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오후 2시. 갯벌지킴이 장승들이 세워져 있는 부안 해창갯벌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 기원제. 딱 1년전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된 새만금의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네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를 기억하고, 파괴되는 뭇생명을 되새기며 새로운 투쟁의 희망을 다지는 자리이다.
[참소리영상] 새만금 생명평화 기원제 스케치
낡고 헤어져 떨어져 나간 예전의 현수막들 대신 행사 현수막을 걸기 위한 대나무가 세워졌고, 갯벌을 바라보는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불교 네개 종단의 기도의 집은 말끔히 정리됐다. 천주교 신자들은 해창갯벌 장승들 사이에서, 원불교 교인들은 기도의 집에서 각각 기도를 올렸다.

▲삼보일배 1주년 행사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분주한 부안 해창갯벌 [사진:참소리]

▲갯벌지킴이 장승들 사이에서 열린 천주교 미사 [사진:참소리]
지난 해 삼보일배에 함께 했던 이들과 주민들도 함께 한 천주교 미사에서 문규현 신부는 "우리의 삼보일배는 갯벌의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갯벌과 뭇생명들은 1년 사이에도 무수히 죽어갔고, 개발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근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위해 전국민적인 촛불의 행렬이 밤마다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생명과 평화를 생각한다면, 온국민이 새만금 갯벌을 위해 생명과 평화의 촛불을 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 3시.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합류해 인원이 약 2백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사람들은 해후의 회포를 풀었다. 삼보일배를 이끌었던 성직자들 중 수경스님은 다른 일정으로 참가하지 못하고,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약간 늦게 도착한 이희운 목사와 삼보일배 순례단 업무를 관장하던 활동가들, 그리고 지역의 주민들이 정겨운 인사를 나눴다.

▲삼보일배 고행을 함께 했던 김경일 교무와 문규현 신부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참소리]
갯벌지킴이 장승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갯벌을 마주보고 있던 해창석산은 깎여져 나가 평지가 돼버린지 이미 오래. 참석자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지난해 삼보일배가 끝난 후 행정법원의 공사집행 중지라는 작은 성과를 얻었지만, 다시 2심에서 공사재개판결을 받아,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다. 새만금 본안소송 판결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이미 공사가 중간쯤 진행되고 있는 새만금의 갯벌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의 대안을 제시하려 해도, 방조제를 막고 농지 혹은 산업복합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도와 농림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는 상태이다.
삼보일배를 비롯해 새만금 반대운동에 함께 했던 이들은 1주년을 맞는 소감을 "착잡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지난 겨울 계화도에서 마을 아이들과 함께 외로운 삼보일배를 했던 어민 고은식 씨는 "1년이 지났는데 상황이 더 안좋아진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다시 사람들이 모여서 새만금과 생명을 살리기 위한 방향을 고민하기로 했으니까 다시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1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히는 이들. 왼쪽부터 고은식 (계화도 어민), 이미연 (변산면 주민), 이상환 (평화바람) [사진:참소리]
삼보일배 순례단에서 65일의 여정을 함께 했던 이상환 씨는 현재 문정현 신부 등이 이끄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의 일원으로 이제는 전국 각지를 떠돌며 '반전'과 '평화'를 외치고 있다. 평화바람은 새만금반대운동,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시작한 운동. 이상환씨는 "전국각지를 돌며 평화를 외치고 있고, 생명과 갯벌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황이 꼭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핵폐기장 반대투쟁 초기에는 핵폐기장 문제와 새만금 문제를 분리시켜 사고하던 경향이 많았던 반면, 오랜 투쟁을 겪으며, 핵폐기장 문제 뿐만 아니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새만금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주민들이 많이 생겼다. 이날 행사에도 눈에 띄는 것은 기존 새만금 반대운동에서 보지 못했던 부안주민들이 노란 손수건과 모자, 옷을 걸치고 나타났다. 지켜보던 이들은 "이제야 새만금과 핵폐기장이 한자리에 만났다"며 흐뭇해 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미연 씨도 그런 주민들 중 한명. 평범한 아줌마에서 핵폐기장 반대싸움을 겪으며 투사로 변신했던 이 씨는 이날도 크게 마음을 먹고 남편과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예전엔 여기에 장승들이 있어도 관광객처럼 둘러봤다 그냥 지나쳤었는데, 이제는 다시 새롭게 보여요. 그냥 무심코 지나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갯벌 파괴 중단을 요구하는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4개 종단의 목소리. [사진:참소리]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의 난타공연. [사진:참소리]
오후 3시가 약간 넘어서,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 기원제가 시작됐다. 네개 종단의 새만금 갯벌 파괴 중단을 요구하는 기도문이 낭독이 된 후, 살풀이 춤사위, 평화바람의 난타공연, 범능스님의 노래공연들이 참가자들의 박수속에 이어졌다.
그리고 해창갯벌을 한바퀴 돌며 인간의 욕심을 참회하고, 뭇생명의 평화를 기원하는 삼보일배가 시작됐다. 무릎에 보호대를 두른 문규현 신부와 김숙원 교부가 앞에 서고, 참석자들이 길게 줄을 이어 삼보일배에 동참했다. 삼보일배는 조용하고 엄숙하게 약 한시간 가량 진행됐다.

▲해창갯벌을 한바퀴 도는 참회의 삼보일배가 시작됐다. [사진:참소리]

▲갯벌 위 길게 꼬리를 이은 삼보일배 행렬 [사진:참소리]



▲삼보일배가 끝난 후 백합국, 막걸리, 손수 담궈온 포도주 등 먹거리를 나누는 참가자들 [사진:참소리]

▲이어진 대동놀이. 성직자들부터 핵폐기장 반대투쟁에 함께 한 주민들까지 한자리에서 유쾌한 잔치를 벌였다. [사진:참소리]

▲지난 해 65일여의 삼보일배 대장정에 함께 했던 이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 [사진:참소리]
삼보일배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백합국, 막걸리, 두부김치 등 먹거리를 나누고 풍물과 대동놀이를 즐기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 6시경 행사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자리에 참석했던 부안주민들은 회의를 갖고 '부안생명연대' 발족을 논의했다. 기존의 새만금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에서 새만금 문제뿐만 아니라 핵폐기장 문제, 각종 생명파괴 개발사업에 대한 대응과 장기적인 부안발전전략을 논의하는 커다란 틀로 조직을 개편하는 자리였다. 새만금의 오랜 상처 위에 핵폐기장이라는 거친 태풍이 휨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의 꿈틀거림이었다.
참소리 편집팀 기자 icomn@icom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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