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간은 슬퍼도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좋아요”
제 17회 십만원비디오페스티발(Broken In Seoul Festival)(이하 십만원)-“중간은 슬퍼도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좋아요_어쩌면 해피엔딩展”이 이명진 감독의 골렘(El Golem)을 마지막 관객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며 4일간의 17회 행사를 끝으로 장장 7년 동안 계속되었던 축제의 막을 내렸다. 사실, 17회의 행사 컨셉이 확정되고 한참이 지나서도 기획팀 내 누구도 이번 행사가 마지막 행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의도하지 못했지만 실로 절묘한 컨셉이었다. 2번의 행사를 함께한 짧은 경력이지만, ‘진정 신나게 즐기는 것’이 가장 ‘창조적인 문화’란 단순한 이치를 깨닫게 해준, 십만원의 애매모호함 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실, ‘십만원스러움(?)’을 추억하는 글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은 내가 아닐 것 같다. 십만원과 함께한 나의 활동경력은 터무니없이 짧고, 보다 더 ‘십만원스러운(?)’ 스텝들에 치여, 사실 행사 기획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축제는 끝났고, 축제를 지키던 많은 꿈꾸미들도(십만원 기획팀의 명칭이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줄여서 ‘꿈꾸미’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두 무슨 무슨장 이라고 불렀다. ex) 청국장, 굉장, 버르장, 꼬장 등등) 개인적인/현실적인 절박한 이유들로 십만원을 떠났다. 이번 17회 행사를 치루기 위해서는, 서른 줄이 넘었다는 이유(?)로 퇴출되었던 전전 사무국장이 다시 합류해야만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행사의 탄력을 확실히(?) 떨어뜨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이제 ‘십만원스러움(?)’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십만원스러움에 대하여,
십만원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소원(청국장, 십만원 전전 사무국장)은 십만원의 시작이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과 작업물을 처음 발표하는 사람. 구경 온 사람들 모두가 술이든 담배든 분위기든, 묘한 공기이든... 그것에 취해. 나, 개인, 눈높이의 영상, 내가 투영되는 듯한 어눌함, 혹은 뭔지 모를 뭉클한 감동”과 만나던 “역동성”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또한 “그 날의 역동성이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지고 다른 종류의 역동성 혹은 시간이 지나면 알지도 모를 슬픔 같은” 것을 동시에 느꼈었다고 기억한다.
그 날의 그런 생경함들이, 97년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카페에서 시작된, 문화 생산자와 문화 향유자들 간의 적극적 만남을 위한, 영상을 매개로 한 자발적 축제 그 자체인 ‘십만원스러움’이란 어떤 모호함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이후 십만원은 끈임 없이 자리를 옮기며, 다양한 지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꿈을 발현하기 위한 몸부림을 진행해왔다.(사실, 십만원이 단순히 영화제였다고 말할 기는 어려울 것이다. 딱히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내부에 고민도 그러했던 것 같다. 영화제를 넘어서는 축제로의 지향, 그런 것이었다) 여러 다른 영화제들의 출현과 더불어 규모와 양적인 면에서 십만원을 압도하는 많은 행사들의 틈바구니에서 십만원은 고집스레 ‘십만원스러움’이란 밑도 끝도 없는 말장난을 동력 삼아 경주해왔다. 쉬지 않고 달리는 ‘역동성’이야 말로 ‘십만원스러움’ 이었다.
진정한 ‘역동성’을 위해서
십만원에게 부여되었던 의의와 나름의 역할들과 그것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지금 이렇게 끝나는 것이 정말 못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무의미한 이분법을 넘어, 카메라 한대로 진정 기꺼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영상이 진실을 말할 때도, 넘어설 때도, 전혀 개입시키지 않을 때도, 변질시킬 때도, 혹은 주장할 때도...우리가 행복할 때는 이런 것들을 공유하면서 대화 할 때 뿐”이라는 소원(청국장, 십만원 전 사무국장)의 말이 자꾸 맴도는 것은 왜일까?
그러나 한 번의 행사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들은 너무나 많고, 이것들의 해결은 거칠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십만원도 영진위에서 나오는 다소간의 지원금에 의존하고, 그것도 없었던 오랫동안은 내부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행사를 이어왔었다. 외부에서 던지는 ‘젊을 때 하고 싶은 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는 말은 그래서 지금 더 폭력적이다. ‘희생’과 ‘행복’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십만원이 성숙해온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겠으나, 그것의 대가는 지금 너무 허무하다. 줄타기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그 줄타기는 언제나 너무 소모적이다. 그 동안 ‘페스티발’이란 화려함에 취해 보지 않으려고 했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자각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마지막 십만원이 말하는 ‘해피엔딩’은 그것일 것이다. 여전히 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문화적 꿈이 안정적 기반을 갖출 수 있을 때,. 그때가 해피엔딩이다.

십만원 행사와 함께 한 많은 ‘십만원스러운’ 사람들이 진정 모두 자신의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이런 표현이 권력 지향적이고, 당사자에게 불쾌할 수도 있음을 안다. 십만원도, 십만원을 통해 영화를 상영한 감독도, 십만원과 함께 했던 많은 꿈꾸미들도 서로간의 부채나 뭐 그런 것은 없을 것이고, 있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의 표현은 어떤 ‘심정적 울타리’와 같은 느낌이다. 잠깐이라도 십만원과 함께 뛰었던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어떠한 방식이던 십만원과 그 ‘sprit’이 발현되는 일을 하기를 정말 바란다. 그럼 언제라도 서로가 서로의 활동에 진정한 애정을 표하며, 지지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의 꿈이 이뤄지는 날이 오면, 경주를 멈추어야했던 오늘의 십만원이 가지는 많은 문제들은 이미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십만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십만원스러움은 모두의 가슴에 나뉘어 근근한 숨을 계속 이러갈 것이다.
완장 / 십만원비디오페스티발 기획팀 ssamwa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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