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진흥기금 폐지는 '시민의 권리'를 위한 결정이다



"부가세 및 문예진흥기금 포함". 주말 요금을 적용하여 8,000원을 주고 산 극장표에 적혀있는 문구다. 2004년 1월 1일부로 기존의 문예진흥기금 모금 방식이 폐지되고, 극장을 비롯하여 각종 공연장의 입장료에 문예진흥기금이 포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는 바뀐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아니 극장 어디를 찾아보아도 문예진흥기금 폐지에 따른 요금체계의 변화는 물론 폐지 사실을 공지하는 내용조차 발견하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예진흥법의 위헌 판결과 문예진흥기금 모금 폐지로 발생한 입장료의 차익을 극장과 공연장들이 소리 소문 없이 "꿀꺽"(!)했기 때문이다.

"왜 문예진흥기금 폐지에 따른 차익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극장주(물론 문예진흥기금을 포함했던 모든 문화예술 관련 사업이 포함되겠지만 자꾸 극장의 예를 드는 것은 영화관람이 가장 일상적이며 요금체계 역시 가장 평균화되어 있기 때문이다)들은 태연하게 화답한다. "본래 극장 요금은 인상되었어야 했다!"
이는 두 가지의 명백한 사실을 애써 감추려는 억지이다. 먼저 극장 요금은 지속적으로 인상되어 왔다. 주말 요금 등의 도입을 통해 애써 효율적인 척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요금의 인상이었다.
다음으로 문예진흥기금의 폐지 결정은 정작 극장주의 수익 구조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문예진흥기금은 관객이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사회적 공공성을 위해 지불해왔던 추가 비용이며, 따라서 극장주는 극장의 수익구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과세 폐지분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취할 책임이 있다. 문예진흥기금의 폐지분에 대한 극장 또는 자본의 권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현행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법의 부정의'를 이용한 자본의 장난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하게 자행되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문예진흥기금의 폐지 이유는 "문화예술 진흥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의 소멸이 아니라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침해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준조세"의 형태가 조세 정의의 측면에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른 방식(좀더 민주적인)으로 기금을 모금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극장의 수익을 위해 문예진흥기금 폐지에 따른 차액을 극장주가 전유한다는 것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폐지된 조세 부분은 자본이 챙기고 시민들은 다시 다른 형태의 조세로 문화예술 진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라는 억지에 다름 아니다. 국가에 의한 부적절한 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에 의한 소비 부담만이 가중되어 시민의 권리가 오히려 이중적으로 침해되기 때문이다.

극장주를 비롯한 자본은 법률을 악용해가며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사실 문예진흥기금 폐지에 따른 사회 변화(문화정책)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문화예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 온(그리고 앞으로도 창출할) 자본은 오히려 문예진흥기금과 무관하게 문화예술 진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더욱 더 강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시민의 조세 부담과 무관하게 모든 문화자본은 그 이윤의 창출과 비례하게 해당 문화의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경제적 비용을 당연하게 지출해야 한다.
극장은 극장의 존재 기반인 영화를 위해, 공연장은 공연문화를 위해 스스로의 이윤을 문화적 공공성과 다양성의 발전을 위해 재환원하고 시민의 문화권리가 확장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본은 문예진흥기금 폐지분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 차액만큼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고, 좀 더 고민한다면 "차액분+알파"를 문화적 공공성을 위해 기탁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극장 요금의 차액분의 경우 영화문화를 위해, 공연장의 경우 공연문화를 위해...

이는 자본과 기업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추진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일들이다. 극장의 경우 영화진흥기금으로의 기탁을 통해 독립영화창작자, 대안배급, 예술영화전용관 등에 대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한다든지, 기타 공연장이나 전시장의 경우 독립문화나 비주류문화예술을 위한 재단이나 기금을 조성하는 등 스스로의 양심과 의지만 있다면 정책적 대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법률적으로 강제력이 없다며 위헌 결정의 취지를 애써 무시할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욱이 문화예술의 진흥과 시민의 조세권을 위한 결정이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는 현실을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사회적 공공성을 확대하고, 이에 대한 재원 조성을 다양화하여(특히 자본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시민의 문화권리와 삶의 질을 발전시키는 것이 문화정책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문화사회]

빨간도둑 / 문화운동가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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