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송환' 개봉 전 마지막 온라인 시사회

이번 온라인 상영은 극장개봉전 마지막 온라인 상영입니다. 지난 온라인 상영은 2시간 30분짜리 파일을 통채로 올렸으나 이번 상영은 총 5개의 파일로 나누었습니다.

'송환' 온라인 상영[1]/28분34초

'송환' 온라인 상영[2]/23분50초

'송환' 온라인 상영[3]/37분57초

'송환' 온라인 상영[4]/28분40초

'송환' 온라인 상영[5]/29분48초




Synopsis

1992년 봄 감독인 '나'는 북의 정치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어 30년동안 감옥에 살면서도 공산주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비전향으로 출소한 2명의 장기수들을 알게 된다. 당시 기거 할 곳이 없던 이들이 이웃에 살게 되면서 난 조창손씨와 특히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리고 차차 다른 많은 장기수들도 만나게 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간첩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조창손씨는 1962년 6명의 일행과 함께 남파되었지만 1명은 죽고 나머지는 모두 체포된 연락선의 선원이었다. 1992년 가을 조창손은 감옥에서 전향공작을 이기지 못하고 전향한 동료들인 진태윤 김영식을 만난다. 전향자들은 조창손씨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난 간첩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박한 얼굴을 가진 김영식씨에게 특히 호감을 느낀다

93년 김영삼정권 취임후 전쟁포로였던 이인모씨가 송환되면서 할아버지들은 고향에 갈 수 있다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남과 북은 모두 송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오히려 남북관계는 냉각된다.

조창손씨는 남한사회에 차차 적응을 해나가고 장기수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장기수들은 남한사회의 변혁운동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령과 지병으로 세상을 뜨는 장기수들도 많아진다. 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 그들의 신념에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95년 봄 함세환씨등 전쟁포로들을 중심으로 송환대책 위원회가 설립되고 나도 그들을 돕기 위해 송환대상자들을 촬영하여 일본인 이시마루를 통해 북으로 보낼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북측에서는 식량난 때문에 그의 입국을 거절한다. 그후 이시마루는 중국연변에서 탈북자들을 기록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북에 대한 우호적인 그의 태도가 많이 바뀐다.

96년 난 장기수들에 대한 작품들을 제작해왔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장기수들과 더욱 가까워진다.
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장기수송환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한다. 99년말 '비전향 장기수 송환 추진위원회'가 생기고 본격적인 송환운동이 펼쳐진다. 그러나 납북자 가족을 비롯한 우익단체에서는 여전히 송환을 결사반대 한다.

2000년 6월 15일, 비전향 장기수 전원을 북으로 송환한다는 내용이 포함 된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된다. 그러나 조창손씨등 장기수들은 의외로 덤덤하다.

조창손은 전주에 내려가 김영식등 전향한 동료들을 만나 이별을 한다. 고향에 못가게 된 전향자들은 뼈저린 회한을 느낀다. 조창손은 62년 남파되어 상륙하다 동지를 잃은 울산의 해안을 찾아 죽은 동지의 가족에게 줄 흙 한줌을 떠간다.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은 꿈에 그리던 평양으로 돌아간다. 조창손씨와 다른 장기수들은 북에서 영웅대접을 받고 있지만 한편 체제선전에 동원되기도 한다. 난 조창손씨등 송환된 장기수들을 만나기 위해 평양으로 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못가고 다른 사람에게 대신 촬영을 부탁한다. 조창손씨는 영상을 통해 나를 아들처럼 생각했었다고 안부를 전해온다.

현재 김영식씨등 남쪽의 전향장기수들은 전향을 취소하고 송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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