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출향인들에게 반핵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부안21
지난 8월 30일에 부안 성당에는 몇가지 모습이 있었습니다. 교육부총리가 방문한다고 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TV를 통해서 보던 교육관료들은 성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습니다. 정보나 수집하려는 기자들도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교육 관료에 대한 기대 없음과 언론의 왜곡과 편파보도에 대한 실망의 풍경입니다.
교실에는 아이들이 없다
부안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은 뒤 모든 것이 뒤엉켰습니다. 생업을 포기한 채 방폐장유치 백지화 문제에 매달려 있습니다. 학부형 가운데는 감옥에 가고 수배되거나 경찰의 폭력으로 병원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학부형 한 분은 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걸어다니기도 어려운데 수배된 상태라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올해는 소를 키우겠다고 들여논 소들을 거두어야 할 남편이 수배되니 부인은 소먹일 것이 걱정이고, 벼가 냉해가 들어서 수확도 걱정인데 논에 한번쯤 가보고 싶지만 수배된 상태라 움직이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학부형의 아이들에게 학교에 보내라고 전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위로는 되지 못할지언정 염장을 지르는 일은 못합니다.
8월 25일에 학교에서 반 아이들을 만난 뒤에 교실에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등교거부와 휴업으로 아이들을 학교에서 볼 수 없습니다. 교사로서 당연히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왠일인지 하여 놀라고 학부형 상담을 해야 하는데, 나쁘게 말하면 신문에서 주장하듯 직무유기(?)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나와서 아이들이 없는 교실을 보면서 절망감에 휘감겨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자녀가 학교에 가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아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부안의 상황을 알고서는 등교거부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등교거부는 부안의 현상에 대한 부안군민과 학생들이 느낀 절망감의 크기를 나타냅니다.
영부사라는 ID로 쓴 글을 읽습니다.
가슴 한쪽 뻥 뚫린 듯 합니다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찼었던, 그렇지만 지금은 정막만이
감도는 교실을 그냥 그렇게 돌아봅니다.
이녀석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릅니다.
이녀석들을 하루속히 제자리에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어보지만
공허한 외침뿐입니다.
지금은 내 앞에서 보이지 않는 이녀석들에게 저는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들은 핵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단다
핵없는 세상은 너희들의 손으로 만들어내야 한단다
핵없는 세상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말거라
너희들이 내 옆으로 돌아오지 않는 건 슬픈 일이지만
핵없는 세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그것은 더욱더
슬픈 일이란다.
거리에서 학부형들을 만나면 가슴이 미어지고 손만 잡고 있을 뿐 할 말이 없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울까요? 한수원(주)은 돈도 많습니다. 지역 언론에 똑같은 내용의 광고를 몇 달째 싣고 있습니다. '전봇대는 없어지고 전기요금은 내린다'는 광고로 지역 언론을 도배합니다. 핵폐기장의 안전성이나 적정성은 어디로 가고 경제적 보상이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바르면 부안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헤어 나오지 않습니다. 광고로 신문사를 운영하는 신문사야 광고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 객관적 기사에 대한 어떤 기대도 어렵습니다. 부안 문제에 나몰라하던 중앙 언론들도 등교거부 문제에는 한목소리를 냅니다. 학생들을 볼모로 삼으면 안된다는 틀에 박은 내용입니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습니까
교육부 총리와 간담회가 열리던 풍경은 참담하기 만 했습니다. 총리는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 할 뿐이었습니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부안의 핵폐기장 문제는 주무부서가 아니지만 들은 얘기는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자녀 셋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며 오죽했으면 사랑하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겠냐며 어미의 심정을 알아달라며 눈물을 흘린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진실이 부안 현장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상황에서 학교 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며 현실 교육에 대한 울분을 토하는 학부형도 있었습니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대통령이 군수에게 용기를 북돋은 것이나 대화가 안되면 밀어부쳐야 한다는 얘기는 이곳 학부모들을 더욱 비통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학교 문은 닫지 않았다는 교육부 총리의 얘기는 많은 학부형들의 함성 속에 묻혔습니다. 전쟁 중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데, 이곳에는 미래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등교거부와 휴업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학부형들은 우리를 설득하려고 하지말고 부안에서 벌어지는 진실 그대로를 국무회의 등에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학교는 사회와 독립된 순수하고 순결한 곳' 이므로 학교 밖 가치나 갈등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이 그동안 현실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어렸을 때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개발독재에 동원되었습니다. 외우기가 늦은 동무들은 학교가 끝나고서도 남아서 먼저 집에 간 아이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교사들은 유신 홍보를 해야했고, 5공 때는 경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내용 없는 교육을 위해 동원되었습니다. 교사는 슬프게도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을 홍보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분노의 거리에 서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소개합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속이 애립니다.
그러나 이미 방학 전에 예견된 일인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화 창구도 열어 놓지 않다가 막상 등교 거부가 일어나자
호들갑을 떱니다.
늘상 듣던 얘기아닙니까. 아이를 볼모로 삼아서는 안된다커니,
아이들을 학교보내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커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자식을 보내지 않은
부모 심정을 한번이라도 헤아려 보았나요?
학교라는 온실을 택하지 않고 거리라는 삭막함을 택한
학부형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기회에 세상을 옳게사는
방법과 정의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장소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학부모들은 온상의 교실을 버리고 거리의 교실을 택했답니다. 그곳에 옳게 사는 방법과 정의가 있다면 과감히 거리의 배움터를 택하겠다는 얘깁니다.
학부모들도 이젠 알만큼 압니다. 학교가 졸업장과 대학진학 이라는 것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육 당국은 매일 아침 각 학교로 전화해서 학생들이 몇% 결석했는지 통계 내기에 급급합니다. 어려운 등교거부 문제를 단위학교에 맡겨놓고 학부형에게 드리는 편지 한 장으로, 공문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교육계의 비극입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없는 학부형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이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굳게 닫힌 교실 문을 열고 청소라도 해 놓을 랍니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왔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도록. 핵폐기장 문제가 해결되고 부모님과 손잡고 나타날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서 거리로 나가서 아이들을 만나보렵니다. 거리에 놓여진 프랭카드를 읽으며 아이들이 있음직한 분노의 거리에 서 보았습니다.
- 정재철 / 백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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