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붉은 돼지> - 포르코 로소, 그는 '로만띡.아나키.휴머니스트' 였다!



# "서른이 넘은 자의 말을 믿지 말라"?! "인간은 중년이 지나면 돼지로 변신한다"?!

몇 주 전, 빡세게 운동(?)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운동권' 내부에 대한 이러저러한 말들이 오가다 누군가 "서른이 넘은 자의 말을 믿지 말라"란 말을 인용해왔다. 그는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으나 유럽의 좌파 운동권 내부에서 그런 말이 통용되고 있는 것 같더라며 설명을 덧붙였고, 이 말이 끝나자마자 그 발칙한(?) 말에 대해 다들 몇 마디씩 코멘트를 달기 시작했다.

"어후! 너무 냉소적인 표현인데~" 부터 시작해서 "모든 30대가 다 그런 건 아니지", "... 그래도, 하지만, 실제론 빡세게 운동하는 사람들 중에서 30대 이상이 얼마나 많은데, 아니, 그들이 중심축의 역할을 하고 있지..." 등의 반론과 실지 서른이 넘은 사람들 입장에서의 변(辯) 등, 일단 그 표현이 꽤나 과격하고 직선적이었던 탓에 반론의 코멘트가 많은 분위기였다.


음, 그.런.데... 서른이 넘으려면 아직은 여유있는 나는, 그 말로부터 50% 가량은 자유롭고 너그러울 수 있던 까닭일까? 나는 그 말이, (여즉 서른이 되지 않은 자가) 모든 30대 이상을 질타하고 그들에게 냉소를 퍼부을 목적으로 한 말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외려, 서른을 막 넘긴, 혹은 이미 중년이 된 누군가가, 파직파직 + 혈기왕성 했던 20대 때와는 아무래도 (혹은 분명) 다를, 무뎌지고 녹슨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자!, 아니 한번 성찰해보자! 하는 목적으로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이미 서른이 넘은 자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말은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추측해보았다.


(에곰, 배경설명이 꽤 늘어져 다소 당황스러우나... -ㅅ-a) 음, 이런 맥락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음 발언들을 이해했던 탓일까?

"인간은 중년이 지나면 돼지로 변신한다"는 그의 발언이, 위의 "서른이 넘은 자..." 발언처럼, 100% 냉소적이거나 무기력하게 들리지 만은 않았다.

또한, '돼지'가 주인공인 영화 <붉은 돼지>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이 '중년에 접어든 자기 자신을 위한, 자전적 성격의 영화'이노라~ 밝혔단 설명을 듣곤, 나는 이 '붉은 돼지'가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늘 비교 + KO패 당하는, 그런 우거적우거적 '배부른 돼지'는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외려,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적 돼지일 거란 예감~

해서, 나는 예매도 하기 전에 붉은 돼지 '포르코 로소', 그의 정체가 퍽 궁금해졌다. 두둥~



# '하늘'을 사랑하는, 로만띡.아나키.휴머니스트 '돼지'

포르코 로소 (porco rosso), 그는 일단은~, 하늘의 해적 즉, '공적'을 잡아다 상금을 타먹는 '세속적 돈쟁이'인 듯도 하고, 음란물과 예쁜 여자를 탐하는 '느끼한 중년 돼지'인 듯도 했으나, 영화가 전개될수록 그런 면면만이 그의 모두가 아님이 드러난다. 아니, 그는 실지 그리 탐욕스런 돼지가 아니다!


여기서, 포르코 로소의 정체 또는 사연을 훑자면,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최고 공군이었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 돼지로 변신하게 된다. 전쟁 영웅이었던 그가 돼지로 변신하게 된 동기에 대해, 영화 속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 '하늘 무덤 씬'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적국의 공군들과 자신의 동료들이 탄 수 .천. 대의 전투비행기가 '하늘 무덤'을 이루고 있던 그 장면 - 실사로 옮기면 눈물나게 스펙터클하지 않을까 싶었던 장면 - 을 잠시 체험하고, 전장 중에 홀로 살아남은 포르코는, 더 이상 '국가의 스폰서'로 활용되기도 + 인간 사회에 머물고 싶지도 않았을거다...


그래서 그는, '나라도 법도 없는' 돼지로의 변신을 스스로 선택했고, "애국은 인간들이나 해라!",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낫지"란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니까, 현재 포르코의 모습은, 전쟁과 나라, 그리고 인간에 대한 회의와 거부감, 아픈 기억과 죄책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놓고 (항의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을 거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하늘'이란 공간은, 포르코 로소를 이해하고 영화의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 감독의 입장에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긴 설명 없이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 '장치'이며 그 '공간' 자체가 곧 '메시지' 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국경도, 이념의 분쟁도, 전쟁의 명분도, 그 어떠한 경계도 없는 그 넓은 '하늘'을 거침없이 가로지르고, 휘젓고, 오래된 친구 (madame 지나)를 위해 낭만스런 곡예도 선보이고, 사랑의(?) 라이벌 (커티스)과 시합도 펼치는 포르코.

또한 그는 '공적'을 잡거나 전투 시합을 할 적에도 절대 '살생'은 하지 않는데, 이런 면면을 훑자면, 그는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스폰서'로 열심히 애국질하고 있는 '인간'들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다른 인간들을 사랑할 줄 아는 돼지(?)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그 따땃한 심장을 숨기지 못해, 간혹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하는데, 영화의 결말 부분에선 그가 스스로 마법을 풀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 모든 중년이 '붉은 돼지'와 같아진다면...

사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거니와, 그의 작품들을 두루 섭렵하지 못한 까닭에 -ㅅ-a,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 "중년이 된 감독 자신을 위한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이 된 미야자키 감독이 영화 속의 포르코 로소와 여러 면에서 꽤 닮았다면, 나는 아마도 중년이 된 미야자키 감독에게 금새 반할 것 같다. 영화 속의 피오 양이 포르코 아저씨가 좋아요~ 이러는 것처럼...

또한 미야자키 감독의 발언대로, 중년이 지나면 슬그머니 '돼지'로 변신해 있는 게 인간이라면, 이왕이면 '배떼지만 부른 돼지'보다 '붉은 돼지' 포르코처럼 늙어 가면 안될까나? 하는 바람이 뭉클뭉클 생기기도 한다. 지난날의 자신의 잘못을 늘 경계하고, 겉모습은 아닌 듯 하나, 가슴만은 여즉 따땃한 그런 인간으로 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포르코 로소의 사연을 대변해주는 (어쩜, 이건 중년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엔딩곡을 소개하며 <붉은 돼지>를 향한 애정공세를 마칠까한다.


** Once in a while, Talk of the old days **

때로는 지난날의 이야기를 해볼까
항상 모이던 옛 친구의 그 가게
마로니에의 가로수가 창 밖으로 보였었지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보이지 않는 내일을 무턱대고 찾으면서
누구나가 희망을 핑계 댔지

흔들리던 시대의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온몸으로 시간을 느꼈었지 그랬었어

길가에서 잔 적도 있었지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모두로서는
돈은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왔지
가난이 내일을 가져다 준다고
조그만 하숙집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아침까지 소란스럽게 지샜었지

폭풍처럼 매일이 불타고 있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렸었어 그랬었지

한 장 남은 사진을 보라구
수염투성이의 남자는 너야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어
친구도 몇 명 있지만
그 날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고
그건 아무도 말하지 않아

지금도 똑같이 다 꾸지 못한 꿈을 그리며
계속 달리고 있겠지 어딘가에서...



박보경 / 문화사회 편집위원 psyche12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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