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서부권의 외각, 효자동 4지구에 있는 구룡마을을 방문했던 때는 해가 거뭇하게 기울어가는 20일 오후였다. 넓게 펼쳐진 논 멀리로 새로 청사를 이전하는 도청 높은 건물이 보이지만 같은 전주시라고 불리기 어려울 만큼 외곽에 놓여진 시골 마을. 유달리 눈에 뜨이는 빨간색 천에 '철거반대'라고 쓰여진 깃발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안내해주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온갖 피해를 주는 택지개발에 따른 이전계획에 반대하며, 구룡마을 주민들은 지난 1년여간 젊은이에서부터 나이든 노인들까지 주민들이 한데 뭉쳐 철거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멀리 보이는 도청 신축건물과 도시의 모습. 개발이 제한됐던 구룡마을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참소리]

▲철거반대 현수막과 페인트 글씨가 어지럽게 쓰여진 마을회관. 구룡마을은 전체 65가구로 이중 40여가구 만이 자기 소유의 집이고, 나머지 25개 가구는 세들어 사는 영세가구이다. [참소리]
"우리 마을이 500년의 역사를 지닌 마을로, 아마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깊은 마을일 꺼예요" 철거반대 현수막과 글씨가 얼기설기 새겨진 마을회관앞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던 구룡마을 철거민 대책위 박영렬 씨가 기자를 보자마자 입을 떼자마자 하는 말이다. 회관 안으로 들어가, 모여든 주민들은 분노서린 목소리로 1년여간 자신들이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사연을 성토했다.
전주시와 대한주택공사 전북지사가 추진하는 효자동 4,5지구 택지개발사업은, 고밀도 공동주택용지를 목표로 2007년까지 약 13만평의 부지에 6000 가구의 공동주택을 짓는 사업. 전주시와 주공은 효자동과 함께 송천동, 태평동 등지에서도 추진중인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으로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 원활하게 제공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특히 서부신시가지 개발사업으로 도청 이전에 따른 주거단지 조성, 전주시 인구확대정책에 맞춘 택지개발사업은 신도심을 확장하는 사업의 일환이다.
"평당 50만원 땅값 받아서, 120만원인 곳으로 이사가라니요..."
99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된 구룡마을의 주민들이 택지개발사업의 문제점을 실감하게 된 시기는 작년 9월이었다. 주민들은 마을에 꽂힌 택지개발을 깃발을 보고서야 택지개발사업 확정지역이 됐고, 당장 이주를 해야된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말한다. 주택공사에서는 주민총회를 소집해 택지개발이 추진되게 됐다며, 이주대책을 세워야 하고, 보상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 4월 감정평가가 나오고 나서야, 주민들은 평당 50만원으로 땅값을 보상받았는데, 이주할 곳은 땅값으로 120만원을 줘야 하는 등, 온갖 피해를 다 감수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개발지구 지도를 보여주고 있는 박영렬 구룡마을 철거민대책위 부위원장. [참소리]
"대지는 50만원, 논은 30만원을 쳐주는데, 우리가 또 마을에 도로를 튼다고 해서 개인땅도 조금씩 내줬단 말이죠. 그런데 그 땅은 도로 가격으로 쳐준다면서 15만원을 준다는 거예요. 전주공전 근방으로 이사를 가라고 하는데 거기가 15% 깎아줘서 땅값이 평당 120만원이라는데, 평당 50만원에 돈 받아서 120만원짜리 땅으로 가라고 하는게 말이 됩니까?"
15년 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묶임에 따라 개발제한구역이 됐던 구룡마을. 건물 신축, 개축 등 재산권 행사 한번 제대로 못하고, 아직도 '푸세식' 화장실을 쓰는 등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15년을 살아야 했다. 뒤늦게 주민들은 '이런 식이라면 택지개발 못한다'며 기자회견도 갖고, 전국철거민연합에 가입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주택공사를 항의방문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미 주택공사는 마을 대토지 소유주나 유지들과 이미 협의절차를 거쳐버려, 뒤로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서민 복리를 위해 만들어진 택지개발법이 서민 죽인다
"택지개발법이라고 하는게 본래 서민들의 복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멀쩡히 살던 서민들을 쫓아내 죽일려고 하는게 말이 되냔 말이여."
주택공사 측은 사업설명회, 보상계획 안내, 보상협의회 개최 등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추진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80년대 개발과 도시확장정책이 추진되면서 제정된 택지개발법. 주민주거 아파트 건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이 법은 초기에는 주민동의없이도 가능했다가 최근에야 공청회 등의 절차를 갖추고 주민의견을 청취하는 정도로 법안이 수정됐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글자를 못읽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 데려다가 택지개발법이니, 이주계획이니 얘기해도 바로 알아듣기는 힘듭니다. 오죽 원통하고 분통하면, 젊은 사람들이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이 일에 매달리겠습니까?" 자신도 직장을 그만두고 철거민 대책위원회 일에 전념하고 있다는 한 청년의 말이다.

▲그간 시, 정부, 국회의원들에게 보냈던 진정서들. 대부분의 답변은 '공익사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참소리]
"우리는 도장 한 번 찍어준 일이 없어요. 다 큰 땅 가지고 있는 외부의 토지주나 통장들이 협의회인가 뭔가에 들어가서 다 합의해준 거지." 통장과 대토지 소유주들은 이미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난 상태. 현재 구룡마을에는 65개 가구가 남아서 철거에 반대하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가장 서러운 것은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추진되는 사업이 살고 있던 주민들을 죽이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전주시가 요새 1백만 도시 운운하잖아요. 대기업 유치하고 인구늘리기를 하려고 집도 짓는 모양인데, 전주 토박이 서민들을 쫓아내고 인구를 늘리는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다 보니, 주택공사는 2004년 상반기 착공계획을 일단 뒤로 미루고,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재심사를 요청을 해둔 상태이다. 기자가 구룡마을을 방문한 이날도 중앙토지주용위에서 재감정평가단을 21일 파견하기로 했다고 해서 주민대책회의가 열리려던 때였다. 재심사는 20~22일까지 3일간 치러지고, 15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재심사를 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이미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 있다. "어차피 재감정도 형식적인 절차로 치루는 거고, 나와 봤자 1차 감정에서 별로 달라지는 내용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법의 수순을 밟는 것일 뿐이예요. 이게 끝나고 나면 보상금을 공탁금으로 걸어놓고 주민과의 협의는 끝내버릴 심산일꺼예요. 그러고도 주민들이 떠나지 않으면 아마 강제 철거를 하려고 하겠죠."
강제철거 이야기를 스스로 꺼내는 박영렬 씨의 눈이 분노로 번뜩인다. 철거 문제가 닥치자 가입했던 전국철거민연합 활동을 하면서, 정부 개발사업의 횡포와 이에 맞서 싸우던 서울 인근의 철거민들의 처절한 투쟁을 직접 현장에서 보고 왔다는 박 씨는 구룡마을에서 그런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굴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주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대책과 이주대책이 없으면 절대로 마을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저녁 7시 반 경.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주민대책회의에 참가하러 모여드는 주민들. [참소리]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기억만 해주세요"
저녁 7시 반 경. 마을회관으로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전주 외각의 마을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보기에도 낯설은 철거반대 투쟁조끼를 입고 결연한 표정으로 주민대책에 대해 회의를 연다. 주민들은 당부한다. "인터넷에도 많이 올리고, 우리 억울한 사연 좀 널리 알려주세요. 그리고 말해주세요. 제발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이런 일이 있다는 것만 기억해달라고..."
전국적으로 도시재개발, 택지개발과 맞물려서, 부당한 이주대책, 강제철거에 저항하는 주민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개발을 보장하는 법안들이 주민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고, 사업 시행자의 편에선 내용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업 시행자들의 무분별한 개발정책을 막아야 하며, 본토에 살고 있던 서민들의 복리와 대책이 철저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개발이 횡행하는 시대, 손에 쥔 것 없이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들의 설움만 쌓여간다.
참소리 최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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