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25일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영협의회] 의결사항 (통보) 주요내용 - 2002. 1. 23 제15차 운영협의회 의결사항에 대한 내용통보 - 6가지 항목에 대한 내용수정 반드시 필요, 수정된 프로그램에 대해 ‘편성요청’여부 재심사 의결(비속어 사용, 주민등록제도가 악의적 제도라는 부분, 공무원등장, 박정희 생가 씬 등) |
시작
‘열린채널 운영협의회(이하 운영협의회)’와의 지리한 싸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01년 45분의 길이로 제작한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를 29분으로 재편집하여 <열린채널>에 제출하였지만, ‘운영협의회’는 비속어 사용(내용은 ‘미친놈’ ‘개판’등이 비속어이며 이것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의 드라마를 보면 이 정도의 비속어(?)는 비속어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주민등록제도가 악의적 제도라는 부분(난 악의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았고 문제점이 너무나 분명하며 이것은 또하나의 파시즘적인 제도라고 나래이션으로 말했을 뿐이다), 공무원 등장(초상권 침해라는 부분인데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 부분이다.
즉 공무원의 사생활이 아닌 공적인 업무와 관련된 부분을 촬영했을 때 그것이 초상권 침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박정희 생가 씬(죽은자에 대한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을 하였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며, 박정희라는 인물이 개인 박정희가 아닌 6-70년대를 대표하는 군부독재세력의 상징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아마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다는 점과 ‘운영협의회’구성원들이 대부분 보수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에 대해서 반드시 수정하라고 결정하였다.
난 고민에 빠졌다. 이 작품의 방영을 통한 내용전달이 우선인지 아니면 말도 안되는 주장에 대해서 싸워야 되는지 제작진들과 논의를 하였고, 몇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수정하기로 하였다. 즉 비속어라는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삐”음을 삽입하였고, 공무원의 초상권 침해라는 부분은 이름과 직함 대신 관계자로 처리한 후 화면은 뿌옇게 처리하여 의견서와 함께 다시 제출하였다.
그러나 ‘운영협의회’는 3월 회의의 결과를 통지하였는데, 비속어 사용한 CUT의 삭제와 공무원 등장 장면의 동의 여부 근거 제출, 박정희 생가 씬 삭제, 그리고 (1차 통보에 없었던) 제목 중 ‘찢어라’ 순화를 요구하였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받아들이기로는 이것은 명백한 검열이었다. 도대체 ‘운영협의회’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무슨 권리로 CUT삭제라든가 제목을 바꾸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이들은 <열린채널>을 마치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런저런 황당한 요구를 하면 알아서 다 들어주는 외주제작 프로덕션들이라고 본 듯 하였다. 아마 이런 요구가 나온 것은 그동안 방영되었던 <열린채널>의 작품들을 만들었던 제작주체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를 어느 정도는 수용하였던 결과, 이런 요구를 이들은 당당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제작진들은 ‘운영협의회’의 통보사항에 대하여 변호사와 법학 교수의 의견서를 첨부하여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하면서 수정을 거부하는 답변을 제출하였다.
거부 & 싸움
2002년 4월 12일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영협의회]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편성불가’ 의결사항 통보 주요내용 - 2002. 4. 10 개최한 제 18차 운영회의에서 ‘편성불가’ - 의결과정 : 비속어 사용/ 행자부 공무원 출연에 따른 초상권 침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장면/ 제목 중 “찢어라” 부분의 순화 등에 대해 수정 및 보완 요청 했으나, 연출자 측에서 이를 전면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영협의회 전체 의견에 따라 심의 표결한 결과, 운영지침 제13조 2항에 의거 편성승인이 부결됨 |
사실 <열린채널>에 작품을 내면서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거부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의 논란은 있겠지만 별 문제없이 방영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남은 것은 ‘운영협의회’를 상대로 싸우는 일 밖에 없었다. ‘운영협의회’에서 편성불가가 결정되면 구제되는 절차는 ‘운영협의회’의 상위기관인 시청자위원회에 이의신청하는 것 밖에 없다.
그나마 이마저도 결국 부결을 당하였고 시민단체들과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들은 KBS 앞으로 몰려가 몇 번의 집회와 1인 시위를 벌이며 편성불가의 부당함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들이 집회를 하면서 오히려 <열린채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송출하는 주체인 KBS 직원들이 <열린채널>이 뭔지 알게 되었다는 점과 시민단체들과 시청자들 또한 ‘퍼블릭 엑세스’ 프로그램이 어떠해야 하는지 개념을 조금씩 잡아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하나, 계속적으로 이의신청을 하고 문제제기를 하니까 어느날인가 ‘운영협의회’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뭐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어서 그 자리에 나갔는데, 일종의 거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두가지(제목과 박정희 생가) 중에서 하나만 고쳐주면 틀어주겠다(?)라는 제안이었다. 예를 들어 ‘찢어라’가 너무 과격하니 ‘파기하라’면 어떻냐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열린채널>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퍼블릭 엑세스의 기초개념 조차도 없는 이러한 자들이 ‘운영협의회’를 구성하고 있었으니 문제는 문제였다.
방영
어쨌든 행정소송과 고등법원 항소 그리고 2004년 1월의 고등법원 각하 결정(주요한 내용은 KBS는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소송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이 말을 조금 해석해 보자면 KBS는 <열린채널>에 대해서 전혀 간섭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며 ‘운영협의회’의 결정이 있으면 모든 프로그램은 방영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까지 진행되었다. 그사이 KBS는 정연주 사장 체제로 바뀌면서 시청자위원회와 운영협의회는 조금 나은 사람들로 구성이 되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운영주체들이 바뀌었으니 별다른 문제없이 방영결정이 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바뀐 ‘운영협의회’에 다시한번 프로그램을 제출(28분에서 23분으로 재편집)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제작진만의 생각이었다. 연출자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회의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나온 얘기는 과거의 운영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목 얘기는 없었지만 박정희 생가 장면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KBS는 한나라당의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 프로그램이 혹시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매우 정치적인 고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왜 퍼블릭 엑세스 프로그램이 그러한 정치적인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도저히 가질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운영협의회’ 구성원들은 싸워야 하며, 이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KBS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자들이다.
그래서 방영결정에 대해서 4월로 연기가 되었고, 그나마 4.15 총선 이후로 ‘운영협의회’회의가 연기되면서 총선의 결과에 따라서 방영여부가 결정될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나마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방영결정이 났고, 6월 18일 2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 <주민등록증을 찢어라>가 방영될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 만약에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었다면 방영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이마리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연출자)

2002년 10월 항의집회_[사진: 인디다큐소식지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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