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줍잖은 지식인들의 뒤틀린 진실 타령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최근 재독학자 송두율(59) 씨의 처리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송두율 씨는 즉각 구속수사해야 한다."

검찰의 어떤 중견간부가 문제의 극우신문에 기고한 글의 머리 부분이다. 그의 주장에 대해 나로서는 "이렇다, 저렇다" 옳고 그름을 얘기할 마음이 없다. '법률의 수호자'인 검찰간부님으로서야 백번이고 하고도 남을 만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특히 다른 검사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실토할 만큼 인식 있는 정치행위지만, 그 괘씸함도 기본적으로는 저들 검찰 내부의 차지일 터이다.

제철 만난 듯 떠들어대는 이름난 극우정객들이나 극우논객들의 악의에 찬 온갖 독한 소리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들어 넘기면 그만이다. 그들에겐 그것이 자신들의 존재이유요, 더구나 지금은 그들의 세상이 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다들 자기 역할들을 하고 있는데, 그런 줄 알면서도 특별히 몇 마디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족속과 대목이 있다. 바로 어줍잖은 지식인들이 벌이고 있는 뒤틀린 진실 타령, 지식인 타령인데, 전상인 한림대 교수의 말을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지식인이 나서 떠들면 사회적 충격과 문화적 잔영이 오래오래 남는 법"("'진보'의 진정한 힘", ['조선일보' 10월 9일] 참조)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지식인들'의 수많은 자기증명 가운데 두 가지만 예로 들어 보자.

먼저, 박광작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10월 6일자 '조선일보'에 이렇게 쓰고 있다.

"재독학자 송두율 씨의 그간의 발언이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하나 둘씩 거짓말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레닌의 공산당 전술이 생각났다. 즉 공산당 활동에서는 아무리 반동적인 단체일지라도 대중이 있는 곳에는 참을성 있고 끈덕지게 선전 선동과 수단적 이용을 위하여 위장 침투 잠입해야 하며, 이 목적을 위해 갖가지 책략, 교묘한 꾀, 합법 비합법적 모든 방법, 진실에 대한 침묵이나 진실 은폐, 즉 사기와 거짓말 등 갖가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등의 발표를 그 자체가 곧 사실인 양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 혹은) 태도도 사실은 문제지만,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레닌이 어느 저작, 어느 문건에서 박 교수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전술'을, 즉 "목적을 위해 갖가지 책략, 교묘한 꾀, 합법 비합법적 모든 방법, 진실에 대한 침묵이나 진실 은폐, 즉 사기와 거짓말 등 갖가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 교수는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만큼 당연히 그 전거를 밝혀야 할,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그가 만일 이를 밝히지 못한다면,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무책임을 넘어 사실은 음흉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갖가지 책략, 교묘한 꾀, 합법 비합법적 모든 방법, 진실에 대한 침묵이나 진실 은폐, 즉 사기와 거짓말 등 갖가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고밖에는 달리 규정할 수 있겠는가?

사실 지금까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지식인 등등이 국가보안법을 등에 엎고 그렇게 파렴치하게 행동해 왔지만, 박 교수는 그런 부류가 아니기를 바란다.

다음은 서울대 교수였던 이인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의 "참된 지식인이라면…"('동아일보' 10월 13일)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이 글이야말로 스스로 그렇게 자부하고 또 다짐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한국의 '참된 지식인'의 이지러진 모습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송두율 사건은 아직도 수사 중이니 그에 관한 논평은 삼가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하면서도 구차한 이유를 내세워 "인권침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며 자기 할말을 다 하는 투철한, 그러나 사실 부정직한 정치적 목적의식은 역시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그리고 그의 직접적인 지식인 타령만 보기로 하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해외 민주투사로 영웅화됐던 송 교수의 정체가 수사기관의 추궁과 본인의 변명을 거쳐 한 꺼풀씩 벗겨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심한 모멸감이요, 송 교수와 같은 지식인으로서 배신감과 수치심이다."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그를 통일운동의 이론적 대부로 영웅시하다가 그의 공산당원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지켜보고서도 아직까지 그의 행태를 변호하고 있는 일부 지식인들이 드러내는 지적(知的) 도덕적 혼미다."

"관용과 순진함도 지나치면 무책임이 된다. 참된 지식인이라면, 특히 한국의 참여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한계상황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산다."

"분단과 이념적 대치상황에서 태동한 남북한의 정치체제는 어느 쪽에서고 태생적으로 기형적이고 탄압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타락한 공산주의 체제와 독재로 굴절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도록 대내외적 압력을 받고 있는 한계상황 속에서 양심 있는 지식인들은 온 겨레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공간을 넓혀가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쳐야 했다."

"한 인간으로서 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지식인으로서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낀다고 쓸 때, 이 사건에 대한 이 이사장의 '감정'이 얼마나 격하고 절실한 것인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이사장의 주관일 뿐이다. 보다 중요성을 갖는 객관은 그의 주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솔직한 심정 토로"든, 이론적 내용의 논문이든, '지식인'이 자신의 견해를 공적으로 발표할 때, 그것은 당연히 그에 상응한 반론이 있을 수 있음을 예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이사장이 토로하는 만큼의 솔직함으로 반론을 하더라도 "한 인간에 대한 인권침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에서 감히 말하자면, 글의 내용과 논리에 비추어 이 이사장은 결코 "한계상황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산" 혹은 "한계상황 속에서 … 온 겨레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공간을 넓혀가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쳐야 했"던 "참된 지식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지적(知的) 도덕적 혼미"를 겪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다름 아니라 이 이사장과 같은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이 이사장이 같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 데에 특히 주목하고 싶다.

"장기표 씨가 지적했듯이 송두율 사건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순수한 동기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수많은 민주투사들이 억울하게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수난을 당했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송두율-김철수 같은 존재들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번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의 존치를 주장한 수사기관이 국민 앞에 가장 높은 점수를 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사건이 낳은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장기표 씨가, 좋게 말해서, '순진한'(?) 정치인이라면, 이 이사장은 자칭 '지식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고 쓰고 있는 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국가보안법이 적어도 지식인에게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국가보안법! 그것은 명백히 일방적인, 불구의 사고를 강요하고 있고, 그리하여 적어도 지식인에게는 '반지식인적인' 폭력이다. 그리고 '아이러니' 운운할 때 이 이사장은 명백히 이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바로 그 국가보안법을 잣대로, 그리고 그에 기대서 송두율 교수를 재단하고 격렬하게 성토하는 이지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참된 지식인' 운운하면서!

사실 이 이사장을 포함해서 오늘날 '지식인' 운운, '진실' 운운하면서 송두율 교수를 단죄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진실'도 그에 대한 열정이나 갈망도 아니다. 진실이, 그에 대한 열정이나 갈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들은 송 교수를 단죄하는 대신에 국가보안법을 단죄하고 그 폐지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 민중에 대한, 그리고 역사적 정치적 진실에 대한 깊은 계급적 증오일 뿐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그 피의 증오 말이다.

한편, 송 교수를 초청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일부 간부나 '지식인'이 보여주는 꼴도 가관이기는 마찬가지다. 보도에 의하면, 그 상임이사란 자 또한 이렇게 어이없이, 국가보안법에 기초한 '진실' 타령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10월 10일자 '동아', '조선' 참조).

"이 사건의 진실을 명백히 밝히고 사법절차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 구속수사했으면 좋겠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구속수사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서강대 정외과 교수이기도 한 박호성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연구소장은 국가보안법이 펄펄하게 살아서 이 소동을 벌이는 한 가운데에서, 얄팍한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이렇게 넋 나간 소리를 읊고 있으니 말이다("[시론] 송 교수 추방만은 안된다 : 애국가에 눈물 흘리던 모습 … 자유민주주의 관용 보여줘야", '조선일보' 10월 8일).

"의심의 여지없이 대한민국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하기야, '민주화운동' 대신에 그 '기념사업'들을 하시는 이유가 나변(那邊)에 있을까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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