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의 질긴 생명력,
공안당국 '밥그릇 챙기기'에 있다(?)

[취재수첩] 국보법 제정 55주년 즈음, 다섯 가지 현장

[현장 하나] 보안수사대,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 연행

지난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 55주년이 되는 날이다. 공안당국은 마치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연행했다.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이날 오후 4시경 민 사무처장을 서울 종로구 옥인동 대공분실로 연행했으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10여명의 인원을 동원, 그의 집을 수색하고 컴퓨터와 서적, 서류 등 50여점을 압수했다.

이날 경찰 관계자는 2000년 이후부터 지난 2월까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일한 민 사무처장에 대해 당시 "북측과의 회합·통신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공안당국의 민 사무처장 체포경위는 이렇다. 2003년 6.15민족통일대축전의 분산개최에 따라 북측행사에 대한 축사 전달 과정에서 절차가 미비했다는 이유로, 통일부는 7월 1일자로 민 사무처장을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민 사무처장이 통일연대 활동 전에 몸담았던 범민련 활동과 관련, 고무찬양·회합통신·금품수수 등을 적용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에 대해 통일연대는 최근 송두율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 11기 한총련 대의원들에 대한 이적규정 판결과 계속된 연행 등, 공안당국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법·제도를 새로이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현장 둘] 국민행동, 노무현 정부 9개월 '국보법 피해 보고서' 발표

앞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아래 국민행동)은 같은날 오전 11시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국보법 제정일에 맞춰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정부 출범 9개월간의 '국보법 피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조사·작성한 이 보고서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올 2월 25일부터 11월 25일까지 9개월 동안 국보법 위반 혐의로 58명이 구속됐다고 집계했다. 이들 중 45명(77.5%)이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법 조항별 구속현상을 살펴보면, 국보법 7조(찬양, 고무 등) 위반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54명으로 전체 93.1%를 차지했다. 특히 7조3항(이적단체구성·가입) 위반혐의로 48명이 구속됐으며, 한총련 대의원 45명을 비롯해 자주대오사건 1명·민족해방군사건 1명·범청학련사건 1명으로 파악됐다.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 적용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7조5항(이적표현물 제작·소지·배포) 적용으로 구속된 사람도 6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건국대학생투쟁위원회(건학투위)에서 활동했던 김종곤, 김용찬 씨는 이 조항이 적용됐다. 이들이 인터넷상에 개설한 동아리 카페에 올려놓은 수련회 자료집 등 각종 문서들이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하는 이적표현물이라는 것. 그러나 이 자료들은 민주노총 등의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에 불과했다.

또한 지난 8일 의정부경찰서 앞에서 스트라이커부대 훈련장 진입으로 구속된 학생들의 호송차량을 막아 구속된 학생들 가운데 3명은 이적표현물 취득 혐의가 적용됐다. 올 한총련 대의원대회 자료집을 읽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보고서는 "이적표현물 조항은 여전히 체포의 사유와 무관함에도, 인신구속을 남용케 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송두율 교수와 이범재 씨(구국전위사건)는 3조(반국가단체 가입) 위반혐의에 해당하며, 북한 대학과 통신을 했다는 이유로 문옥주 동아대 총학생회장에게 8조(회합통신)가 적용됐다. 강태윤 씨(민주노동당 고문)는 재일 통일운동가 박모 씨에게 한겨레신문기사, 민주노동당 관련 자료 등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국보법 4조(국가기밀 누설)가 적용됐다.

수사기관 무리한 인신구속, 검찰 냉전논리 근거한 기소, 법원 전근대적인 판결

이 보고서는 국보법 적용 특징으로 △구속된 58명 중 93.1%에 해당하는 54명 7조 위반, △한총련 대의원 구속자가 전체의 77.5%(45명) 차지, △이미 지난 사건에 대한 구속 관행, △법원의 100% 유죄판결 등을 들었다.

보고서는 국보법 7조 위반 사건의 경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국가의 존립안전을 해할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성'에 의한 엄격한 법 적용이 아닌,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되풀이되고 있"으며, 지난 사건에 대한 구속 관행은 "수사기관의 실적올리기"에 지나지 않다고 지적했다.

건학투위사건의 경우 지난해 노동절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현재 조직 자체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또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까지 했던 이범재 씨는 지난 1994년 발생한 구국전위 사건으로 기소중지 상태였고, 1995년부터 해외여행 등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했으며, 그동안 공안당국의 제재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또 "지난 9개월 동안 구속자 가운데 1심 재판이 끝난 7명 중 34명(91.9%)이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높은 집행유예율에 비해 단 한건의 무죄판결도 없었다."며 "국보법 사건에 관해 법원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판결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총련=친북적=이적단체'라는 법원의 전근대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덧붙였다.

한총련의 경우 정부당국은 7월 25일 '한총련 수배자 79명에 대한 불구속처리 방침'을 발표하는 등 한총련 수배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총련 대의원들에 대한 구속은 잇따라 진행되고 11기 한총련에 대해 이적단체로 규정(11월 28일 대구지법), 정재욱 한총련 의장 등 간부 44명에 대해 수배조치를 내려, 앞으로 국보법 위반 구속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봤다.

[현장 셋] 송두율 교수 첫 공판, 공안검찰의 균형감각 상실

지난 2일 송두율 교수의 첫 공판이 열렸다. 37년만에 귀국한 송 교수에 대한 이날 검찰의 신문은 그의 활동 내역을 '친북행위'로 규정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대 쟁점은 송 교수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돼 활동했는지 여부다. 이 부분은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 변호인단과의 법정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날 재판에서 '남·북·해외 학자 통일학술회의'와 관련한 검찰의 신문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통일학술회의에 대해 공안당국은 송 교수가 지난 95년 7월 이후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등의 지시로 6차례에 걸쳐 베이징과 평양에서 통일학술회의를 주도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 10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길승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95년 제1회 통일학술회의는 내가 주관했다"며 "94년 한국정치학회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정치학회에 갔다가 송 교수가 북한 쪽과 연락이 잘 된다고 해서 내가 송 교수에게 제한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길 교수는 "송 교수가 북한 학자들을 주선해 8-9명이 베이징에 왔고, 이들을 비롯해 남한과 외국에서 40여명의 학자들이 모여 통일문제 등을 놓고 학문적인 논의를 했다"면서 "북한 노동당이나 김용순 비서 등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학문교류 차원에서 열린 행사였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보도를 종합해 보면 당시 통일학술회의는 남한 학자들이 제안하고, <한국>·<중앙> 등 언론사와 에스케이·삼성·엘지·대우 등 남한 기업에서 지원을 받아 이뤄졌으며, 송 교수는 남북한 학자들 사이에 회의 주제를 두고 이견이 있을 때 조정자 구실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통일학술회의에 대해 북한의 체제와 주체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장으로 몰아갔다. 북한 학자의 발언 내용만을 모아 학술회의의 이적성을 강조하려는 검찰의 신문이 한 시간 넘게 계속되자, 변호인단은 "남한측 15명, 북한측 6명이 참여한 회의에서 오직 북한 인사의 특정한 발언만 모아서 공소사실화 하고 있다"며 검찰의 균형감각을 요구했다.(인권하루소식 12월 3일자 인용) 이는 검찰의 의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현장 넷]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폐기된 국정원 '대공정책' 활용방안 모색?

지난달 2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고 불리는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변호사)은 전날(19일) 있었던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과의 면담내용을 전했다.

장 사무처장은 테러방지법 제정과 관련해 민 수석이 면담자리에서 "국정원의 대공정책이 폐기된 상태에서 업무가 사라졌다"며 "그간 국정원의 경험을 살려줘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 사무처장에 따르면 문 수석은 "과거 국정원과 오버랩하지 말라. 시대가 바뀌었고 국정원장도 민주인사이다."라며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인한) 위험성은 없고, (국정원의) 조직개편을 통해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 사무처장은 "일자리 잃은 것을 걱정해 (정부당국이) 밥그릇 챙겨주는 수준"이라며, "청와대가 안일한 의식을 갖고 있으며, (공안당국)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생각하면서도 인권의식은 전무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정부가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옳다는 식의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며 "형편없는" 인권의식을 비판했다.

2004년을 국보법폐지 원년으로

국민연대는 1일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통해 "2003년 한해, 거의 사문화된 국보법이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큰 사회적 폐악을 저지를 수 있는지 똑똑히 확인했다."며 "분단과 함께 탄생했고 분단을 먹이로 해 존재해 온 국보법을 그대로 둔 채, 결코 냉전시대의 반인권 반통일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대는 국보법과 국민에 의한 인권·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시시때때로 광적인 매카시즘을 부활시키고, 생각과 양심을 왜곡시켜 국민들을 수구냉전의 기류로 몰고 가는 보수세력의 무기에 불과하다."

국민연대는 오는 2004년을 국보법폐지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내년 4월 총선에서 국보법폐지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심판하고, 국보법 없는 17대 국회를 만들겠다는 것. 이에 국민연대는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이번 총선에서 국보법 존속에 찬성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심판'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1999년 국보법 위반 구속자는 288명, 2000년 128명, 2001년 118명, 2002년 126명으로, 올해는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국보법이 사문화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노무현 정부의 출범이 이에 영향을 미친 것인가?

분명한 것은 올 한해도 국보법폐지와 한총련 합법화를 요구하는, 끊임없는 울림과 싸움들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반면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법을 근거로 한 공안당국의 맹활약(?)은 여전하다.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와 함께 이를 수구냉전세력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표현한다면 지나친 비아냥거림일까.

국보법은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유물이다. 국민연대에서 밝혔듯이 이는 인권·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에 보장된 사상·표현의 자유가 하위법의 잣대로 재단되지 않는, 사회속에서 자연스럽게 검증되는 2004년(국보법폐지 원년)을 희망한다.

[현장 다섯] "국보법 없는 세상을 향하여 걷자"


△지난달 30일 열린 '2003 국가보안법폐지 걷기대회', 이날 참가자들은 남산 국립극장을 출발해 옛 안기부 터까지 국보법폐지를 염원하며 행진을 벌였다. [참세상 김정우]


△"양심수를 석방하라" [참세상 김정우]


△'근조 국가보안법' [참세상 김정우]


△송두율대책위, "국가보안법 철폐" [참세상 김정우]


[참세상 김정우]


[참세상 김정우]


△이날 열린 행사에서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맨 오른쪽)이 사회를 보고 있다. [참세상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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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 한총련 , 테러방지법 , 민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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