열린다

*HEAVENLY CREATURES 천상의 피조물들 Peter Jackson, 1994, 109min (자료협조: 서울퀴어아카이브)

지난 2월, 퀴어 십대들의 유쾌한 인생(Queer teenager cheerful life)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제 1회 스쿨 퀴어에 이어 오는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제 2회 스쿨퀴어(나의 여름방학)가 퀴어 아카이브내의 '스쿨퀴어팀'의 주최로 개최된다. 지난 1회 스쿨퀴어가 게이, 레즈비언 성장 영화들을 중심으로 청소년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즐거이 인정할 수 있는 자리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2회 스쿨 퀴어는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10대 동성애 관련 다큐멘터리물과, 성장 영화에 국한되지 않고 10대들이 보고, 향유하고 싶어하는 장편 극영화들을 중심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상영작들은 장편 극 영화(특별한 여름방학 이야기)/다큐멘터리(나에 대한 기록, 우리에 대한 기록)/단편들/퀴어카툰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상영되는데 장편 극 영화 섹션 상영작중에는 반지의 제왕으로 알려진 피터잭슨의 1994년 작 '천상의 피조물'도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 제 2회 스쿨퀴어 상영시간표링크

지극히 주관적인 추천작-상실의 시대(Lost and Delirious/레아 폴 감독/100min)

Lost and Delirious 상실의 시대 Lea Pool, 2001, 100min(자료협조: 서울퀴어아카이브)

* 스포일러는 조금밖에 없으니 절대 안심 하세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동성애에 대한 시각을 만들어주는 것만큼 유해한 것이 또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스쿨퀴어 홈페이지에 적혀있던 이 질문에 대해 레아 폴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서 아름답고 열정적인 한 여성은 바로 새가 되어 날아갔다'

기숙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폴리와 토리의 로맨스, 그녀들의 사랑은 셰익스피어시대만큼의 열정을 품고 있지만 사회적인 편견을 견디지 못한 토리는 결국 폴리에게 헤어질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나서 바로 그녀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제이크라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이러한 내러티브 자체는 기존의 퀴어 영화에서 많이 차용된 구성이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신열같이 뜨거운 분위기이다.

이별을 선고한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폴리의 당당하고 열정적인 행동, 그것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뜨거운 16세기식 로맨스에 빠져들게 만든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인 측면- 새로운 퀴어 담론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오래된 퀴어 영화 공식을 답습했다는 측면은 일면 타당하지만 그것으로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존재성 자체가 부정될 수 는 없다.

마치 16세기 셰익스피어 시대( 폴리는 수업시간에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으면서 토리의 마음을 돌리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를 사로잡고 있는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로맨스를 그대로 가져온듯한 폴리의 사랑은 쿨한 감수성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우리의 시대에 아름답고 서정적인 한편의 시를 선물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느끼게 되는 그 미세한 정서적 충돌, 그 안에서 사랑의 환열을 느낄 수 있다면 마지막에는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 사랑의 아픔을 통해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섬세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스쿨퀴어, 성적 소수자에 대하 차별적 시선을 고민하다.

몇 달 전 한 10대 청소년 동성애자가 자살한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며, 동시에 10대 동성애자들이 그 중에 또 소수자가 되어 입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 2회 스쿨퀴어 홈페이지(www.sqff.or.kr) 에 쓰여 있던 주최 측의 문제의식이 전 사회적인 고민으로 각인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한번의 쓸쓸한 죽음, 죽어서조차 문제화되지 못하는 성적 소수자의 고통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나의 여름방학, 선정적인 흥미와 비극적인 결말에 한숨을 내뱉지 말고 10대 청소년들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스쿨퀴어 영화제에 가보면 어떨지, 인지되지 못한 죽음을 한번쯤은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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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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