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열사가 없었다면 흔들렸을 것"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 부산지부 조합원 조이화씨 인터뷰

지난해 10월 26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진행 중이던 종묘공원에서 이용석 열사는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32살의 생을 마감했다. 2003년 4월에 노조를 설립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3년 10월 27일 파업에 돌입, 40여일의 싸움을 치루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4월 29일에는 이용석열사정신계승사업회 창립 대회가 열렸다. 이날 창립대회에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 부산지부 조합원 조이화씨를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가를 내고 먼길을 왔다고 들었는데
  그냥 살아남은 자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다른 지역 동지들의 분위기도 보고 싶었고 이후 계승회의 계획에 대한 궁금함도 있었다.

*소감이 어떤지
  근비조합원이 별로 없어서 아쉽다. 운영위를 보니 큰 단위에서 많이 참여한 거 같아 감사하다. 하지만 공공연맹 위주로 구성되어 공공연맹 비정규직 투쟁으로만 비쳐질까 우려스럽다. 좀더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투쟁으로 가길 바란다.

*현장의 분위기는
  열사 분신 이후 파업 중에도 정규직 승진 시험에 휩쓸린 조합원도 있었다. 지금 공단측에서 "70%를 승급시험으로 정규직화하고 30%는 정리해고 한다"는 말을 흘리고있어서 현장은 더어수선하다. 최근의 공공부문 비정규관련 정부안을 보면 상시직만 정규직화한다고 하는데 공단측 판단은 상시직과 비상시직 비율을 7:3정도로 판단을 한 것 같다. 즉, 70% 정규직화는 정부안만으로도 당연한 것인데(그안이 맞다가 아니라) 공단은 시험이라는 카드를 내놓고 현장을 흔들고 있다. 4월 19일~27일 까지 간부순회를 거치면서 정리해고를 전제한 승급시험은 거부해야 한다는 설득들을 해온것으로 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순회이후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일정부분 설득의 성과들이 있는 것 같다.

*열사투쟁 과정에서 가장 선도적이었던 부산지부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심했다고 들었다
  버티기보다 정리가 더 중요한데 간부들이 여력이 없어서 정리를 잘 못한 거 같다. 보상이라는 게 별거 아니라 지지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서울경기는 와주는 것만도 대단하고 부산지부는 남아있는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로 간 게 있다. 42일 남았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닌데 그런 흐름 때문에 남았던 동지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컸고 지금은 그걸 추스리는 과정이다.

*본인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파업이후 민주노총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계속 듣고 있고, 그 이후로 눈을 많이 뜬것 같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힘'을 믿게 되고, 사람들이 변해갈 거라는 믿음을 갖게되었다. 하지만 이용석열사가 없었다면 나역시 의지가 약해졌을 것이다.

*처음부터 조합활동을 했는가
  2000년 9월 고객상담실 일반계약직으로 입사했다가 2001년 8월 재활상담원으로 전환했다. 이전직장이 워낙 힘들었던지라 만족감이 컸고 공단자체에 대한 기대도 있어서 처음에는 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없었다. 그리고 나자신 비정규직이라는 생각보다는 재활업무를 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했고 설사 문제가 있다해도 우리끼리만 뭉쳐서 싸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단의 비합리성이 눈에 보였고 나자신도 결국 비정규직이라는 인식이 들면서 2003년 5월에 조합에 가입했다.

*동료나 근비조합 혹은 열사정신계승사업회에 바라는 점은
  이용석 열사 투쟁에 많은 대오가 함께 해준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연대단위나 상급단체와 아무 것도 몰랐던 조합원들 사이에 수위를 조절하고 걸러주는 중간자가 적어서 겁을 먹는 동료들도 많았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비정규주체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창립대회에도 비정규직 주체가 자리매김하는 모습은 없었던 것 같다. 이용석열사는 죽음을 통해 많은 것을 남겼다. 조합원들이 조금만 더 힘내고 열사를 기억하며 함께 갔으면 좋겠다.
태그

이용석 , 근로복지공단비정규노조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최하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