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에 있는 아담한 2층집인 통일문제연구소에는 담장이 덩굴이 보기 좋게 자라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올 2월에 시원스럽게 넓힌 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봄에 이 마루에서 사람들이 빼곡이 앉아 노나메기 문화특강이 진행되었단다. 백선생님의 미인론, 미남론, 용의 다른 이름인 이심이 이야기가 소문이 퍼지고 여러 상업방송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오고 지금 EBS에서는 12회 분량으로 백기완 문화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백기완 선생님을 만났다."얼마전 울산 현대중공업에 갔었어. 노동자 한 70명 왔길래 왜 이리 안 모였나. 백무산이는 어디 갔나. 그의 시에 나를 지칭해서 '쌍도끼가 온다. 노동자의 배짱에 불을 지르는 쌍도끼가 온다'고 했는데... . 권용목이는 어디 갔나. 89년이던가 권용목이는 감옥에 가고 난 그 집에 갔었는데, 그 집에 최루탄이 들어오고 그런데 권용목이는 어디 갔나. 열아홉 살부터 이 생각하며 사는데 이젠 내 주변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갔어. 이젠 말하기가 싫어."
1932년 황해에서 나서 13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누이를 두고 월남을 시작으로 백기완 선생님의 한 평생은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는 노나메기(같이 일하고 잘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를 위해 50년대 농민빈민운동을 시작으로, 84년 통일문제연구소를 만들고, 90년 전노협 고문, 92년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출마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다. 백선생님은 2001년 55년만의 북한 방문에서 할머니가 된 누이를 만나 어머니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혼절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독점자본, 미 금융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야. 하제(내일의 희망)를 잊어버렸어. 다들 생각이 돈만 있으면 하고, 자기위치만 찾고, 생각이 없고 썩어버렸어. 전에 전노협 기념시를 쓰려하는 데 떠오르지가 않아. 해서 소주 1병 들고 동네 뒷동산에 올라가서 샘터에서 물 한바가지 떠놓고 소주 한 병 다 먹고 내려와서 구멍가게 가서 소주 한 병 더 나발을 부니 그제서야 떠오르더군. '노동자가 밀리면 사람이 밀리고 노동자가 패하면 역사가 패하니 노동자여 들고 일어서 북을 때려라... .' "
"알기에 대해 말해달라고? 요새 사람들은 알기에 대한 몸부림이 없어 답답해. 다 소시민이 돼버려. 노동운동도 소시민 운동과 뭐가 달라. 알기는 중심, 주체라는 말이야. 알기는 또 다른 자기야. 자기의 본래의 본질, 아이덴티티란 말 하지? 정체성 말야. 그래서 노동자는 사람의 알기, 세상의 알기, 진보의 알기가 되어야 해. 알기라는 중심운동은 외연적으로 확대되면서 우주의 창조적 알기가 되는 거야. 이 땅의 노동운동은 미적 전환의 계기를 잡아야 돼. 변혁 혁명이 썩으면 예술이 앞장서야 하는데, 예술도 상업적으로 썩었고 꽁꽁 얼어붙었어. 노동자가 하제가 되어 앞장을 서서 새싹을 틔워야 해. 미적 전환의 주인이 노동자야."
백선생님의 일과는 글쓰기, 강연, 방송 등이다. 가을에는 노나메기 9호 발간도 준비하고 노나메기 문화특강도 다시 열린단다. 통일문제연구소를 꾸려나가는 채원희 동지는 백선생님이 노나메기 사상을 정립하는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한다. 알기의 주체 노나메기의 주체는 누구일까?
"우리나라에 가장 아름다운 미인은 나네, 도랑네, 너울네가 있어. 나네는 언땅을 지고 일어서는 새싹 같은 여성이야. 새싹같이 나네는 부드러우면서도 생명력이 강하고 가냘프면서도 억센 미인이야. 도랑네는 깜깜한 밤 그 어두움을 무너뜨리는 창호지 틈의 한 점 불빛과 같은 미인이야. 너울네는 없는 길을 찾아내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내는 여자야. 우리 뇌리에 미인상의 전형이 너울네야. 요새 일하는 여성일꾼은 나네, 도랑네, 너울네 같은 미인이 되었으면 좋겠어. 우리 역사의 미남은 새뚝이야. 늪이 썩으면 이 세상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삼켜지지. 그러면 사람이 침묵하게 되고 삼켜져. 도저히 그 현상을 타파할 수 없는 썩은 늪에 돌멩이를 던져 그 썩은 늪을 깨뜨리는 사람이 새뚝이야. 노동자는 너울네와 새뚝이가 되어야 해."
통일문제연구소에선 노나메기 마실집(연수원)을 추진중이다. 백기완 선생님과 올바른 인생, 올곧은 역사, 반듯한 사람, 살맛 나는 노나메기 세상을 열어나가고자 후원자를 모집 중이다. 지난달에는 히딩크가 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단다. "개고기를 사주겠다고 했는데 히딩크가 난처한 표정을 짓더군. 지금 나 위해 주는 사람 히딩크 밖에 없어." 너울네와 새뚝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백선생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의 힘에 대한 한마디는 이랬다.
"알기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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