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문제와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에 대하여

탄핵・선거정국을 지나면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마치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제기되었으며, 전체 좌파 진영은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방향성을 상실하고 표류하였다.

일부에서는 독재가 사라졌으므로 민주주의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으나, 민주주의 문제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갖추어지는 것으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단은 부르주아적 정치 질서의 형식성에 가두어져 있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확보하는 문제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표현되고 있는 각 계급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와,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쟁점들에 대한 정치적인 가공 능력이 요구된다.

전 사회적 관점에서 지배 계급과 중간 계급에 대해 - 단순한 의회 참여를 넘어서서 -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전술의 부재는 운동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해 왔다. (낙천・낙선 운동, 촛불 부대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 나아가서는 미래 사회로의 이행과정에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남아있는 과제일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는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채우고 완성시킴으로써 지양될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민주주의는 역사의 마지막까지 쟁점이 될 것이다.

이번 탄핵 국면에 좌파 진영이 보였던 취약함은 탄핵과 관련된 쟁점에 더해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섞여 들어오게 되면서 혼란의 도를 더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서구에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반발로 등장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IMF 개입에 따른 자본 합리화 전략과 경제위기 극복 전략으로서 전면화되었다.

서구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제도권의 어느 정파도 신자유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노동자 민중의 대다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해 고통을 당해 왔다. 그렇다고 하여도 신자유주의의 이슈가 정세나 국면에 대한 고려없이 언제 어디서나 그 문제만 이야기하면 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분배정책과 사회적 공공성의 강화 또는 토빈세의 도입과 같이 - 물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는 케인즈주의적인 대안을 가지고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본의 축적 전략으로서 신자유주의의 문제 역시 근본적인 모순의 해결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문제는 주로 과거 청산의 문제로 - 군부독재청산, 재벌해체, 지역주의 및 사당 정치 등 전근대적인 정치구조의 개혁, 정경유착 부패정치의 청산의 문제로 - 제기되어져 왔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축적 위기에 대해 부르주아지가 제시한 대안으로 자본의 지구화, 노동 유연화 등 새로운 축적전략과 맞물려 있다. 이 두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전체 사회의 모든 세력이 충돌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는 근대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채 전근대・탈근대가 기형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96・97 총파업시 반민주 악법 조항과 노동시장 유연화 3제를 둘러싼 쟁점이 전적인 예이다. 여기에 이주 노동자, 경제 자유구역, 세계화 등으로 표현되는 제국・식민의 문제까지 겹쳐져 문제의 가닥을 잡고 모순을 척결해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민주주의 문제만 제기하는 정치주의적 관점이나 신자유주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경제주의적 관점은 애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4・15 총선 이후 의회와 대통령 권력을 집권당이 장악하게 되어 사실상 파시즘적 권력을 휘두를 것이고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어 노동자 민중 운동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보았으며, 그렇게 된 원인으로 탄핵 국면에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한 필자와 같은 이론가와 신자유주의 전선을 이탈한 환멸스러운 대중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변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소사장제, 사내하청 용역제, 주5일근무제 등을 둘러싸고 타워크레인 노동자, 병원 노동자, 궤도 노동자,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점거・파업・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시끄러운 이론가들의 설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대중 투쟁에 의해서 정리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의회・제도 정치, 또는 노사정 위원회・사회적 합의주의 역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되어져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남구현 님은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노동자의 힘'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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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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