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비리 척결” 외치며 교육희망 일구는 황철권 선생님

전교조 울산지부 연대사업국장


요즘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는 것이 부끄러운 교사 황철권은 오늘도 수업이 끝나고 삼신초등학교 앞으로 종종 걸음을 친다. 태화여중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그는 멀지 않은 삼신초등학교 앞에서 오후 5시면 퇴근길에 1인 시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위논문 심사위원 000는 물러나라” 물론 그 외에도 다른 곳, 승진비리 심사위원들이 있는 곳에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이 부끄러운 다른 선생님들이 퇴근길에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렇듯 종종 걸음을 치는 것은 아침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학교로 출근하기 전인 8시경에 학교근방인 태화로타리에서 화·수·금요일마다 플래카드를 들고 이색적인 ‘0교시 수업’을 펼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논문조작 + 허위심사 = 울산교육청의 승진비리, 교육감은 왜 감싸고 도는가?”
이른바 ‘아름다운 0교시 투쟁’. 이 0교시 수업의 주제는 ‘교육비리 척결’이다.

지난 8월 21일 양심선언이 있었다. 울산교총이 해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현장연구대회의 논문이 실제 277편 제출되었으나 515편이 제출된 것으로 부풀려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조작된 논문은 내용조차 없는 가짜일뿐더러 당사자도 모르게 남의 명의마저 도용한 것이었다. 전체의 40%만 입상시켜야 하는 규정에 따라 실제 제출한 논문을 거의 다 입상시키기 위해서였다.
전·현직 장학사(관),학교장들인 심사위원들은 이 가짜 논문에 등급과 점수까지 매기는 허위심사를 하고 이로써 제출한 사람들은 거의 다 입상하여 연구점수를 받는다. 여기에 오랫동안 교직사회에 만연했던 현장연구대회와 관련한 금품수수설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이 연구 점수는 전문직·교감·교장 승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울산교육청이 ‘철면피’처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울산교육청의 승진비리 방정식이다.
“어떻게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에서 이런 일이······” 보통사람들로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 승진비리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관행처럼 이루어져 왔다. 이로써 이런 내막을 모르는 선량한 교사는 영문도 모르게 피해를 입고, 편법과 부정을 통해 아이들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능력있는 교육자인양 행세한다. 오히려 승진비리가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오랫동안 이루어진 너무나 아름다운 관행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어떤 심정일까?

교직사회 내부의 일이라고 어찌 이런 비리를 덮어주고 묻어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두달여 동안 이 말도 안되는 비리를 뿌리 뽑으라고 외쳐왔다. 교육청 앞마당에서 동료 교사들과 천막 농성을 시작한지도 한달을 훌쩍 뛰어 넘었다. 민족의 명절이라는 한가위에도 그와 동료들은 천막을 지켰다. 온 나라를 휩쓴 태풍 매미도 이들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 교육희망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사 황철권은 그의 양심이 이끄는 대로 아침에도 퇴근길에도 이렇게 달려간다.

두달여를 이렇게 지내왔으니 참 힘들기도 할 텐데, 삼신초등학교 앞에서 그의 모습은 여느 때처럼 넉넉하다.
오늘 아이들이 와서 ‘허위논문 심사위원 000는 물러나라’ 피켓을 보며 질문을 쏟아 붇더란다.
“아저씨, 허위가 뭐예요?”
“가짜라는 말이란다.”
“논문은요?······”
“얘들아, 성적을 조작하면 되겠니?”
“절대 안돼요.”
“그런데 부끄럽게도 선생님이 성적을 조작해서 아저씨가 야단치러 왔단다.”
“선생님이요?!······” 아이들 눈이 똥그래지더란다.
그 비리의 책임자인 심사위원장이 당시 초등인사담당 장학관이었고 지금은 약수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라는 것, 심사위원 중 한사람은 얼마 전 영전해 온 강북교육장이라는 것은 차마 부끄러워 이야기하지 못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교장·교감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그만큼 좁은 학교 울타리 내에서 교장·교감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교육행정관료로서 별것 아닌 자리인데 학교 내에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승진에 매달리게 됩니다. 또 승진에 매달리다 보면 근무 점수를 매기는 교장·교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요.”
교사가 승진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을 위한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리고, 아이들에게 그만큼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교육현실이라고 고백한다.
“논문조작, 허위심사, 승진비리는 그동안 가려져 있다가 이제야 수면위로 떠오른 것일 뿐입니다. 편법적인 점수따기 경쟁을 부채질하는 현 승진제도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예요. 결국 이런 승진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단호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는 가슴이 답답하다. 이런 승진비리가 드러나고 난 후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울산교육계의 불감증 떄문이다.
울산교육청도, 논문편수를 조작한 교총회장도, 비리 심사위원장도 심사위원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당신들만 조용히 하면 별 문제 아닌 것을·····”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고 만연한 비리로 이제는 똥과 된장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또 지금 이 얘기를 하면서도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그의 마음은 아프고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픔과 상처 없이 어찌 새살이 돋을까. 그래서 계속되는 고단함에도, 두 달이 아니라 흰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가 와도 결코 이 문제를 접어 둘 수 없기에 일찍 일어나야 할 내일을 생각하며 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창원에서 울산에 온지도 11년이 되었다.
울산에 오게 된 데에는 뜻밖의 계기가 있었다. 함께 사범대학교를 다니고 울산에 발령받은 친구들을 만나러 놀러 왔을 때였다. 당시 무슨 이유로인지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고, 남목삼거리를 비롯한 도로가 모두 노동자로 꽉 차 있었다. 그도 덩달아 그 노동자들의 대열속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날의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그 모습.
그 후 태어나고 자란 마산을 떠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이곳 울산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정든 생활터전을 떠날 수 없다는 늙으신 어머니만 두고 온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이 곳 울산이 좋아서 온 그는 어머니도 하루 빨리 모셔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한지 6년이 되었다. 상임집행부로 활동하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위원장, 사무처장 등 4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비상근이라 학교에서 종일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쪼개 활동을 한다. 더욱이 연대사업국장을 맡고 있는 그는 그동안 지나온 어느 때보다도 정신없이 바쁜 한해를 보내고 있다.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 교육개방 저지, 급식조례 제정, 교육비리 척결 지금까지 해온 굵직한 일들이다. 이 외에도 사립학교법 개정, 표준수업시수 마련 등 수많은 산적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선생님들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예요.”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보니, 그 바쁜 와중에도 학부모들과 함께 급식소위원회 활동을 분주하게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짜증내거나 화내는 일 없이 항상 넉넉한 선생님.
새삼스럽게 “모든 선생님들이 그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태화여중 학생들은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동구에서 근무하다 올해 태화여중으로 왔을 때 동구와 이곳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초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학생들 건강에 중요한 급식만큼은 개선하고 싶었다.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마음은 학부모들에게 결국 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함께 급식개선 활동을 하는 학부모 운영위원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때 고단함은 온데 간데 없고 더없이 보람될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로서 동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 아들에게는 더없이 미안하다. 바쁜 날들을 보내며 살펴 주지 못해도 돌아보면 어느새 이만큼 커 있다. 잠들어 있는 아들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로서 단지 이 아이들이 자기 주관을 뚜렷이 가지고 성장하기만 바랄 뿐이다.

과학교사 황철권에게는 꿈이 있다. ‘아름다운 학교, 재미있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 구호가 아닌 정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우리가 나중에 돈을 모아서라도 학교를 세워 교육다운 교육을 한번 해보자.”
이제 40대 중반을 바라보며 그는 시야를 밝히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교육다운 교육은 교사만이 아니라 학부모들과 함께 해나갈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내 자녀가 잘되기만을 바라기보다 모두 함께 성장하는 참된 교육의 정형을 학부모들과 더불어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또 다른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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