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위원장)
7월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나서 지난 8월말에는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설립!
이제 두달여가 지났다. 드디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는 기쁨과 함께 그동안 많은 어려움과 고민도 중첩되어 지나온 시간들일 것이다.
현대중공업 전하문 근방의 골목으로 들어서 오르막길을 가다보니 노동조합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어디에선가 얻어왔음직한 집기들이 휑하지 않을 만큼 차지하고 있었다.
사무실을 들러보니 한켠에 놓여 있는 모금함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후원을 하고 싶어도 은행에 갈 시간조차 없는 상황이라 이렇게 모금함을 직접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보름이 멀다 하고 죽어나가는 하청
언제부터인지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은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 6시 50분부터 7시 15분 사이에 대부분 출근하고 7시 30분이면 발길이 끊긴다. 물량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이미 5천여명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임금마저 내려간다. 일당이 떨어지고 시급은 동결되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물량은 떨어졌다는데 일은 더 고되고 힘들다. 일당제와 시급제로 고용된 하청노동자들에게 금요일까지 일을 몰아치기로 시키고 토·일요일은 일이 없다 한다.
검사시간이 당겨져 이를 맞추려면 휴게시간 뺏기고 점심시간까지 어쩔 수 없이 반납해야 한다. 오전 7시 30분이면 출입문에 인적이 없을 정도로 조기 출근이 일상화된 데는 이런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기출근에 휴게시간·점심시간 반납하고 일해도 검사시간을 맞추기는 빠듯하다. 검사시간을 못 맞추면 작업상 임금상의 불이익으로 바로 돌아오니 아파도 얘기조차 못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위험하고 유해한 사업장임에도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 없다. 검사시간을 맞추기 위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전쟁 치르듯 쫒기며 목숨을 내놓고 일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지난 8월부터 이곳에서는 5명의 사내하청노동자가 죽어나갔다. 보름이 멀다하고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곳, 이곳이 바로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전쟁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파서 조퇴를 신청하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일순위가 될까 그저 아픈 몸 더 축내며 견딜 수밖에 없는 곳.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재해 관련법을 기본적으로 10개 이상 어기고 있는 것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일터의 모습이자 실상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와 바램을 들어보면 그 실상이 더 또렷이 드러난다.
“주1회 유급휴일을 달라! 주차·월차·연차휴가를 달라!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지급하라! 공민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라! 다치면 산재처리를 하라!”
새 천년을 훌쩍 뛰어넘은 21세기에 이들은 70년대 노동자들과 같은 이런 바램을 가지고 있다.
“대중투쟁 없이 조직화는 어렵다” 최악의 상황에서 노조설립 강행
그래서 이곳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한편에서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현장조직력도 대단히 열악한 상황이기에 하청노조 설립을 좀 뒤로 늦추었으면 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실 주체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동안 업체 내 조직화 사업을 꾸준히 진행했지만, 3~4개월을 넘지 못하고 이직하거나 단절되는 상황이 2년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월 1회 ‘사내하청 노동자’를 발행하는 것 외에 해야 할 싸움조차 못했습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업체 내 동료가 다쳐도 공상처리조차 못했습니다.”
결국 대중투쟁 없이 조직화는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는 사내하청에 덧붙여 이주노동자도 계속 투입되었다.
“(노동조합) 비리사건과 해고자 청산과정을 보면서 ‘더이상 직영 노동운동의 복원을 기다리기보다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력 복원은 하청노동자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직영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2년여 진행해왔던 노력은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있을 수 있고,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더 이상 노동조합 설립을 미룰 수 없었다고 조 위원장은 강조한다.
노조에 거는 기대는 분명히 느껴지는데
주체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이야기하듯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위장폐업은 설립초기에 그야말로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현재 공개된 조합원으로는 4명이 살아남아 있다. 아직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지난 25일은 ‘노동조합 집단 가입의 날’이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많은 조합원들이 가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탄압과 신분상의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사무실 방문, 우편, 인터넷 가입 등 조금씩 꾸준히 조합원이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사내하청노동조합은 매주 월·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유인물을 내고 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출근투쟁과 퇴근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대여섯 차례 중식선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현장활동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조건이고, 하청노동자들의 신분상의 불안함으로 이런 기대가 바로 조합원 가입으로 연결되진 못하지만···.
중식선동시 보내준 박수소리를 떠올리며, 노동조합에 거는 기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이제 머뭇거리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을 이끌어내는 것은 노동조합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직영들도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 임해야”
얼마전 직영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가 있었다. 결과는 민주파의 패배였다. 선거과정 중에 선관위에서는 선거유인물에 ‘비정규직 철폐’라는 내용도 담지 못하게 했다. 사내하청노동조합에도 집회·유인물·출퇴근투쟁도 중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며칠이 멀다하고 하청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출퇴근 투쟁을 중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선관위에서 출퇴근 투쟁 사진을 찍고 녹취까지 해 가는 어이없는 일들이 선거기간 중에 계속되었다.
이렇게 들어선 직영 노동조합 집행부는 연대의 대상일까, 아니면 폭로와 투쟁의 대상일까?
어쨌든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임원들의 현장활동과 내년 임단협사항, 산재관련 사항 등 요구할 것은 분명히 요구할 생각이다. 기대는 하지 않지만···.
“이제 싸우지 않으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긴 혼란과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직영 동지들도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한 세력이 연합해 투쟁으로 새로운 힘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깨지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에는 150여개의 사내하청 업체가 있다.
지금 이들 업체의 대다수가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시 이들에게서 더 이상 침묵하며 살지 않겠다는 꿈틀거림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그 자체가 150개 업체에서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뇌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내하청노동조합이 교섭할 권리만 있고 힘은 없는 상태지만, 노동조합이 체계적으로 준비해 간다면 집단 조합원 가입의 물꼬도 터지고 전 공장적 투쟁으로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고 벌어졌던 탄압은 예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변화된 것이 있다면 우리의 무능력을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간의 과정은 무능력을 노정했지만 또한 경험을 쌓고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탄압 속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판판이 깨졌지만, 그래도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거는 기대는 큽니다. 이런 하청노동자들의 요구에 다가가는 것은 바로 노동조합의 몫입니다.”
직영과 하청의 동지적 연대를 향해
지역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직영과 하청은 아직 동지적 관계로 서고 있지 못합니다. 직영과 하청 구분 없이 사측에 맞서는 투쟁을 함께 해 나갑시다.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직영 노동자들이 함께 결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합시다. 직영이 도움을 주지 않으면 하청활동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영이 열어준 길 내에서만 투쟁하려는 것은 아닌가 각인하고, 무엇보다 하청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