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채식주의자의 고백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한 일 중 가장 의미있었던 일은 “채식주의자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2003년 화창한 어느 봄 날,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생태주의자가 되기를 망설이는 좌파주의자의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했던 것을 반성하고, 그 출발점으로 채식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 소박하지만 나름대로의 용기(불편과 불이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를 필요로 했던 자기 실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한 자기 반성 및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확장되었고, 이는 내게 있어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채식을 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까지의 내 태도가 “채식주의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가?”라는 부끄러움과 자기 반성이었다. 쪽팔릴 정도의...
지극히 반생태적인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채식이 가지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육식(에 내면화된 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미련을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하려 노력했던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그 뿐이랴. “채식? 풀도 생명 아니야?” “채식하고 자전거 탄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 과거 얄팍한 이성과 논리의 잣대를 앞세워, 채식주의자 앞에서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오만을 떨어대던 것도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

한편 개인적으로 채식을 시작하면서 경험한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주위의 일상적이고 작은 실천들을 바라보는, 아니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활동가로서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자기 실천’의 원칙을 몸으로 실행하는 것(복잡한 머리와 현란한 입이 아니라)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과정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을 이야기하는 것이 개인의 소비지향성, 사유화, 가족주의 등에 대한 자기 반성과 실천으로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에 익숙해져 있는가를, 내가 그 동안 타인의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들을 얼마나 빈번하게 무시해왔는가를,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주의의 폭력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실천 앞에서 뻔뻔스럽게 버팅기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활동가들의 채식은 지금의 자본주의 체계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내는 실천이다. 하지만 그 작은 균열의 끝은 자본주의에게 매우 커다란 상처를 남길 것이 분명하다. 생태주의에 대한 작은 실천으로서의 채식은 패스트 푸드에 대한 배신으로, 과다 소비에 대한 반성으로, 일상적인 생명 파괴에 대한 평화적 감수성으로,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친생태적 욕망으로, 일상적인 자기 실천이 가져다주는 전혀 다른 즐거움으로, 그 뚜렷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2004년에는 새로운 자기 실천을 위해 좀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모든 작지만 당연한 자기 실천이 자본주의가 너무나 싫어하는 전혀 다른 가치를 끊임없이 확장해 온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며.[문화사회]

이원재 /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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