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록은 1987년 한 일간지에 실린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가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는 기사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노동력은 서비스업 등 3차 산업으로 이동됐다. 그 빈 공간을 메운 것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소위 말하는 3D 업종에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을 대신해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을 했다.
이주노동자가 먼저 있었고 그 관련법들이 이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관련법이란 것이 현실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들이었다. 현지법인연수생 제도, 산업연수생 제도는 이주 노동자들을 오히려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었다. 열악한 노동조건, 형편없이 낮은 임금, 그리고 한국으로 떠나올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지정된 사업장을 떠나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2003년 7월 31일, ‘고용허가제’가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불법의 신분인 이주노동자를 합법의 장으로 들여 놓았다고 선전을 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단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이다. 이주 노동자는 사업주가 자신을 고용했을 때에만 체류 비자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 하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몇 가지 예외적인 이유로 이동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업주의 동의서가 있어야만 하는데 현실적으로 동의서를 써주는 사업주는 많지 않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다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내몰린다.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도의 많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2. 이주노동자에게 매스 미디어는
이주노동자에게 매스 미디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주노동자들은 대체적으로 매스 미디어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언론이 취재를 해 가면 자기들 편한대로 방송에 나간다. 내가 한국에 대해 예스(긍정적)도 이야기하고 노(부정적)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예스(긍정적)만 방송한다.” 그 동안 매스 미디어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얼마만큼 담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아무도 앞의 말에 이의를 달기 힘들 것이다.
뒤에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 과정에서 ‘미디어 읽기’ 수업이 있었다. 대표적인 매스 미디어 프로그램인 MBC '느낌표' 프로그램의 ‘아시아, 아시아’란 코너에 대해 토론했었는데, 이주노동자들은 한결 같이 언짢은 심정을 토로했다. “왜 우리를 불쌍한 사람으로만 만들어서 보여주는 지”, “이주노동자의 어려운 상황을 한 사람의 어려운 사정으로만 만드는 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한사람 한사람씩만 구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아시아, 아시아’란 코너를 보면서 한번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이러한 비판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이 물음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고용허가제가 통과 되고 나서도 언론의 반응은 정부의 홍보 내용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언론은 고용허가제 부칙에 따라 얼마간 비자를 연장 받게 된 한국 체류 3년 미만인 이주노동자들만을 부각시키면서 그들에게 합법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홍보를 했다. 하지만 그 뒤에서 11만 명이라는 이주노동자가 합동 단속이란 혹독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몇 달분의 식량을 가지고 단속을 피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심지어 자신의 삶을 비관해서 자살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도 언론은 그저 이주노동자들의 슬픈 사연만을 소개했을 뿐, 정작 이주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3. 자신의 삶의 주체로 선 이주노동자에게 미디어를!
정부에서 ‘불법 체류자’ 자진출국 기한으로 내건 2003년 11월 15일,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숨어들 때, 천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강제추방 반대’를 외치면서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에 들어온 사람들의 사연은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대략적인 분위기는 ‘더 이상 죽을 수도 없고, 더 이상 참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적게는 3개월에서부터 많게는 10년까지 체류 기간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한결 같은 대답은 “이제는 당당하게 살고 싶다. 우리도 당당하게 일하고 싶다.”였다.
하루가 그냥 가면 허전할 만큼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 왔고 이주노동자들은 그런 소식이 들릴 때 마다 한국의 추위보다 더 매서운 현실에 몸을 떨었다. 농성단의 이주노동자들은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농성사실을 알려, 더 이상의 자살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에서 검찰, 경찰,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합동으로 단속하는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찾아 들어가 농성의 목적을 알리고 조금만 참으라고 숨어 있는 사람들을 독려했다.
그 과정에서 농성단의 이주노동자들이 사용한 매체라는 것은 엄혹한 시절의 그것과 닮아 있다. 농성단의 이주노동자들은 농성의 정당성과 지금의 상황, 농성의 목적 등에 대한 글을 쓰고 각 나라 말로 그것을 번역하여 다시 유인물로 만드는 작업을 며칠 밤을 새워 가며 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단속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것마저도 농성단이 공격을 받거나 다른 일정으로 힘들어 지면 며칠씩 연기 되곤 했다.
농성단의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분도 있었다. 그분들은 집회 장면이나 회의 장면, 농성장의 일상 등을 빼놓지 않고 성실히 기록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역에 숨죽이고 숨어 있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도 인력도 없었다. 기껏해야 연대하러 온 미디어 활동가들이 100일차, 200일차 하는 식으로 만든 몇 분짜리 영상을 집회나 문화제에서 상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에 그러한 일을 할 사람도 시스템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말이 서툰, 상황에 어두운 이주노동자들이 보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그러한 때에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의 언어로 만든 영상이 있었다면 하는 바램들이 미디어 활동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생겨났고, 동시에 이주노동자분들도 연대하러 오는 미디어활동가들에게 찍어 놓은 영상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물어 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스스로 내용을 정하고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들 조금씩 그러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 <미디액트>에서 명동성당 농성단에 ‘찾아가는 미디어 교육’을 제안했다.
4.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이 운동인 이유
이주노동자에게 미디어 교육은 왜 필요한가? 이 질문의 답은 앞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됐다. 그래도 정리를 해보면 좋을 듯 하다.
매체 수용자의 측면에서 보면 이주노동자는 대중 매체에서 소외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언어 문제가 제일 큰 데, 한국 공중파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는 것이 매우 힘들다. 한국어에 어느 정도 익숙한 이주노동자들도 코미디나 시사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다. 비유와 전후 맥락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매체에서 점점 멀어 진다.
매체 생산자 측면에서 보면 그 길은 너무나 멀고도 험하다. 이주노동자들 중에도 비디오카메라를 보유한 분들이 꽤 있다. 하지만 비디오카메라 가격 자체가 이주노동자의 낮은 임금으로는 너무 비싸다. 개인적 관심이 많아서 비디오카메라를 보유한다 하더라도 이주노동자가 접근하기 쉬운 미디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디오카메라는 소장품 정도로 전락하기 쉽다. 그리고 만들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 관련 퍼블릭 액세스가 없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영상 작업을 어렵게 하더라도 자기만족적인 혹은 공동체적인 오락의 역할 이상은 하기 힘들다.
매체 수용자 측면이긴 하지만 약간은 다르게 다뤄져야 할 것은 ‘미디어 읽기’ 측면이다. 앞에서 얘기했던 대로 이주노동자들은 대중 매체를 많이 접하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대중매체를 접하는 경우는 주로 이주노동자 관련 뉴스나 관련 프로그램인데, 이럴 경우 대중매체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왜곡하거나 제대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불만을 그저 개인의 감정을 삭이는 방식으로 풀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컨대 이주노동자 스스로 영상을 만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이주노동자의 소외된 삶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이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 과정
①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 시작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은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객관적 상황들 때문에 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구체적으로는 여러 주체들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서 시작되었다.
농성단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하나의 매체로 영상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미디어 활동가들은 농성단의 이주노동자들의 영상에 대한 일상적인 질문에 호응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디액트>의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은 미디어에 소외된 계층에 대한 고민을 통해서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으로 만나게 되었다.
② 준비 과정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어떻게 이주노동자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것인가?, 예산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가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 강사로 뛸 것인가? 한참 투쟁을 하고 있는 명동성당 농성단과 어떻게 일정을 맞출 것인가? 등등.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꾸물꾸물 나왔지만 교육을 하겠다고 결정한 마당에 어느 고민 하나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법. 다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맞대었다.
우선 언어에 관련한 문제부터 풀어야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다른 문제와 함께 풀렸다. 오랫동안 농성단과 함께 해왔기 때문에 그들과의 의사소통에 능한 농성단의 ‘붙박이’ 미디어 활동가들이 강사가 되면 언어의 문제와 강사 문제가 함께 풀릴 수 있었다.
고민을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 짱짱한 ‘교사 워크샵’을 진행했다. 교사 워크샵은 5일 동안 진행되었고 명동성당 농성단에서 이주노동자 두 명이 참여하고 한국 활동가 한명, 그리고 교사를 할 미디어 활동가들, 그리고 <미디액트> 교육팀에서 참여했다.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을 위해서 각기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진행했다.
교육의 목적은 명동성당의 농성단의 활동에 나름의 활기를 주기 위한 분위기 쇄신의 역할도 있었지만 주된 목적은 이주노동자 운동에서 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 개발이었다.
③ 교육 내용 준비
이주노동자들은 전반적으로 기술적인 용어에 약했다. 그것은 교육에 큰 장벽이었다. 카메라의 파워를 켜는 것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교육 내용을 쉽게 만들어야했고 컴퓨터를 생전 처음 사용하는 분들을 위해 프리미어 사용법에 대한 교안을 작성해야 했다. 우선은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멀티미디어를 이용하여 교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간단하게 만들어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④ 교육 과정
교육 과정은 크게 두 번으로 진행했다. 영상제작 교육을 두 번에 나눠서 진행한 것이다. 영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한번 심도 있게 한번, 그렇게 해서 두 번을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첫 번째 교육은 네 번으로 나누었는데, ‘1. 미디어 전략, 2. 제작 교육 1-1, 3. 미디어분석, 4. 제작교육 1-2’ 으로 진행했다. 첫 번째 강의에서는 전반적인 미디어 환경과 그 환경을 이용해서 어떻게 미디어 운동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좀더 구체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미디어 환경을 이용하여 이주노동자 운동을 좀 더 활발히 할 수 있는지에 강의 초점이 맞춰졌다. 두 번째 세 번째 시간에는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촬영 수업을 주로 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 보는 이주노동자들은 부담스러우면서도 신기해하며 여러 가지 영상언어에 대해 학습했다.
세 번째 시간에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미디어 읽기’ 수업을 했는데, 매스미디어의 이주노동자 관련 영상을 보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준비 중에는 제일 걱정을 한 수업인데 의외로 이주노동자들은 토론 시간에 활발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털어 놓았다. 자신들이 대상화 되는 것에 불쾌했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것에 기뻐하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두 번째 교육은 첫 번째 교육에서 얻은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만들 이주노동자 매체를 염두에 두고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투쟁에 필요한 미디어를 위해, 제작 영상물의 목적은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로 잡았다. 그래서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접하기 편하게 이주노동자 본국의 언어를 사용하여 제작하기로 원칙을 세웠다. 이때부터 강사들은 이방인이 되었다. 모든 영상물의 내용이 네팔어나 방글라데시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강사들은 그저 형식에 대한 조언이나 진행을 위한 조언만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영상물의 내용에 집중하여 신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형식은 종합뉴스 형식으로 그 안에는 일반뉴스, 토론, ‘황당 사건’의 코너가 있었다. 다들 촬영 내용을 한 컷 한 컷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갈 말들도 서로 상의하여 써넣었다.
두 번째 교육의 결과물은 진지하고 재미났다. 편하게 자신의 언어로 만든 영상물은 농성에 참가하지 않은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어서 농성의 정당성에 대한 이야기, 왜 싸우는 지에 대한 이야기, 많은 이주노동자가 있는데 왜 여기에는 몇 십 명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 감히 이주노동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로 꽉 차 있었다.
6. 앞으로의 과제
이주노동자 교육은 교육으로만 멈춰서는 안 된다. 원래부터 교육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으며, 그것이 운동이 되기 위해서라도 교육으로 멈춰서는 안 된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이주노동자의 한국에서의 삶의 조건, 노동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은 다양한 고민을 함께 하는 열린 교육이 되어야 한다.
미디어 교육을 통해서 이주노동자들은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투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미디어를 통해서 운동을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서 해답을 얻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내용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둘째는 작업의 결과물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채널을 만들어야 하는 것 등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우선, 투쟁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 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데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의 내용은 기술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내용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주 노동자가 미디어 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고, 또 지속적으로 그 운동을 해나갈 수 있게 된다면 ‘지원’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지금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 운동이 한참인데, 이주노동자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지지 지원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중요하다고 본다. 이주노동자에게 본국어로 하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것은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 미디어 환경을 보면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당당한 하나의 사회 구성원이다. 주체가 선 이상, 그들의 설 자리를 미디어 운동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지지․지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2004년 6월 1일, 명동 농성단 200일 투쟁 문화제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제작한 '명동 농성단 투쟁 뉴스'가 상영되었다.
주현숙 (미디액트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교사, 독립영화 감독)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