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사회 80년대로 돌아가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거리로 내몬 것은 정치권의 위선


△"머리띠 두른 XX들 다 죽여버려" [참세상]

법은 불공평하다. 법을 만드는 이들을 국민이 뽑았지만, 이후 그들이 어떤 법을 만들더라도 제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판단이 법적용에 있어서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에 항의하는 국민들은 범법자로 낙인찍히기 쉽상이다.

9일 전국노동자대회는 불법으로 낙인찍혔다. 노동자들이 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이날 2시간의 혈투를 지켜보자.

이날 오후 5시 반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10만여명의 노동자들은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촛불추모제를 갖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광장 한편 광화문 방향 도로에서 맞닿은 것은 빼곡히 들어선 경찰차량.

일부 노동자와 학생들은 광교사거리(을지로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난 겨울 미선이·효순이를 위한 촛불추모제의 경우 경찰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당시 촛불의 덕을 보았기 때문인가. 정부가 노동자들을 과격·폭력세력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인가.

이 상황에서 마찰은 불가피했다. 이미 노동자들은 자신을 보호할 자위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앞서 노동자 집회에서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진압을 경험했던 이들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우리의 동지를 죽였습니다"

오후 6시 광화문 길이 차단된 노동자들은 그 자리에 앉아 이렇게 입을 모았고, 길을 열 것을 경찰에 요구했다. 같은 시각 광교사거리로 진출한 노동자들은 촛불추모제 장소인 효순이·미선이 추모비(교보문고 앞)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 시청 후문에서 경찰과 노동자들간에 충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40여명의 노동자 선봉대가 광화문 방향으로 진출하기 위해 나선 것.

그러나 쇠파이프로 무장한 이들도 10여분만에 무장해제를 당했다. 시청 후문 삼거리, 세 방향에서 진입한 경찰들에게 고립된 것이다.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노동자들은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방패날과 곤봉에 온몸을 웅크리고 버텨야만 했다.

경찰의 계속된 폭력에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그만하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폭력은 계속됐다. 심지어 경찰은 이를 촬영하던 기자들의 카메라를 손으로 가려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연행되기 전 머리에 손을 얻고 웅크리고 앉아 있던 노동자들 사이에 한 노동자가 바닥에 쓰러져 방치돼 있었다. 병원으로 후송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경찰은 이들을 한 사람씩 연행하기에 바빴다.

결국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입에서 거품까지 나오는 이 노동자는 20여분 후 차량으로 급히 후송됐으며, 이 과정에서 뒤쫓아오는 경찰을 주위 노동자들이 막아서기도 했다.

"머리띠 두른 XX들 다 죽여버려"

오후 6시 반 시청 앞 노동자들은 광교사거리를 지나 국세청 앞(종각사거리)으로 향했다. 이미 이곳에는 먼저 도착한 노동자들이 집결해 있었다. 노동자와 학생들로 이루어진, 무장한 선봉대는 교보문고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교보문고 정문 앞에서는 시민들이 경찰에게 거센 항의를 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경찰이 도로가 아닌 보도까지 막아선 것에 분노를 터트렸다.

"경찰이 몽둥이에 방패들고 서 있는데, 그 사이를 나더러 지나가라는 거냐?"
"차도로 가서 막으세요. 왜 보도까지 막습니까?"

시민들 중 50대로 보이는 한 시민의 얼굴에는 타박상을 입은 흔적이 보였다. 그는 기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지나가려고 비키라고 했더니, 방패로 내 얼굴을 치는 거야. 그리고 '씨팔XX'라고 욕까지 했어."

그 사이 도로에서는 선봉대와 경찰간에 공방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쇠파이프를 든 선봉대와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들 사이에 혈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공방전도 잠시, 노동자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경찰의 방패날과 곤봉세례가 이어졌다. 또한 이미 무장해제 되고, '大자'로 쓰러져 있는 노동자들을 경찰은 방패날과 곤봉으로 내려쳤다. 더불어 연이은 경찰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한 대원(1005중대 소속)은 뒤돌아 급히 후퇴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붉은 벽돌을 던졌다. 기자가 이를 만류했음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올 테면 오라'고 손짓을 한다. 이어 화염병이 등장하고, 투석전이 20여분간 전개됐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한 노동자가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고 있다. [참세상]

이날 경찰의 진압은 입체적이었다. 오후 7시 종로거리를 길게 늘어선 시위대는 종각사거리 안국동 방향에서 진입한 경찰에 의해 둘로 나뉘었다.

선두에 있던 노동자들은 다시 광교사거리 방향으로 후퇴해 투석전을 벌였으며, 시위대는 종각사거리에서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외치며 연좌시위를 진행했다. 경찰이 비무장 시위대를 이곳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폭력이 자행돼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경찰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머리띠 두른 XX들 다 죽여버려. 지휘자 같은 놈들 다 죽여. 알겠어?"(한 간부)
"예, 알겠습니다."(대원들 함께)

이곳 노동자들은 경찰의 진압에 서서히 밀리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이 시각(오후 7시경) 노동자들과 경찰간의 광교사거리 공방전이 계속됐다. 노동자들이 종각으로 진출하려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만류했다. "옆에 경찰이 숨어있습니다." 노동자들이 경찰의 의해 또다시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을 간신히 면한 것이다.

종각에 집결한 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해산되면서, 이곳 또한 서서히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와~~"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경찰 앞에 시위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으로 이날 전쟁을 방불케 한 경찰의 작전은 끝났다.

일부 노동자들은 연행자를 태운 경찰차량을 막고 풀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연행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경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실의 법은 공평하지 못하다.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법을 위반했다.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교통체증을 일으켰으며,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그리고 이는 오히려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을 정당화했다.

법적용은 철저히 해야 한다. 연행자들도 '법대로' 처리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법은 공평하지 못하다. 같은 일을 해도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이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사용자들은 노동자의 파업으로 손해가 막심하다고 외친다. 반면 노동자들은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손배가압류라는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명문화에 그친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위해 구속·수배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됐다는 사용자가 있다는 얘기는 듣기 힘들다. 이에 반발해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은 항상 정당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정부는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정부가 사용자들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이던가.

사측의 극단적인 노동탄압과 정부의 무대책, 공권력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최근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과 분신으로 민중을 분노케 하고,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으로 그 분노를 표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민중을 거리로 내몬 것은 선거철에 한표한표를 구걸하던 정치권의 위선이다. 또한 이들에게 속은 민중의 순박함에 있는 지도 모른다.

이날 오후 7시 반, 거리에 흩어진 노동자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마무리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승원 공공연맹 위원장은 "오늘의 투쟁으로 노동자 투쟁의 서막을 열었다"고 선언했다.

김형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재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긴말 필요 없습니다. 갑시다. 노동자·진보정당·시민사회단체·학생 모두 12일 총파업 투쟁으로..."

멀지않아 한 사람의 노동자가 될 전·의경들과 노동자들간의 이날 공방전은 안타까운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사회는 지금 80년대로 가고있다.


△이날 경찰의 진압작전은 입체적이었다. [참세상]


△"총파업을 사수하자", 명동성당 마무리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노동자들.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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