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유아 다람쥐족’

=오전엔 유치원으로 오후엔 학원으로 ‘맴맴’=

맞벌이부부가 급증하면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들 중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는 ‘유아다람쥐족’이 크게 늘고 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애를 태우는 맞벌이부부들이 각종 유아학원을 자녀들의 보호소 겸 조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들 아동은 하루에 서너곳의 학원을 돌며 6~7시간씩 수업을 받고, 학원을 이동하는 데만 2시간 이상이 걸리는 등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김모군(5)은 오전 10시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 명동의 영어 유치원에 맡겨진 뒤 저녁 때가 돼서야 귀가한다. 오후 2시쯤 영어 유치원이 끝나지만 곧장 셔틀버스를 타고 피아노학원으로 이동, 1시간 동안 수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군은 피아노학원이 마친 뒤에도 다시 태권도 도장에서 1시간 가량 운동을 하고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온다.


김군은 아들을 유명 유치원에 보내고자 하는 어머니의 희망으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집에서 버스로 20~30분이 걸리는 유치원과 피아노학원 등에 다니는 통에 ‘학원 순회’를 하는 데만 하루 2시간 가량이 걸린다.


같은 학원의 양모군(5)도 유치원이 끝난 후 격일로 미술과 피아노 교습을 받고 있다. 양군 부모는 영어유치원 수강료와 과외비용으로 한달에 1백만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으나 마땅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적다는 점 때문에 가계에 부담은 되지만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있다. 은행원인 양군 어머니 박모씨(34)는 “집에 오면 곧바로 곯아떨어지는 아이를 보면 안쓰럽지만 마땅히 애를 봐줄 사람도 없고,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뒤처질까봐 할 수 없이 학원을 돌린다”고 털어놨다.


이 학원 유치부 담임교사 신모씨(28·여)는 “학원생의 60% 정도는 열쇠를 매단 목걸이를 하고 하루 두곳 이상의 학원을 전전하는 맞벌이부부의 자녀”라며 “이들은 유별나게 어리광을 부리는 등 정에 굶주린 모습을 보인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이기숙 교수 연구팀이 전국의 만 3~5세 유아 2,350명과 그들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아들의 일상생활 조사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아 10명 가운데 2명 이상(22%)이 유아교육기관의 수업이 끝난 뒤 바로 귀가하지 않고 다른 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교수는 “교육시간이 긴 미취학 유아들은 방과후에도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TV 등 전자매체를 접하면서 수동적인 성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며 “맞벌이부부의 자녀들을 장시간 돌볼 수 있는 전문 탁아소나 유아시설 등의 설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나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현철기자 cho197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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