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중문화개방을 둘러싼 두 가지 쟁점



문화교류가 확대되어야 한다면서도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이율배반적으로 들린다. 현실적으로도 일본대중문화는 이미 한국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가수 ‘보아’의 성공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의 일본 진출 등의 조건은 일본대중문화개방이 대세임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 글에서는 문화교류의 확대와 일본대중문화개방 반대(정확하게는 정부의 ‘일본대중문화개방계획’에 대한 반대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라는 주장이 ‘공존’할 수 있고, 또 함께 고민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일본대중문화개방 계획이 위치하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정부의 일본대중문화개방 계획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대중문화 4차 개방계획’이 놓여진 곳

지난 9월 16일 문화관광부는 ‘일본대중문화 4차 개방계획(이하 4차 개방계획)’을 발표했다. 98년부터 2000년까지 3차례 이루어진 일본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이 2001년 7월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중단된 이후, 약 2년여 만에 4차 개방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사실상 전면개방을 의미하는 이번 4차 개방계획의 추진 배경은, WTO 서비스협상과 동북아지역의 경제블럭화 논의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한국이 시장개방의 흐름을 선도하고 주도적인 위치를 점유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는데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으로 스크린쿼터제의 축소 논의, 외국교육기관특별법과 지역특화발전특구법 제정 시도 등도 물류와 금융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구상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발전 전략과 이를 위한 법, 제도의 정비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그림1] 참조).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민중의 이해와는 전적으로 어긋난다는 점이다. 4차 개방계획의 추진배경과 구체적인 개방계획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맥락에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4차 개방계획의 문제점

하지만 이번 4차 개방계획은, 위치한 맥락에서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계획은, 우선 정치·경제논리 중심의 ‘시장개방’ 계획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4차 개방계획의 추진배경으로 밝힌 세 가지 근거, 즉 1) 동북아 경제중심 실현에 문화적 연계의 중요성 지속 확대, 2) 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 등 미래지향적 정책방향 필요, 3) ’03. 6. 7. ‘한·일 공동성명’ 후속조치의 적극적 추진 등은 문화관광부 스스로가 문화시장 개방을 추진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즉 정부가 구상 중인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추진이 결국 자유무역·시장개방 중심의 계획이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경제논리에 종속되는 ‘문화시장개방’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추진배경이 ’03. 6. 7. ‘한·일 공동성명’ 후속조치라는 것은, 문화개방의 문제가 정치·외교적인 제스처나 ‘선물’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교류는 국가 간의 문화정체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경제논리와는 다른 ‘문화논리’로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중심 실현에 문화적 연계”라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문화산업의 경우 공산품의 수출입과는 다른 ‘문화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며, 한·일 문화교류 혹은 동북아 문화교류 계획은 경제논리와 무관하게 수립, 추진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4차 개방계획은 영화, 음반, 게임 분야의 전면 개방과 비디오분야의 개방폭 확대, 그리고 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 분야의 경우 개방폭 확대 원칙 아래 2003년말 까지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상 6개 분야에 대해 전면개방의 의지를 밝힌 것이다([표1] 참조).



문화관광부는 이러한 전면개방의 근거로 기 개방의 영향이 미미할 뿐 아니라, 전면개방 시에도 사회, 경제, 문화적 잠식과 부작용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대중문화시장은 세계 2위(1위-미국)의 규모이며, 이는 한국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분야별로는 대중음악이 5조원(일) 대 4000억원(한), 영화가 2조원(일) 대 3000억원(한), 영화, 비디오, 애니메이션, 음반을 포함한 영상분야의 경우 20조원(일) 대 2조원(한), 게임 20조원(일) 대 3조원(한) 등이다. 유통과 마케팅이 시장점유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현실과 기본적으로 자본운동의 흐름이 적은 쪽에서 많은 쪽으로 흘러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개방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은 넌센스에 가깝다.
그리고 사회·문화적 효과 예측은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수준에 불과하여, 과연 사회·문화적 영향 연구를 수행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실제로 연구보고서 전문을 살펴보아도 중·장기적인 영향 분석과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 확보를 위한 정책방향 모색 등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연구는 배제한 채, 단기적인 시장점유율 예측과 추가개방의 필요성만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은 한국 문화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개방된 부문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단기적으로 전면개방의 영향력은 미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개방의 효과는 중장기적인 영향검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 간의 문화산업 시장의 개방은 시장의 규모, 자본의 규모의 차이에 의해 장기적으로 볼 때 일방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원칙에 입각한 ‘문화시장개방’은 현재 한국, 일본 간의 문화자본, 문화시장의 차이에서 볼 때 결코 ‘공정한 경쟁’, ‘평등한 개방’이 될 수는 없다.

결론, 그리고 대안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대한 준비와 대안은 중장기적인 영향 연구와 한국 문화의 정체성, 다양성 증진을 기반으로 한 문화교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문화교류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할 때, 이를 위한 담론적, 정책적 준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문화는 교류의 대상이지 자유무역의 대상이 아니라는 문화교류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문화협약>과 같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WTO 서비스협상, 다자간·양자간 무역협정 체결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는 무역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문화협약>의 체결을 준비하고 있다. 200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협약>이 체결되면, 문화가 무역의 대상이 아니며 각 국은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문화정책을 시행할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EU 또한 문화와 교육은 WTO 협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한국 정부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국내 문화인프라 구축과 유통구조 개선, 각종 제도 개선을 통해 문화교류를 위한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문화의집 등 공공문화기반시설의 부족은 문화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것과 더불어 대중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화 향유를 사적영역, 소비의 영역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적·인적 문화인프라의 확충으로 문화적 토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직도 전국적인 음반판매량이 집계되지 못할 정도로 취약한 유통구조의 문제나, 표현의 자유 확대 등 제도 개선의 문제도 시급히 정비되어야 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의 경우 한·일 간의 문화교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데,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차이는 일본에서 표현의 자유가 훨씬 잘 보장되어 있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일본식의 성인문화가 만연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겠지만, 이는 문화적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인식능력을 기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 확대와 문화교육의 실현이라는 과제는 오히려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 한국에서의 문화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셋째, 독립문화, 소수문화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해 필수적인 정책이다. 문화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문화교류는 다양한 문화 간의 교류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국 문화의 다양성 증진은 정책적 차원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독립문화와 소수문화의 창의성과 실험성은 다양성을 지탱하는 기본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소위 주류문화 또한 독립문화와 소수문화의 기반 속에서 힘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문화정책은 독립문화와 소수문화 지원에 너무 인색하다. 독립문화, 소수문화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물론, 인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제도 및 시설에 대한 지원, 그리고 독립문화, 소수문화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문화교류는 시장개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문화의 상품화를 가속화시키는 WTO 서비스협상이나 FTA 체결에 맞춰 이루어지는 시장개방을 문화교류라 부를 수 없다. 따라서 이번 4차 개방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시장개방이 아닌 진정한 문화교류의 실현을 위해 한국의 문화현실을 돌아보고, 문화다양성과 정체성을 증진시키는 문화정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 ptrev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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