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개악저지’ 그 허상에 대하여
비정규노동자 외면한 주5일 근무제 끝내 국회통과 노동계, ‘저지투쟁’ 밀리면 ‘개악’되는 선험적 대응 되풀이
“올해 민주노총이 국회·정부를 상대로 조직한 정치적 총파업은 경제자유구역 반대, 파병반대, 주5일 근로기준법 개정 등 이렇게 3개 정도였다. 결과는 최악인 3전 전패(三戰全敗)다. 주5일 근무제의 경우에는 총파업과 노숙투쟁이 몇 번째인가? ‘양치기소년’의 반복되는 거짓말도 아니고... 총파업의 위력이 없으니 정부와 국회에서도 위협이 될 턱이 없다.” 건설산업연맹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환영 받지 못한 주5일 근무제 시대
주5일 근무제를 위한 근로기준법개정안이 8월 29일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올 여름처럼 일주일이면 두어 번 햇빛을 볼까 말까 하게 길어진 우기에는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는 사실 ‘주5일 근무 시대가 열렸다’는 말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당장 하루하루 일당을 받으며 생활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굵은 빗방울만 염려스러울 뿐, 2011년에나 시행이 될지 말지도 모를 주5일 근무제는 ‘딴 세상 이야기’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일용노동자들을 비롯한 임시직, 단기계약직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영세사업장 및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소외감과 위화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동강도가 오히려 강화되고 임금보존마저 어려워질 위험에 처해있어 우려의 소리가 높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8월 19~20일 양일간 노숙농성에 이어 28~29일에 걸쳐 2차 노숙농성을 이어갔던 양대 노총은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 앞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이 없도록 후속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를 차별하고 노동조건을 후퇴시킨 독소조항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독소조항을 재개정하기 위한 총력투쟁과 함께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노총도 즉시 속보를 배포하고 “‘노동자 치욕의 날 8·29’를 기억하자”며 “현장에서 개악된 근기법 폐기투쟁을 조직할 것이며 개악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내년 총선에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저지를 위해 국회 앞에 모인 노동자들은 국회모형을 불태우며 주5일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분노했다. 이처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일자리를 나누어 예비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진출을 쉽게 한다는 애초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노동자들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고 있었다.
양대 노총 ‘임단협을 통한 근기법 무력화’
하지만 경총 등 재계는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전에 확대회장단 회의를 통해 “법 개정 이전에 주5일제에 관한 단체협상을 타결했던 현대·기아차와 금속노조 소속 기업 등은 법개정 정신에 맞게 다시 단협을 개정해야 한다”며 개악됐다며 항의하는 노동계에 또 다른 불을 지피고 있다.
개정안 부칙에 명시된 '단체협약, 취업규직 등을 개정안에 맞도록 고치도록 노력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재계는 발 빠르게 이미 단체협약으로 개정안보다 노동계 입장에 충실한 주5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사업장조차 개정안 수준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공공연맹 임성규 사무처장은 “근로기준법이란 사용자가 지켜야 할 최소 기준의 법안이고 사용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단체협약상의 근로조건을 낮출 수가 없는 것이 원칙인데 개정안이 단체협약 개정을 강요한다면 법리적인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경총이 언급했던 현대·기아차 등 그래도 교섭력이 있는 대기업노조가 단협을 변경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문제는 상대적으로 교섭력이 약한 중소규모노조들에 대해 사용자들이 근기법 수준으로 다시 주5일제 근무조건을 낮출 것을 강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노조의 조직력이라는 것이 한결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이상 사용자들은 언제든지 이 근기법 조항을 악용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임 처장은 “민주노총은 근기법 개악 저지에 실패했다고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내년 임단협 교섭시기에 전통적인 ‘시기집중투쟁’을 가져서 전국적인 근기법 무력화 투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게는 그것 역시 ‘그림의 떡’
문제는 임단협 투쟁을 통한 ‘개정안 무력화’라는 것 역시 조직노동자들, 그것도 주5일 근무를 이미 단협으로 쟁취하고 있는 대기업노조들에게만 해당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 그 동안에도 근로기준법 수준의 노동조건과 최저임금 수준, 또는 그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초과근로나 휴일휴가 수당이야 어차피 총액임금에서 포괄역산을 하는 주먹구구식 월급체계에서 주5일 근무가 실시되면 초과근무 할증율이 얼마로 낮아지고 축소되는 휴일휴가가 며칠이냐 하는 것은 당장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실장은 “비정규직들이야 주5일 근무가 실시되면 ‘우리만 뼈 빠지게 일할 것’이란 예상부터 한다”며 “민주노총이 환노위에서 주관한 노사정 협상에 참여할 때는 이미 이들 노동자들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기에는 입지가 좁아져 있었다”고 말한다. 이미 환노위에서는 법안통과를 위해 명분을 만들어 보려고 가진 노사정 협상 자리였기 때문에 기존 노사정 협상안에 대해 노동계 단일안을 내는 수준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건설산업연맹의 백석근 부위원장은 “이미 정부안은 단계적 적용, 탄력적근로제 확대 등 심각한 수준의 개악안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임금보존조건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환노위 재협상 때 단일안을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해 협상이 정부안 위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결과적으로는 민주노총이 주5일 협상테이블에 처음 참여한 노사정협상이 환노위와 정부에 명분만 준 것을 아쉬워한다.
양대 노총은 주5일제 대응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받는 것과 동시에 지난해 통과되어 올 7월부터 실시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법이 광양 등지에서 노동권을 악화시키는 양상을 벌써 보이고 있는데도 법안 통과 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내부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최근 양대 노총의 노동관계법 개정과정 대응은 ‘저지투쟁’에서 밀리면서 사실상 개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과, 개악된 내용에 대한 후속 조치도 배치되고 있지 않는 ‘선험적 투쟁’에 그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주5일 근무제는 어찌되었건 단협으로 노동조건 하락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고 임금도 주말을 즐길만한 수준의 노동자들이라면 여가선용의 기대에 부풀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용불안에 노조도 해고를 각오하고 만들어야 하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임단협 교섭을 통해 ‘자기 밥그릇 자기가 지키자’는 것 역시 공허하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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