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부터 사회단체와 유족들은 ‘6.25 희생자 명예회복법‘을 통해 6.25전쟁 당시 미군과 국군에 의해 희생된 피학살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였고, 유가족들의 힘겨운 노력 끝에 작년 11월 국회에서는 과거사 특위를 꾸려 소관 위원회와 법사위를 통과 했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 상정 된 이후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되어 재상정이 되지 않고 있다.
특별법 제정, 보수단체들의 반발
한나라당은 법사위 활동과정에서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한나라당의 태도가 돌변해 법안통과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졌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공식적인 언급을 회피하며 ‘당론은 정해진게 없다. 반대한 적도 없다’라며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를 한나라당과는 관계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러나 국회 과거사 특위에서 다뤘던 동학농민혁명법과 일제강제징용 관련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마쳤고, 민간인학살과 똑같은 유형의 '노근리법'이 이미 통과됐고 '거창법(거창양민학살)'이 본회의에 상정돼 통과를 앞두고 있어 보수단체에 의해 ‘6.25 희생자 명예회복법’ 통과 반대압력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은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동안 진상규명과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였던 익산역 미군폭격 유족회 ․ 전주형무소 유족회는 전북평화와 인권연대, 전북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민주노동당 전북도지부와 함께 성명을 내고 과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이번 ‘6.25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 통과를 위한 노력을 전북지역 정치권에게 당부함과 더불어 이번달 19일까지 본회의 일정 속에서 이번 법안을 제외한다면 이번 17대 총선에서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한나라당 낙선 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18일 전북경찰청 기자회견실에서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참소리]
양민학살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언제까지 미룰것인가?
54년이 넘는 세월동안 유가족들에게 학살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왜 죽음을 당했어야 했는지 영문도 모른체 조용히 숨죽여온 유가족들은 이제라도 자기 혈육들이 왜 누구의 배후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지 알려져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수습했던 어린 아들은 이제 얼굴에 주름가득한 70대의 할아버지가 되어버릴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유가족들의 아픔을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른 탓에 이제 역사를 증언할 유가족이 얼마 생존해 있지 않다.또한 얼마전만 해도 그들은 6.25당시 미군과 한국군에 의한 학살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이들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떼어주고 정부는 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익산역 미군 폭격 사건 1950년 7월11일부터 14일까지 익산역을 3차례에 걸쳐 미군이 폭격기와 전투기를 이용하여 무차별 공격으로 전시 비상대하고 있던 철도공무원 59명과 징집소집에 의해 대기하고 있었던 젊은청년들, 인근에 우시장이 열려 모여 있던 민간인들, 국회의원 시국강연회에 동원된 중학교 학생들등 450여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다. 미군에서는 조종사에 의한 오폭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전주교도소 처형 사건 6.25전쟁 발발 10일후. 전주형무소 수형자 1800여명이 1950년 7월8∼19일까지 전주 황방산, 건지산, 솔개재 등으로 끌려가 한국군에 의해 집단처형되었다. 당시 전주교도소에는 4.3제주항쟁에서 붙잡힌 사람들을 비롯해 대부분 정치범들이 수감 중이었다. 작년 4월 유족들에 의해 황방산 일대에서 피학살자들의 유골이 대량 발견되었다. |
참소리 김한빈 기자 hanbin-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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